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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씨앗향기 노래설교 "불안이라는 이름의 은총"

관리자 2025-10-23 (목) 10:13 10개월전 1042  
하늘씨앗향기 노래설교 
"불안이라는 이름의 은총"

여러분, 성 어거스틴이란 이름, 혹시 들어보셨나요?
그의 고백록, “우리 마음이 안달한다”는 그 유명한 말.
단순히 심리적인 공허함이 아니죠.
“하나님께로 향한 근원적인 그리움”의 노래.
채워지지 않는 갈망, 바로 그것이 우리영혼의 안달입니다.
오늘 저는 이 ‘안달하는 마음’이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씨앗’임을
함께 불러보고 싶습니다.

저 먼 옛날부터 영혼이 속삭인 말
채워지지 않는 깊은 곳의 갈망
세상 것으로 덮으려 할수록 커져
어거스틴의 고백, “내 맘이 안달한다”
시편 36:9의 빛, 생명의 길 안에
우리 존재의 근원, 그분을 향한 향수

우리는 창세기 1:26,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어요.
단순한 지위가 아니라, 신성(神性)을 내포한 존재로!
사랑을 나누고, 관계 속에서 빛을 발하도록.
그런데 이 시대, “신이 죽었다”는 니체의 외침이 울려 퍼집니다.
니체는 하나님이 사라졌다고 말한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신성’이 작동을 멈춘 것을 본 거죠.
우리가 사랑, 정의, 섬김을 실천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삶을 외면할 때,
내 안의 빛은 ‘죽은 듯이’ 침묵합니다.
니체가 본 것은, 바로 이 인간의 불응(不應)으로 인해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죽은 것처럼 보이는' 신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 “하나님의 형상”
사랑과 정의로 드러나야 할 우리 본성
허나 니체의 외침, “신은 죽었다”는 선언
우리의 불응으로 멈춘 내 안의 신성(神性)
불안과 공허함, 은총 아니면 저주인가
잘못된 길 경고하는 영혼의 나침반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이 불안이 저주가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 근원적 향수입니다.
세속적인 위안으로 채울수록 더 깊어지는 공허함.
그것은 우리를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은총입니다.

불안은 은총의 이름, 너를 부르는 소리
세상의 허상에서 돌이켜, 주께로 와라
안달하는 마음을 숨기거나 억누르지 마
솔직한 너의 기도로, 그분 앞에 올려드려
세속의 쾌락 아닌 기도, 묵상, 작은 섬김으로
내 안의 신성을 깨워, 다시 살아나리라

교회는 마치 스테인드글라스의 틀과 같아요.
우리 각자는 작고 연약한 조각이지만,
서로 연결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온전한 빛을 드러냅니다.
한 조각이 상처로 고립되면, 전체 그림은 어두워집니다.
진심 어린 방문, 용서, 그리고 사랑의 나눔.
이 목회적인 돌봄이 끊어진 연결을 복원합니다.
소그룹 활동과 공동체 안에서 ‘연결 복원’이 이루어질 때,
고통 속에 홀로 있던 성도에게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줄 때,
우리의 빛은 더욱 강렬하게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서로 연결된 우리
한 조각의 아픔은 전체 그림의 슬픔
형식적인 예배 넘어 소그룹의 돌봄으로
고립된 영혼에게 사랑의 손 내밀어 주오
한 사람의 회복이 전체를 밝히는 빛
서로의 디딤돌 되어 따뜻한 공동체로


매일 10분 기도와 성경 묵상,
일주일 한 번의 작은 섬김.
이 작은 실천들이 바로 우리 안의 신성을 깨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불안을 회피하지 말고, 은총으로 받으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입니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사랑과 정의의 실천이,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을 무색하게 할 것입니다.

내 안의 신성을 깨워, 삶으로 하나님을 말할 때
세상은 다시 하나님을 만납니다.
불안은 은총, 그 길을 따라갑니다.
우리가 연결된 빛으로, 이 세상에 흘러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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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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