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묵상 3월 19일(화)
요한복음서 11:17-27
예수께서 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 속에 있은 지가 벌써 나흘이나 되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오 리가 조금 넘는 가까운 곳인데, 많은 유대 사람이 그 오라버니의 일로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서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나는 주님께서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실 줄 압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네 오라버니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네가 이것을 믿느냐?”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예, 주님! 주님은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묵상)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뒤에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맞으러 나간 마르다는 반가운 인사와 함께, 오라버니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을 표현합니다. 마르다의 아픔과 고통 그리고 인간적인 슬픔을 마음으로 느껴보십시오. 당신이 경험했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순간들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아쉬움과 슬픔을 예수님께 아뢰는 마르다의 심정으로, 당신의 마음을 주님께 아뢰며 내려놓으십시오. 당신은 삶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슬픈 마음이 더 큰 사랑의 열매로 맺어질 것을 믿고 있습니까?
슬퍼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마르다는 ‘의인들이 마지막 때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안다’라고 반응했습니다. ‘내가 압니다’라는 마르다의 처음 고백은 당시 유대 사람들(특히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졌던 부활에 대한 기대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을 미래에 일어날 희망적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이 미래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지금 현실화하는 사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어서 먼 훗날에 부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살아서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이미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당신의 믿음은 어떤 것인지 돌아보십시오. 당신은 지금 이미 시작된 영원한 생명과 부활을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방문으로 마르다의 슬픔은 부활에 대한 새로운 고백과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당신에게 찾아오시고, 묵상과 기도의 자리에서 당신의 슬픔을 어루만져 주십니다. 새봄의 기운과 함께 당신을 찾아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십시오. 당신이 죽음보다 더한 고통 가운데 있더라도, 주님의 사랑은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은총으로 당신의 삶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성찰)
이미 시작된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일상 속에서 드리는 기도)
영원한 생명과 부활의 은총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시편 34:17-19
의인이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반드시 들어 주시고, 그 모든 재난에서 반드시 건져 주신다. 주님은, 마음 상한 사람에게 가까이 계시고, 낙심한 사람을 구원해 주신다. 의로운 사람에게는 고난이 많지만, 주님께서는 그 모든 고난에서 그를 건져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