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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 목사의 시편 묵상2

관리자 2016-04-08 (금) 10:36 6년전 869  

 

4. 그 분이 나를 잔잔한 물로 인도하시네

양은 아주 겁이 많은 동물이지요. 빠른 물살을 특히 꺼리는데, 물이 무섭기 때문입니다. 양은 헤엄을 잘 치지 못해요. 털이 아주 무겁기 때문입니다. 외투를 입고 헤엄치려고 발버둥치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물이 양털에 스미면 양은 무거워져서 물에 빠지고 맙니다.

양은 본능으로 알아요. 빠른 물살에서는 헤엄칠 수 없다는 것을. 그 때문에 양은 잔잔한 물가에서만 물을 마십니다.

목자는 양이 겁이 많다고 비웃지 않습니다. 양을 강압적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그 대신 양떼를 이끌고 산과 골짜기를 다닐 때, 목자는 계속 잔잔한 물이 있는지 찾아봅니다. 거기서 목마른 양들이 목을 축여야하기 때문입니다.

잔잔한 물이 아닌 경우, 양이 쉬는 동안에, 목자는 흐르는 물 가장자리에 돌로 둑을 쌓아 물웅덩이를 만듭니다. 그래서 양이 안심하고 물을 마십니다.

시편 23편의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한계를 잘 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약하다고 나무라지 않으십니다. 안전하고 행복하게 갈 수 없는 곳에 억지로 우리를 보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능력과 역량을 넘어서는 일은 절대로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깨에 짊어진 짐들을 아십니다. 또한 우리들을 위해 양분이 있는 곳과 신선한 곳도 알고 계십니다.

잠자는 동안에도 목자가 우리를 위해 내일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려고 일한다는 것을 알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주께서는, 내가 헛발을 디디지 않게 지켜 주신다. 너를 지키시느라 졸지도 않으신다. 보아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121:3,4)

우리의 삶에서 긴장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음속으로 잔잔한 물을 그려보는 거예요. 마음에 그린 작은 호수는 소나무 가지 사이의 둥지와 같을 것입니다. 언덕에 있는 조그맣고 차가운 샘 같을 것입니다. 평온하게 잔잔한 물결이 이는 고요한 바다와 같을 것입니다.

마음에 그린 이 그림이 분명해지고 나면 되풀이해서 읊조리며 믿으세요. “그분이 나를 잔잔한 물로 인도하시네.” 이 경험을 하게되면 한낮의 뜨거운 열기도 자신 있게 견딜 수 있는 힘과 믿음이 생깁니다. 우리보다 현명하신 목자의 인도를 따라가면, 우리는 우리를 새롭게 하고 쉬게 하는 힘이 준비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위대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노래하곤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강한 산성이요

무너지지 않는 성채이시라.

죽음의 질병 가득한 세상 물결 중에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이 감정은 다윗이 시편 23편을 썼을 때 느낀 바로 그 감정입니다.

시편 23편의 이 구절이 마음에 촉촉히 젖어들 때, 다윗이 가진 그 확신을 우리 또한 갖게 되지요.

 

5. 그 분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나한테 온 한 편지의 맺음 부분입니다. “요 몇 년 사이, 그 어느 곳쯤에서 내 삶이 끝났습니다...... 천천히 말이지요. 내 믿음이 마르기 시작한 지가 몇 해 되었습니다. 그러다 지금은 다 사라졌어요...... 나는 단지 조개껍질일 뿐입니다. 아마 모든 것이 다 빠져나간 껍데기 같은......”

나는 이 편지를 쓴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시편 23편에서 다윗이 쓴 그 분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하는 구절의 의미에 대해서 말입니다. 다윗은 아침에 양떼에게 풀을 뜯기러 나서기 시작할 때를 마음에 떠올렸습니다. 양들은 줄지어 정해진 장소에 있어야 합니다. 낮 동안 줄곧 그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아무튼 낮 동안에 가끔 양들이 자기 자리를 떠나 목자에게 총총 걸음으로 달려옵니다. 그러면 목자는 양의 코와 귀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줍니다. 귀를 가볍게 긁어주고 속삭여줍니다. 위치를 확인시켜주고 격려해줍니다. 그러면 양은 다시 자기가 줄서 있던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다윗은 생각해보았습니다. 한 때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께 가까이 있었는지를. 골리앗과 싸우러 나갔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해주셨는지를. 그가 성공의 길을 갈 때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해주셨는지를. 성공하자 다윗은 몹시 바빴습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었지요.

다윗은 하나님께 대한 친밀감을 잊었습니다. 잘못된 일을 저지르게 되었어요. 불행해졌습니다. 감당하기 힘들만큼 죄 짐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했고, 하나님께서는 들으셨습니다. 다윗을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는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몸과 비슷합니다. 마음도 상처를 입을 수 있어요. 슬픔이 상처입니다. 상처가 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은 깨끗하게 하는 상처입니다. 비탄이나 자기동정, 또는 회한 따위와 같은 것들이 이 상처에 침투하지만 않는다면 낫게 됩니다.

