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1일 / 창조절 아홉째 주일
이사야서 6:1-8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차 있었다. 그분 위로는 스랍들이 서 있었는데, 스랍들은 저마다 날개를 여섯 가지고 있었다. --- 그리고 그들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화답하였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다.” 우렁차게 부르는 이 노랫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찼다. 나는 부르짖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 그 때에 스랍들 가운데서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부집게로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그것을 나의 입에 대며 말하였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 그 때에 나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내가 아뢰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요한계시록 15:1-4
그리고 나는 하늘에서 크고도 놀라운 또 다른 표징을 하나 보았습니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난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지막 재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것으로 끝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또 불이 섞인 유리 바다와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유리 바다 위에는 짐승과 그 짐승 우상과 그 이름을 상징하는 숫자를 이긴 사람이, 하나님의 거문고를 들고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만민의 왕이신 주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도 참되십니다. 주님, 누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주님만이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이 주님 앞으로 와서 경배할 것입니다. 주님의 정의로운 행동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서 8:12-16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이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니, 당신의 증언은 참되지 못하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비록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내 증언은 참되다.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너희는 사람이 정한 기준을 따라 심판한다. 나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심판하면 내 심판은 참되다. 그것은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 함께하시는 하나님 ]
1. 높이 그러나 함께하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함께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높이 계십니다. 그러나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그 심판은 불의와 폭력을 끝내고 생명을 살리시는 정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어둠이 아니라 빛의 길로 부르십니다.
오늘 세 본문은 이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서는 시대가 흔들리는 자리에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신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요한계시록은 짐승의 우상과 제국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려줍니다. 요한복음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포하신 예수님께서,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 진리를 증언하시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2. 거룩 앞에서 무너져도 은혜로 다시 일어서기
이사야 예언자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을 봅니다. 왕이 죽고 나라가 흔들릴 때, 이사야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신 주님을 봅니다. 세상의 왕은 죽어도, 참 왕이신 하나님은 죽지 않으십니다. 시대가 흔들려도 주님의 보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스랍들이 서로 화답하며 노래합니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만군의 주님! 온 땅에 그의 영광이 가득하다.” 그 노랫소리에 문지방의 터가 흔들리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은 아름다운 감동을 줄 뿐 아니라, 사람을 흔들어 깨웁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세상을 보던 방식도 흔들리고, 자신을 이해하던 방식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고백합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 거룩 앞에서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민낯입니다. 이사야는 자기만 부정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개인의 죄도 드러나고, 공동체의 죄도 드러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은 이사야를 무너뜨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스랍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숯을 가져와 그의 입에 대며 말합니다. “이것이 너의 입술에 닿았으니, 너의 악은 사라지고, 너의 죄는 사해졌다.” 이사야가 스스로 정결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술을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정함을 드러내시지만, 드러낸 뒤에 버리지 않으십니다. 은혜로 씻으시고 다시 세우십니다. 그 후 이사야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 이사야가 대답합니다.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를 보내어 주십시오.” 참된 파송은 자기 확신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거룩 앞에서 무너지고, 은혜로 다시 세워진 사람에게서 시작됩니다.
(성찰: 나의 부정함과 공동체의 부정함이 드러날 때, 나는 숨으려 하는가, 아니면 주님 앞에 나아가려 하는가?)
