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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3편 묵상공부

관리자 2016-04-04 (월) 06:24 6년전 1184  

알렌 목사님의 다음 책에서 시편 묵상 부분을 옮깁니다.

하나님의 심리치료

-시편23, 십계명, 주기도, 팔복 묵상 강해-

Charles L. Allen, God's Psychiatry, Fleming H. Revell Company:Westwood, New Jersey,1968.

 

날마다 한 장씩 묵상하며

영혼의 평화와 치유를 누리기바랍니다.

 

1 부 하나님을 묵상하는 방법 - 시편 23편 묵상

 

1. 생각의 형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날 찾아 왔습니다. 오래 전에 그는 밑바닥에서부터 사업을 시작해서 끝내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는 보기 드문 재능과 정열이 있었고 이 자질들을 유감없이 활용했습니다. 지금 그는 이 회사의 회장이며, 이 지위에 맞는 모든 것을 갖추고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살면서 그가 잊은 것, 그가 이루지 못한 것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행복입니다. 그는 신경질을 많이 내고, 긴장하고, 걱정하며 생활하다 병이 났습니다. 결국 그의 주치의가 목사와 상담 좀 하라는 제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의사가 내려준 처방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의사의 처방대로 했습니다. 나도 종이를 한 장 집어들고 그를 위해서 처방전을 하나 적어주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하루에 다섯 번씩 시편 23편을 읽으라는 처방입니다.

내가 적어준 처방을 반드시 지키라고 그에게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을 때, 첫 번째로 시편 23편을 읽었습니다. 차근차근, 명상해가며, 기도하는 심정으로 읽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서 곧 같은 일을 했어요. 점심을 먹고 나서도, 저녁을 먹고 나서도 그랬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시편을 읽었습니다. 조급하게 서둘러서 읽지 않았어요. 구절 구절마다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뜻을 찾기 위해 온 마음을 기울이며 읽었습니다. 나와 약속한 한 주가 지났을 때 그에게 이 일은 특별한 것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시편을 읽으라는 처방이 단순하게 들렸지만 그렇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편 23편은 가장 힘이 있는 실존적인 문학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놀라운 일을 이루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처방을 내렸고, 그때마다 어떤 결과가 나타난 것을 알고있습니다. 이 시편 23편은 일주일이면 우리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낮 동안에는 바빠서 글을 읽을 틈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아침 시간에 다섯 번을 다 읽는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의사는 밥 먹고 난 뒤나 일정한 시간마다 약을 먹도록 처방해줍니다. 이 때 제정신이 박힌 사람은 하루분량의 약을 한 번에 다 먹지는 않습니다.

몇몇 사람은 이삼일 이 시편 읽기를 하고 나서는 충분하다고 합니다. 일주일 내내 차근차근 읽지 않아도 하루면 다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시편 23편의 효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효과를 제대로 보려면 처방대로 해야합니다.

에머슨(Ralph Waldo Emerson)은 말했어요. “하루종일 그가 생각하는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정체다.”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말했어요. “인생이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노만 필(Norman Vincent Peal)은 말했어요. “당신의 생각을 바꾸시오. 그러면 세계를 바꾸게 될 것이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마음속에 생각하는 대로 사람이 된다.”(23:7)

시편23편은 일종의 생각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시편에다 마음을 온통 기울이면 그 결과로 새로운 생각과 삶의 방법이 생깁니다. 이 시편은 단지 118 단어로 되어있어요.(흠정역 성경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다 외울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들 대부분이 이 시편을 잘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시편23편의 능력은 외우는데서 생기지 않습니다. 그 안에 담긴 사상을 생각하는데서 나옵니다.

이 시편의 능력은 인생에 적극성과 희망과 믿음을 줍니다. 이 시는 다윗이 썼다고 합니다. 다윗은 살면서 죄와 실패라는 어두운 경험을 했어요. 그러나 다윗은 쓸데없는 후회나 뒤만 돌아보는 병적인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사도 바울과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뒤에 있는 것들을 잊고. 목표로 세운 것을 앞에 두고, 그것을 향해 전진합니다.”(3:13) 또 다윗은 예수님의 정신도 닮았습니다. “나도 당신의 죄를 심판하지 않으니 가시오. 다시는 죄짓지 마시오.”(8:11)

내 처방대로 해보세요. 일주일이면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이 마음가운데서 싹터서 여러분의 생각과 삶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2.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차대전이 끝나자마자 연합군은 집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많은 아이들을 군대 막사에 모았습니다. 여기서 아이들은 배불리 먹으며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밤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지쳐있고 걱정이 있어 보였습니다.

결국 한 심리학자가 해결책을 내어놓았어요.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면 각자 손에다가 빵을 한 조각씩 쥐어주자는 거예요. 아이들은 더 먹으려고 합니다. 더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특별한 빵 조각은 먹으라고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꼭 쥐게 하기 위해 주었습니다.

이 빵 조각이 큰 효과를 냈습니다. 아이들이 내일도 먹을 것이 있다는 것을 무의식 속에 느끼고는 잠들게 되었습니다. 내일도 먹을 것이 있다는 믿음이 아이들을 평화롭게 만들었습니다.