악행 또한 상처입니다. 내가 지켜야 할 어느 선을 넘는 짓을 했을 때, 인간은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이 상처는 치유되지 않습니다. 서서히 죄의식이 삶을 무너뜨립니다. 속이 빈 조개껍질처럼 삶을 비게 만듭니다. 이때 이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가 있습니다. 다윗이 기도했던 대로 이 시편 23편으로 기도 드리는 것입니다.

그 분이 나를 소생시키시고하는 구절은 또 다른 뜻도 있어요. 모팻(Moffatt)은 이 구절을 이렇게 읽도록 번역해 놓았습니다. “그 분이 내 안에 생명을 되살리시고.” 시계처럼 사람의 정신도 멈출 수 있어요. 충동이나 추진력 등을 잃는 것입니다. 어려움과 맞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십자군이 아닙니다.

오렌지를 짜면 즙이 나오고 찌꺼기만 남는 것처럼, 인생도 사람에게서 영혼이라고 하는 즙을 짜내는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도 조개껍데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때 새로운 열정은 씨가 말랐다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새 아침이 동트는 대신 추위와 절망만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첫 사람을 지으신 내용이 있습니다.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2:7) 그래요. 하나님은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실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틀란타 주에서, 수많은 의사들을 모아놓고 강연하면서, 로빈스(R. B. Robins)박사가 선언했어요. “정신과 의사의 도움이, 이 절망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교회가 맡은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 분이 내 영혼을 소생케 하시고.”

그 분이 내 안에 생명을 되살리시고.”

6. 그분이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

플로리다의 한 노래 탑에 있는 현판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찾으러 이곳에 왔노라. 이 세상에서는 너무 쉽사리 나를 잃는다네.” 진실입니다.

우리가 인생 길에서 갈라지는 지점에 서게되면 어떤 쪽으로 가야할 지 결정하지 못합니다. 결정을 내리기는 하겠지만 여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길을 잃기도 합니다. 그래서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자신 있게 외쳤습니다. “그 분이 나를 의의 길(바른 길)로 인도 하시도다.”

틀림없이 다윗은 양치기로서의 자기 경험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알고 있습니다. 양들이란 방향 감각이 없다는 것을. 개나 고양이나 말 같은 동물은 길을 잃게 되면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자기 안에 나침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양은 그렇질 못해요.

양은 시력이 아주 나쁩니다. 십이나 십 오 야드가 넘어가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팔레스틴의 들판들의 길은 좁아서 목자들이 양에게 풀을 뜯기려면 반드시 인도를 해야합니다. 어떤 길들은 절벽으로 나있어서 미련스런 양이 그 길을 따라가다가는 떨어져 죽게 됩니다.

어떤 길을 따라가다 보면 막다른 길이 나옵니다. 그러나 어떤 길은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이 있는 곳으로 나있습니다. 양들은 목자를 따라 갑니다. 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지요. 때로 목자는 가파르고 험한 곳으로 갑니다. 그러나 양들은 알지요. 그 험한 길이 어디인가에서는 끝나리라는 것을.

양은 목자가 판단해서 어디인가로 인도해준다는 것을 틀림없이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렇게 노래부를 수 있는 것이죠.

 

주님, 당신 손을 잡으렵니다.

투덜대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내가 보는 이 모든 것에 만족합니다.

나를 인도하시는 분 주님이시니.

 

아마도 다윗은 선조들이 이집트를 벗어나서, 길도 없는 광야를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일을 기억했겠지요. 하나님은 밤에는 불기둥을, 낮에는 구름기둥을 보내주셨습니다. 그것을 따라갈 때, 이스라엘 백성은 그토록 원하던 땅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의로운 길은 종종 힘든 길을 뜻합니다. 랄프 셔크만(Ralph W. Sochman)박사가 인도 군대에 입대하려는 한 영국 젊은이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에게 왜 인도 군대에 입대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인도 군대는 일은 조금 시키고 돈은 많이 준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더 그럴 것이고, 은퇴하면 아무 일 하지 않아도 돈을 주겠지요.”

하나님은 전쟁터에 꽃 이불을 깔아 주시지도 않고, 경주장에 융단을 깔아 주시지도 않습니다. 우리에게 쉬운 인생, 거저 얻는 인생도 약속해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우리와 함께 가시리라는 약속만은 주십니다.

그 분이 나를 인도하신다하는 시편 구절을 주목해 봅시다. 그 분은 우리 인생을 조종해가지 않으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오르는 언덕을 함께 오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한 발짝씩 내디딜 때 그 분과 함께 의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지혜자가 말했습니다. “네가 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인정하여라. 그러면 주님께서 네가 가는 길을 곧게 하실 것이다.”(3:6) 진실입니다. 진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든, 영원하신 지혜가 인도해주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 분께서 우리를 약속하신 땅에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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