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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0일 창조절 셋째주일

관리자 2026-09-14 (월) 12:46 13일전 67  

2026년 9월 20일 / 창조절 셋째 주일

창세기 2:18-25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주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그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 남자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었다. 그래서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가 잠든 사이에, 주 하나님이 그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그 자리는 살로 메우셨다. 주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에베소서 5:21-6:4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아내 된 이 여러분, 남편에게 하기를 주님께 하듯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과 같이,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됩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몸의 구주이십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듯이, 아내도 모든 일에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된 이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서,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며,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없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교회를 자기 앞에 내세우시려는 것이며, 교회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남편도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육신을 미워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 육신을 먹여 살리고 돌보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그렇게 하시듯이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큽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각각 자기 아내를 자기 몸 같이 사랑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중하십시오.

자녀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마가복음서 10:13-16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

 

[ 한 몸을 이루는 사람들 ]

 

1. 가족을 내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한 몸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관계 안으로 부르셨습니다. 사람이 맺고 살아가는 관계 가운데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 질서가 드러나는 것이 가족입니다. 여기에서 가족이란 혈연과 혼인으로 이루어지는 관계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가족은 하나님이 내신 관계의 질서가 가장 응축되어 드러나는 자리이며, 그 질서는 가정에서만이 아니라 교회와 이웃 관계에까지 확장됩니다.

 

오늘 세 본문은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을 말해줍니다. 창세기는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통해 관계의 창조를 증언합니다. 에베소서는 서로 순종하라는 말씀으로 한 몸의 질서가 지배가 아니라, 사랑과 존중의 상호성 위에 세워져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가복음서는 어린이들을 막아서는 제자들을 향해 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한 몸의 공동체가 약한 지체를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껴안아 축복하는 자리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한 몸을 이루는 사람들이란 단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관계를 사랑과 존중과 돌봄으로 몸처럼 살아내는 사람들입니다.

 

2. 관계의 창조

하나님은 손수 만드신 창조 세계를 보시고 좋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창조 안에 하나님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여기에서 좋지 않다는 말은 잘못을 정죄하는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관계 안에서 살아가도록 지으셨다는 창조의 의도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혼자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며 자기 자리를 배우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들의 짐승과 공중의 새들을 사람에게로 데려오십니다. 사람은 그들에게 이름을 붙입니다. 그러나 그 남자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길빗대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십니다. 그때 사람이 고백합니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이 고백은 상대를 소유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이며 동시에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터져 나오는 기쁨의 언어입니다.

 

사람에게는 ‘돕는 사람, 알맞은 짝’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돕는다는 말은 종속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 말의 뿌리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건지시고 붙드시는 구원의 언어와 맞닿아 있습니다. 또한 알맞은 짝은 대등하게 마주 서는 동반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가 말하는 관계는 우열과 지배가 아니라, 대등한 자리에서 서로를 지탱하고 살리는 동반의 관계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더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단지 육체적 결합만이 아니라, 삶의 중심이 옮겨지고, 서로의 생애를 책임지는 새로운 연합의 창조입니다.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것은 관계의 본래 모습이 경쟁이나 계산이 아니라, 신뢰와 안전, 정직과 친밀함 위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내신 관계의 질서는 바로 이 방향을 향합니다.

 

누구에게 돕는 사람, 알맞은 짝이 되어야 하는가?

 

3. 한 몸의 질서

바울 사도는 가정과 공동체의 질서를 말하면서, 먼저 한 문장으로 그 대전제를 제시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한 몸의 질서는 한쪽의 우월성과 다른 한쪽의 종속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서로 순종하라는 말씀은 관계를 지배하거나 움켜쥐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삶을 책임지는 길로 나아가라는 부르심입니다. 이 말씀은 누구에게도 폭력이나 강압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방식으로 관계를 살리는 길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바울 사도는 남편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남편된 이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심 같이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방식은 지배나 소유가 아니라 자기 내어줌이었습니다. 살리고, 돌보고,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한 몸의 사랑은 감정의 고백에 머물지 않고, 상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윤리적 실천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남편도 아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입니다.” 결국 가족의 질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한 몸의 질서이며, 그 핵심인 사랑과 존중은 남편과 아내에게 동시에 주어진 명령이자 사명입니다.

 

한 몸의 질서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 확장됩니다. “자녀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자녀에게는 주 안에서 순종하라는 권면이, 아버지에게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절제의 권면이 주어집니다. 가정은 통제의 장이 아니라 생명이 자라나는 자리이며, 주님의 훈련과 훈계는 억압이 아니라 양육입니다. 그 양육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주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자라나는 길입니다. 힘의 서열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책임의 질서 안에서 가정과 공동체는 한 몸으로 자라갑니다.

 

순종의 권면은 어떤 상처를 남겼는가? 사랑의 권면은 어떤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가?

 

4. 가장 연약한 지체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의 질서 안에서는 가장 연약한 어린아이조차 무시되거나 소외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을 때, 제자들은 그들을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노하셨습니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한 몸을 이루는 공동체는 가장 연약한 지체를 불편한 존재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가까이 품고, 그들의 자리를 지켜주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소유물처럼 움켜쥐려 하지 않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선물로 받는 태도를 뜻합니다. 어린이는 계산으로 관계를 시작하기보다 신뢰 속에서 관계를 배웁니다. 하나님 나라도 그렇게 신뢰로 받는 자리에서 열립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서 축복하여 주셨다.” 이 장면은 공동체가 어떤 방식으로 한 몸이 되는지를 보여 줍니다. 한 몸이라면, 약한 지체를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더 가까이 품어야 합니다. 어린이를 껴안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공동체의 질서가 강한 자의 편의가 아니라, 연약한 자의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세워져야 함을 선명하게 증언합니다.

 

어린이에게 배우려는 자세와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

껴안고 축복해 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5. 한 몸을 이루는 사람들

하나님이 내신 창조 세계는 의존과 연결의 원리로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여기며 받아들임으로써 한 몸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 한 몸은 지배가 아니라, 사랑과 존중, 돌봄과 책임으로 자라납니다. 그 한 몸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습니다. 약한 지체를 품어 축복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 때, 가족과 교회는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은 관계로 회복되어 갑니다.

 

(성찰) 내가 꿈꾸는 한 몸의 관계는 가정과 교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가?

(응답) 사랑하고 존중하여 한 몸을 이루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사랑과 존중의 관계 안으로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가 지배와 비교의 질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를 돌보는 한 몸이 되게 해주십시오. 약한 지체를 품어 축복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관계가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으로 회복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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