3. 이긴 자들이 부르는 노래
요한계시록은 박해와 환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크고 놀라운 표징을 봅니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난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마지막 재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것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감정적인 분풀이가 아닙니다. 생명을 짓밟는 불의와 폭력을 끝내시는 하나님의 정의입니다. 약한 사람을 희생시키고, 권력을 우상으로 만들고, 사람을 숫자와 도구로 취급하는 질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가 끝난다는 말은 희망의 말입니다. 짐승의 질서가 영원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역사는 악의 손안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요한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다 위에 서 있는 이긴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짐승과 그 짐승 우상과 그 이름을 상징하는 숫자”를 이긴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현실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이 아니라, 강압과 우상숭배의 유혹 속에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짐승 우상은 어느 시대에나 다른 얼굴로 나타납니다. 로마 제국의 시대에는 황제 숭배와 제국의 폭력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는 권력의 숭배, 자본의 절대화, 성공이라는 우상, 사람을 효율과 성과로만 평가하는 질서, 약한 사람의 고통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체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상의 질서에 순응하라는 세상의 요구에 맞서서, 믿음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거문고를 들고 노래합니다. 그 노래는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입니다. 모세의 노래는, 출애굽의 하나님, 제국의 노예들을 해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어린 양의 노래는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찬양합니다.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만민의 왕이신 주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도 참되십니다.”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만이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이 주님 앞으로 와서 경배할 것입니다. 주님의 정의로운 행동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찬양은 현실을 잊기 위한 노래가 아닙니다. 찬양은 저항의 고백입니다. “짐승이 마지막이 아니다. 우상이 마지막이 아니다. 폭력과 불의가 마지막이 아니다. 주님만이 홀로 거룩하시다.” 이것이 믿음의 찬양입니다.
(성찰: 내가 절하고 있는 시대의 우상은 무엇인가? 그 자리에서 내가 불러야 할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는 무엇인가?)
4. 빛으로 동행하시는 예수님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예수님은 단지 빛을 가르치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이 빛이십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알려 주는 스승 정도가 아니라, 어둠을 밝히는 생명의 빛 자체입니다. 이 말씀은 초막절의 배경을 떠올리게 합니다. 광야의 어둠 속에서 하나님은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백성과 함께하셨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빛이 세상 가운데 임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좋은 가르침을 배우는 정도가 아니라, 어둠 속에 다니던 삶의 방향을 바꾸어 생명의 빛을 따라 걷는 일입니다. 어둠은 개인의 불안만이 아닙니다. 거짓과 폭력, 차별과 배제, 자기 의와 정죄,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기준이 어둠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둠 가운데 빛으로 오셨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께 말합니다. “당신이 스스로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니, 당신의 증언은 참되지 못하오.” 그러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비록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내 증언은 참되다.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본문의 중심은 예수님의 성품이 아니라 예수님의 정체성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오셨고, 아버지께로 가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혼자 증언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 증언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증언은 참됩니다.
예수님의 평온함은 억울함을 삼키고 가만히 있는 침묵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침착함은 불의를 모른척하는 무관심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함께하심에서 나오는 자유입니다. 어둠의 방식에 휘말리지 않는 빛의 권위입니다. 그러므로 빛을 따른다는 것은 불의 앞에서 감정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억울함과 분노까지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가져가고, 그것이 미움과 파괴로 흐르지 않도록 빛 안에서 다듬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을 따를 때, 우리는 어둠의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생명의 빛을 따라 진리의 길을 걷게 됩니다.
(성찰: 내가 어느 자리에서 어둠의 방식에 휘말리는가? 빛으로 나오기 위해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5. 거룩, 찬양, 빛의 길로 이끄시는 하나님
높이 계신 하나님은 또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우리의 부정함을 드러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은혜로 정결케 하십니다. 그리고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갈 것인가?”하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환난 속에서도 함께하십니다. 시대의 우상 앞에서 절하지 않게 하시고,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의 정의를 찬양하게 하십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세상의 빛이신 주님의 뒤를 따라, 어둠이 아니라 생명의 빛 가운데 걷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는 사람은 거룩 앞에서 숨지 않고, 은혜 앞에서 다시 일어서며, 환난 속에서도 찬양하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따릅니다.
성찰: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드러내야 하는가?
응답: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거룩과 찬양과 빛의 길을 걷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함께하시는 하나님, 높이 계신 주님의 거룩 앞에서 숨지 않게 하시고, 은혜로 우리의 입술과 삶을 정결하게 해주십시오. 시대의 우상 앞에 절하지 않게 하시며,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로 주님의 정의를 찬양하게 해주십시오.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어둠의 방식에 휘말리지 않고, 생명의 진리를 증언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