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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 목사의 시편묵상4

관리자 2016-04-15 (금) 12:36 6년전 870  

10.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니 내 잔이 넘친다

미식축구 연습을 하러 간 첫날, 지도선생님이 해준 말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미식축구는 아주 거친 경기이기 때문에 경기를 하고싶다면 다칠 것도 각오해야 한다는 충고였습니다.

인생도 그러합니다. 인생을 잘 살고 싶다면, 살다가 멍도 들고 상처도 받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다윗이 이런 인생을 깨닫고는 시편 23편에 쓰고 있어요. “주께서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때로 양이 풀을 뜯을 때, 풀 속에 숨어 있는 뾰족한 돌 끝에 머리를 부딪혀 다칠 수 있습니다. 또 초장에는 찌르는 찔레와 가시들이 있어요. 어떤 때는 양들이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가파른 길을 가야만 합니다. 하루가 저물 때가 되면 양은 지치고 완전히 힘이 빠집니다.

그래서 목자는 양 울타리 문에 서서 우리로 들어가는 양을 한 마리씩 검사합니다. 만일 상처 난 곳이 있으면 목자는 그 부위에 통증을 가라앉히고 치료하는 기름을 발라줍니다. 그러면 상처는 덧나지 않고 곧 아물게 됩니다.

게다가 목자는 흙으로 만든 큰 주전자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기화(氣化)를 통해서 늘 물을 신선하고 차갑게 유지하는 그릇입니다. 양이 들어올 때, 목자는 큰 컵에다 이 신선한 물을 넘치도록 따릅니다. 그러면 지친 양은 생명을 얼른 회복시키는 음료를 벌컥벌컥 마십니다.

어렸을 때, 손가락을 다쳤거나 발가락을 삐었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엄마에게 달려갑니다. 엄마가 다친 곳에 입을 맞춰주면 아픔이 사라져버리지요. 어머니의 사랑의 관심이 신비한 치유를 일으킨 까닭입니다.

좀 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다칩니다. 이빨이 썩어서 아프듯이 가슴이 아플 수 있습니다. 양심이 아픔을 느낍니다. 세상이 누군가를 잔인하고 냉혹하게 대할 때, 그의 감정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용기를 잃고 지치게 됩니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견딜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인자한 목자가 계셔서 자기 자녀들의 아픔을 헤아려주십니다. 늘 그 상처를 돌보아줄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유명한 스코틀란드의 희극배우인 해리 러더(Harry Rauder)는 그의 아들을 잃고 깊은 상심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목자를 발견했습니다.

훗날 그가 시카고의 수많은 관객 앞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그는 계속 갈채를 받았습니다. 마지막 답례 때 그가 관객들을 조용하게 만들고는 말했습니다. “내게 감사하지 마세요. 내 마음에 노래를 일으킨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하세요.”

다윗이 쓴 시구를 주의 깊게 읽어봅시다.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다윗은 우리의머리라고 하지 않았어요. 복수가 아니라 단수를 썼어요. 하루 종일 목자는 온 양떼를 돌봅니다. 그러나 양떼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갈 때, 목자는 한 마리씩 돌보아 줍니다.

대학 안에 일 년이 가도 내 이름을 모르는 한 교수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나도 별로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분은 자기 양들의 이름을 부르신다.” (10:3) 바로 이것입니다.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곧 나를 중요한 존재로 여기는 것입니다.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그분이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신다......그분은 수많은 별들을 하나하나 다 구분하신다.”(147:3,4) 이 우주를 다스리는 능력을 내가 쓸 수 있습니다.

11.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리니

남태평양이란 연극에서 메어리 마틴(Mary Martin)이 멋진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런 노래입니다. “나는 흥분제를 먹은 듯 마음 든든해. 희망이라 부르는 약을. 내 마음에서 이 소망을 떼어낼 수 없다네.”

다윗은 이 같은 감정을 다른 말로 표현하고 있어요. “내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그는 생각으로만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한 말입니다.

시편 23편을 쓰고 있을 때 다윗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비참한 일들도 겪어보았고 실망스런 일도 겪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시고 넉넉하게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생명을 회복시켜 주시고, 두려움을 쫓아내는 분이십니다. 지평선 위에 어두운 구름이 잔뜩 덮여 있을 지라도, 다윗은 자신이 알게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내일 햇살이 비치리라고 확신했습니다.

