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4일 / 창조절 다섯째 주일
이사야서 55:1-5
너희 목마른 사람들아, 어서 물로 나오너라. 돈이 없는 사람도 오너라. 너희는 와서 사서 먹되,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지불하지 말고 포도주와 젖을 사거라.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으니, 이것은 곧 다윗에게 베푼 나의 확실한 은혜다. --- ”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너에게 달려올 것이니, 이는 주 너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요한1서 1:1-7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누가복음서 11:1-4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는데, 기도를 마치셨을 때에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에게 말하였다.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말하여라.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십시오.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시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우리가 용서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 생명을 주는 영원한 언약 ]
1. 생명의 언약
오늘 말씀의 제목은 생명을 주는 영원한 언약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생명의 활동은 단지 살아서 숨 쉬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의미를 찾고, 관계를 맺고,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 힘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모으고, 더 단단히 쌓아 올리고, 더 빠르게 증명하면 생명이 풍성해지리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애써도 만족스럽지 않고, 무언가를 얻었는데도 기쁨이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마침내 알 수 없는 목마름으로 생명이 시들어갑니다.
오늘 세 본문은 목마른 사람들을 생명의 물가로 초대합니다. 또한, 생명이 우리의 노력이나 거래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임을 밝힙니다. 이 초대는 단순한 위로에 그치지 않고, 영원한 언약으로 이어집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먼저 베푸시는 은혜로운 관계의 선언입니다.
2. 다윗과 맺은 영원한 언약
이사야서는 먼저 우리의 헛된 수고를 지적합니다. “어찌하여 너희는 양식을 얻지도 못하면서 돈을 지불하며, 배부르게 하여주지도 못하는데, 그것 때문에 수고하느냐?” 이 질문은 책망이라기보다, 우리의 목마름의 원인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배부르게 하지 못하는 것에 인생을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럴수록 영혼은 더 말라 갑니다. 하나님은 길을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나에게 와서 들어라. 그러면 너희 영혼이 살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듣는 자리로 오라는 말은 곧 언약의 자리로 오라는 초대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영원한 언약을 맺겠으니, 이것은 곧 다윗에게 베푼 나의 확실한 은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노아와 맺으신 언약은 창조 세계를 보존하시는 약속이었고,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은 복의 통로로 부르시는 약속이었습니다.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맺으신 언약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길을 알려 주시는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베푸신 확실한 은혜는 그 모든 언약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곧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의 확증과 같습니다. 이 언약의 핵심은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왕국의 안전과 평화를 약속하셨습니다. 특별히 다윗 자손들의 왕위가 영원히 튼튼하게 서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기하 7장 16절) 그러나 역사 속에서 왕국은 무너지고, 다윗 왕조는 끊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언약은 폐기된 것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언자는 다윗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전혀 폐기되지 않았다고 강조합니다. 오히려 다윗과 맺은 언약이 온전히 성취됨으로써, 다윗이 모든 민족 앞에 증인으로 세워지고 모든 민족의 인도자와 명령자가 될 것이라 말합니다.
다윗 언약은 다윗 왕가만을 위한 언약이 아니라, 그 집안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이끌어 가시겠다는 계획이자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약속의 범위가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닫힌 울타리를 넘어서 확장된다고 말합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너에게 달려올 것이니, 이는 주 너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다윗 언약은 특정 집단의 자부심을 강화하는 표지가 아니라, 생명의 초대가 경계를 넘어 확장되는 통로입니다. 언약의 목적은 다윗 왕가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결국 이 영원한 언약은 먼 훗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안에서 분명해집니다. 값없이 오라는 생명의 초대는 십자가에서 가장 깊고 분명하게 확증되고, 영원한 언약이라는 선언은 부활 사건으로 성취됩니다. 우리는 언약을 지켜서 생명을 얻는 사람들이 아니라, 언약을 믿음으로 받아서 생명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나의 삶에 가장 큰 목마름은 무엇인가?)