시편 23편에서 다윗도 양들을 바라보며, 위 이야기의 아이들과 같은 심정을 느끼고는, 말했습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네.” 양은 본능으로 압니다. 내일도 풀을 뜯어먹을 수 있도록 목자가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목자가 오늘 먹을 것도 넉넉히 마련해 주고 내일을 위해서도 그러리라는 것을. 그러기에 양이 몸을 웅크리고 누울 수 있는 것입니다. 비유로 말하자면 손에 빵을 쥔 채 잠든 아이들처럼 말이지요.

그러기에 이 시편 23편은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하는 간청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주님이 나의 목자이시다하는 사실을 담담하게 고백하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조를 필요가 없습니다.

로이 스미스(Roy L. Smith)와 여러 사람들이 말한 대로,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갖기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고 주십니다. 우리가 춥다고 느끼기 전에 하나님은 석유와 석탄과 연료를 준비해두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이 땅 위에 살게 하시기 전부터 우리가 배고파할 것이라는 점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땅을 기름지게 하시고 씨들 속에다 생명을 담아놓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지요.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는 여러분이 구하기 전에 이미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6:8)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내일에 대한 것입니다. 부활의 아침, 예수께서 누우신 무덤에 찾아간 여자들을 봅시다. 이 여인들은 이른 아침 빛나는 햇살의 아름다움과 길 따라 핀 꽃의 찬란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무덤을 막은 돌을 누가 치울 수 있을까 걱정하며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덤에 갔을 때는 이미 돌이 치워져 있었잖아요.

다른 시편(37:25)에서 다윗은 노래했습니다. “젊어서부터 노인이 된 지금까지 나는 보지 못했네. 의로운 사람이 버림받거나 그 후손이 비참해지는 것을함께 이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나도 그런 일은 본적이 없는데 당신은 보았습니까?

모든 삶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내 인생도 그러하고요. 하나님은 공중의 새에게도, 들판의 풀에게도 신실하십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 점을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철 따라 새와 한 송이 들꽃도 이렇게 돌보시는데, 하물며 우리들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 하시겠느냐고 말이지요.(6:23,34)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4:19) 다윗이 이 점을 집어주고 있어요. “주님이 내 목자 되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네이것을 믿기에 우리는 내일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내고 오늘 일할 수 있습니다.

 

3. 그 분이 나를 푸른 풀밭에 눕게 하시니

한날 아침, 활기차고 짜릿한 하루를 시작하려고 서둘러 옷을 입었을 때, 나는 등이 아팠습니다. 아내에게 아프다는 말을 했지만 곧 괜찮아 지리라 믿었습니다. 아무튼 아내는 의사의 진찰을 받아 보라며 나를 병원에 떠밀어 넣었습니다.

병원에 있으면서 나는 몹시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병원 침대에 누어 있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 달력에는 온갖 선한 활동들이 가득 적혀있는데, 의사는 적어도 한 달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라는 거예요. 친한 친구 목사가 나를 보러왔습니다. 그는 내 곁에 앉아서 아주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찰스, 내가 단 한마디만 해주겠네. ‘그 분이 나를 눕게 하시고.’”

나는 병실에 누어서 친구가 간 뒤에 시편 23편의 이 구절을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목자가 새벽 네 시쯤에 양떼에게 풀을 뜯어먹게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양들은 풀을 뜯어먹을 때는 천천히 걷지만, 결코 조용한 동물은 아닙니다.

10시가 되면 햇볕이 쨍쨍 내려 쪼이고, 양들은 덥고, 지치고, 목마르게 됩니다. 현명한 목자는 이렇게 더울 때는 양에게 물을 먹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위 안에 소화되지 않은 풀들이 가득할 때는 물을 먹여서는 안됩니다.

이때 목자는 양들을 푸른 풀밭에, 시원하고 부드러운 곳에 눕게 합니다. 양들은 누운 채로 쉬면서 아무 것도 먹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되새김질을 합니다. 이것이 양들이 소화를 하는 방법입니다

위대한 사람들의 삶을 연구해 보세요. 그분들은 쉬며 생각하기 위해서 바쁜 삶에서 벗어났음을 알게 됩니다. 위대한 시는 시끌벅적한 군중 속에서는 씌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분주한 걸음을 멈출 때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고요하라, 그러면 내가 하나님임을 알리라.”(46:10)

엘리야가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지진도 아니고, 불길도 아니고, ‘아주 고요하고 여린 소리속에서. 모세는 산을 향해 오를 때 불타는 떨기나무를 보았습니다. 타르소 출신의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외롭고 고요한 길에서 하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은 홀로 기도하시기 위해서 따로 시간을 내셨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내기가 우리들에게는 제일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찬송하고, 설교하고,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고통받고 희생하는 일도 해야합니다. 우리는 힘차게 찬송 부릅니다. “일하자. 어둔 밤이 다가오니” “전진하라. 십자군병이여” “일어나, 일어나 주님 맞이하라그러나 가끔 우리가 잊어버립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온 세상에 파견하시기에 앞서, ‘권능을 얻기까지 먼저 기도하며 머물러 있어라하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되돌아 볼 기회를 가지라고 때로 우리의 등을 떠미십니다. “그 분이 나를 눕게 하시니.” 너무나 자주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할 수 없이 눕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도 늘 축복을 경험합니다. 비록 병으로 누어있을 지라도 그 기회를 활용만 한다면 축복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긴장과 압박에서 우리 영혼 빼내면

차츰 고백하게 되리.

주님의 평화 아름다워라.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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