악한 인간성과 이 세계의 파괴적인 면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듣습니다. 단 한 번의 폭발로도 도시들을 다 부술 수 있는 폭탄이 있는 줄 압니다. 인류의 악행에 보복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소리에 몸이 떨립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 마음에 양떼를 인도하시는 사랑이 가득한 목자의 모습이 가득 떠오를 때, 그분이 어두운 골짜기 사이로 우리를 인도해 가시리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스승 가운데 한 분이 피바디(Endicott Peabady)교수입니다. 이 분은 여러 해 동안 그로톤(Groton)학교의 교장으로 계셨습니다. 어느 날 학교 예배시간에 소년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인생이 늘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가장 위대한 사실은 문명이란 늘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의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40년 뒤에 그 제자가 이렇게 말해서 국민들에게 새로운 열정을 주었습니다. “단 하나의 두려움이 있는데, 그것은 두렵다는 생각을 갖는 바로 그것입니다.”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는 절망가운데 있는 국민들에게 이렇게 희망을 준 일로 언제나 우리의 가슴에 기억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재난 가운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지가 좀 나쁘다고 여깁니다. 아픈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를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시작합니다. 내일을 두려움과 공포로 느낍니다.

나는 아주 성공적인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 교수님은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서 자신을 완전히 빈 존재라고 믿도록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을 영화 장면이 비치는 스크린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는 거에요.

마음의 스크린에 당신이 일어났으면 하는 어떤 좋은 일을 비쳐보세요. 그 영상을 지웠다가 다시 비쳐보세요. 또 지웠다가 거듭거듭 그 영상이 또렷해지고 분명해질 때까지 비쳐보세요.

이 과정을 통해서 당신의 의식과 무의식 안에 일어났으면 하는 좋은 일의 장면이 또렷하게 새겨질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가서 그 그려진 광경이 현실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기도하고 믿는 마음을 계속 간직하라고.

인생에서 마음에 그린 그 광경이 얼마나 온전하게, 그리고 재빨리 발전해 가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우리 세계와 자신에 대해서 비극적인 예측을 하지 마세요. 시인의 말을 들어봅시다. “이날은 주의 날이니,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118:24)

하루 아침을 희망으로 시작합시다. 이 구절을 마음속 깊이 새기세요.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정말 그렇습니다.

 

12. 내가 주님 집에 영원히 거하리이다

 

오후 5시쯤, 아틀란타 주의 도심지에 있는 것이 내게는 짜릿한 경험입니다. 길거리는 사람과 차로 붐빕니다. 여러 버스들이 달리고 있고,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은 서로서로 틈에 끼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집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흥분상태에 있습니다. 존 패인(Jone Howard Payne)은 구 년 동안 집에서 떨어져 살았습니다. 어느 날 오후, 그가 창가에 서서 사람들을 지켜보았습니다. 사람들은 행복한 표정을 하고 서둘러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갑자기 그는 외로워졌어요. 자기는 파리의 한 하숙집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더 참을 수 없어서 창가에서 돌아섰습니다. 그리고는 일을 해댔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글쓰는 일인데, 중요한 연극대본을 쓰고 있었습니다. 감상적인 꿈에 젖을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롱아일랜드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 대한 분위기와 기억들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연필을 들고 쓰기 시작했어요.

 

아무리 즐겁고 궁궐 같은 곳일지라도

우리는 방랑하네.

아무리 비천한 곳일지라도 집과 같은 곳은 없으리.

 

백년이 넘게 이 노래가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특별한 감동을 주어왔습니다. 정말 집과 같은 곳은 없어요.

나 또한 집으로 돌아가는 군중들을 보면서 마음이 울적해졌습니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돌아 가야할 집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밤을 지낼 싼 잠자리를 찾아 방황합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도시 안에 번듯하게 서있는 좋은 호텔에 들겠지만 아무튼 그들도 집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가는 것입니다.

나는 수많은 술 중독자들을 상담했습니다. 특별히 많은 여성 중독자들이 내게 술을 먹기 시작한 이유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여자들은 자기 혼자만 있는 생기 없는 빈방이나 작은 아파트에 늘 돌아가야 했답니다. 혼자서 사는 것이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되었다는 거예요.

하루가 끝날 무렵에 들어갈 집이 없는 사람을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애처로운 일이 있습니다. 인생을 마감할 무렵에 하나님을 믿지 못하거나 영원한 집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을 보는 일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어두운 무덤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허무만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은 시편23편을 다 써가며 믿음도 점점 강해지면서 이렇게 적게 되었습니다. “내가 주님의 집에 영원토록 거하리이다.”

버년(John Bunyan)의 천로역정에 마음을 뒤흔드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피블 마인드씨가 자기 집에 대한 희망을 말한 구절입니다.

 

여기 내 굳은 결심을 밝힙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뛰어서 가겠습니다.

뛸 수 없을 때는 걸어가겠고,

걸을 수 없을 때는 기어서라도 가겠습니다.

비록 내 마음 약할지라도,

내 마음은 다리가 없는 강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말씀은 다윗이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 것이요, 누구든지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11;25,26)

인생을 마감할 때, 다윗이 확신하며 시편 23편에서 묘사한 그 하나님을 알기만 하면, 그 즉시 그 인생은 집을 향해 가게될 것입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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