3. 생명과 사귐
이사야가 언약의 문을 열어서 보여 주었다면, 요한1서는 그 문을 통해 우리에게 실제 다가오신 생명을 증언합니다.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요한1서는 이 생명을 관념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문학적 서술이 아닙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영지주의적 경향을 띤 사람들이 나타나서, 신앙을 영적인 지식으로만 만들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삶의 윤리를 흐리게 만들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몸과 물질과 실제 역사를 가볍게 여기고, 신앙을 머릿속 체계로 바꾸려 했습니다. 요한1서 본문은 그 길을 단호하게 끊어냅니다. 생명은 사상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몸으로 나타났고, 사람의 손으로 만져졌고, 마침내 하늘로 들려 올라갔습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복음은 개인의 내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복음은 사귐을 낳습니다. 그 사귐은 단순한 친목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열리면, 이웃과의 사귐이 열립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귐이 막혀 있으면, 결국 사람을 향한 사귐도 막히고 왜곡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귀는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사랑의 빛을 받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둠은 단지 감정의 침울함이 아닙니다. 숨기고 속이고 분열시키는 말과 행동입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진실을 피하고, 사랑을 조건이나 거래로 바꾸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과 사귀는 것은 그 사람이 빛 가운데 걸어가는 삶으로 확인되어야 합니다. 이 말은 모두 이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빛 가운데 걷는 삶은 완벽함이 아니라 정직함을 지향합니다. 정직함은 내 의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위에서 유지됩니다. 결국 언약은 우리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이웃과의 사귐으로 연결될 때, 공동체 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4. 언약의 기도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기도의 기술을 가르치지 않으십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고, 영원한 언약을 붙들 수 있게 해주십니다. 누가복음서의 주기도에 나오는 다섯 가지 청원은 결국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정리됩니다.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고,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십시오.” 내 삶과 공동체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실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집니다. 내 이름, 내 자존심, 내 체면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삶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내 삶과 공동체 안에 들어오는 일입니다. 언약의 사람은 자기 나라를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십시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빚진 모든 사람을 우리가 용서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나의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양식을 구하는 것은, 개인의 생존만을 구하지 않고, 공동의 생명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용서는 기도의 윤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늘 이웃과의 관계를 지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구하면서, 이웃을 용서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시험은 단순한 난관이 아니라, 언약의 관계를 끊어내는 유혹입니다. 불신과 냉소, 분열과 증오, 자기 의로움의 강화가 바로 시험입니다. 주기도는 그 유혹에서 건져 달라는 언약 백성의 간구입니다. 결국 주기도는 언약의 삶을 살도록 이끄는 기도입니다. 이사야서의 초대와 요한1서의 사귐이 주기도 안에서 현실이 되어 만납니다. 언약은 먼 과거의 약속이 아니라, 주기도를 통해 매일 숨 쉬듯 이루어가는 실제적인 관계 맺음입니다. (주기도를 드릴 때 내가 가장 간절히 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5. 생명을 주는 영원한 언약
하나님은 영원한 언약 안에 있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구원과 생명의 길로 이끄십니다. 영원한 언약 안에 있는 사람들은 생명의 말씀을 삶으로 체험하며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갑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거짓과 어둠에서 벗어나서 빛과 진리의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과 온전한 일치를 이루도록 도와줍니다. 가장 중요한 언약에 올바르게 연결된 사람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조화로운 결합을 위해 기도하고, 기도한 대로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생명을 주는 영원한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은 마침내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성찰) 생명의 언약은 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응답) 매일 기도하며 언약의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창조주 하나님, 목마른 우리를 물가로 부르시고 생명을 주는 영원한 언약의 사람이 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사귄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시고, 빛 가운데 걸어가는 정직함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우리의 사귐이 서로를 살리는 사랑과 용서에 이르게 해주십시오. 날마다 기도로 주님과 연결되게 하시고, 영원한 언약 안에 거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