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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5일 창조절 여덟째 주일

관리자 2026-11-01 (일) 14:30 5시간전 1  

2026년 10월 25일 / 창조절 여덟째 주일

출애굽기 33:18-23

그 때에 모세가 “저에게 주님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나의 모든 영광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나의 거룩한 이름을 선포할 것이다. 나는 주다. 은혜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고, 불쌍히 여기고 싶은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너는 나의 옆에 있는 한 곳, 그 바위 위에 서 있어라. 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나의 손바닥으로 가리워 주겠다. 그 뒤에 내가 나의 손바닥을 거두리니, 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

 

로마서 11:33-36

하나님의 부유하심은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으며, 누가 주님의 조언자가 되었습니까?”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

 

누가복음서 10:21-24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쁨에 차서 이렇게 아뢰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는 드러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우신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아들 밖에는, 그리고 아버지를 계시하여 주려고 아들이 택한 사람 밖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돌아서서 따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왕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사람들 ]

 

1.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사람들

오늘은 창조절 여덟째 주일이며, 종교개혁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중심을 다시 세우려는 운동이었습니다. 사람의 공로와 제도와 권위가 하나님을 가릴 때, 다시 말씀과 은혜 앞에 서게 하려는 부르심이었습니다. 깔뱅은 기독교강요 제1권 제1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 자신에 대한 참된 지식에 이르려면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응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자신도 알지 못하고, 자신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왜곡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말은 단지 더 많은 종교적 정보를 얻겠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 삶을 다시 올바르게 세우겠다는 뜻입니다.

 

오늘 세 본문은 모세의 갈망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신비 앞에서 찬양을 올리는 바울 사도를 지나, 마침내 예수님의 축복 선언에 이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소유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방식으로 그 얼굴을 보는 복된 길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2. 얼굴과 등

구약 본문에는 모세가 등장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알고 싶었고, 그 얼굴을 보고 싶었으나,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모세는 이집트 탈출 후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돌판은 금송아지 사건으로 깨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가 두 번째 돌판을 받기 전, 공동체가 흔들리고 지도자의 마음이 가장 무거웠던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모세는 이미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모세는 그때와 다릅니다. 그는 출애굽의 과정과 광야의 인도, 공동체의 배신과 회복이라는 긴 시간을 통과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말합니다. “저에게 주님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모세의 갈망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일 앞에서 하나님을 더 분명히 알고 싶다는 간절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내가 나의 모든 영광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나의 거룩한 이름을 선포할 것이다. --- 그러나 내가 너에게 나의 얼굴은 보이지 않겠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간청을 그대로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의 갈망을 외면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얼굴을 보여주시는 대신, 자신이 거룩하고 자유로운 은혜의 주님임을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옆에 있는 한 곳, 그 바위 위에 서 있어라. 나의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바위 틈에 집어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나의 손바닥으로 가리워 주겠다. 그 뒤에 내가 나의 손바닥을 거두리니, 네가 나의 등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바위틈에 세우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갈 때 손바닥으로 가려 주시고, 다 지나간 뒤에 손바닥을 거두시며 등을 보게 하십니다. 이 장면은 중요한 깨달음을 줍니다. 하나님을 보는 길은 내가 붙잡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길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다는 갈망은 참되지만, 하나님을 내 눈과 내 이해로 다 포획하려는 순간 우리는 위험해집니다. 거룩한 하나님을 인간이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은혜로 보호받으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은 벌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살 수 있도록, 살면서 하나님을 따르도록, 얼굴 대신 등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는 길은 인간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방식으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성찰) 하나님을 더 알고 싶다는 열심과 하나님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3. 이해를 넘어서 찬양으로

로마서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깊고 깊은지 생각해 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유하심은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이 말씀은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긴 구원 교리의 전개가 마무리되는 지점에서 터져 나온 고백입니다. 바울 사도는 설명을 끝내고 찬양으로 돌아섭니다. 교리적 설명의 끝은 이론적 결론이 아니라, 찬양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바라본 것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신비입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이방인의 구원이 맞물려 전개되는 하나님의 섭리는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으며, 누가 주님의 조언자가 되었습니까?” 바울 사도는 이 질문들을 통해 인간의 교만을 꺾고 하나님의 주권을 세웁니다.

 

여기에서 바울 사도가 말하려는 요점은 이해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심판대에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이성과 경험은 유익하지만, 그 자리가 하나님을 재단하는 자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계산 범위 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은혜의 깊은 강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역사입니다. 바울 사도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나고, 그로 말미암아 있고, 그를 위하여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이 고백은 종교개혁 주일의 고백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인간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을 제대로 본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길은, 지식과 이해의 끝에서 교만해지는 길이 아니라, 신비 앞에서 찬양으로 무릎 꿇는 길입니다.

 

(성찰)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찬양으로 옮겨갈 때, 어떤 유익이 있는가?

 

4.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누가복음서 본문에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기쁨에 차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는 드러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을 보는 방식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가 발달한 사람에게 저절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지혜와 경험에 갇혀 마음이 닫힌 사람에게 하나님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무지함이 아니라 겸손하게 열린 태도를 의미합니다. 자신을 맡길 줄 아는 마음, 배우려는 마음, 의존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파악하려는 마음보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아들 밖에는, 그리고 아버지를 계시하여 주려고 아들이 택한 사람 밖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길은 결국 아들을 통해서 열립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듣고 하나님의 마음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많은 조상과 예언자들과 왕들이 보고자 했으나 보지 못했던 것을, 제자들이 보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는 모세보다 더 복된 시대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셨고, 우리는 복음의 빛 아래에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을 삶 속에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세상의 지혜와 능력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열어 순종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성찰) 예수님 앞에 어린아이로 서 있는 자신을 마음으로 그려볼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5.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사람들

인간의 지혜와 경험만으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얼굴은 세상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오직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만 볼 수 있습니다. 전적인 신뢰와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내맡기는 사람, 경외하며 찬양하며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나라로 나아갈 것입니다.

 

(성찰)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 내가 바꾸어야 할 태도는?

(응답) 하나님께 나의 삶을 맡깁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구할 때마다 주님을 내 이해와 경험으로 붙잡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주님이 허락하시는 자리에서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게 해주십시오. 이해를 넘어서는 구원의 신비 앞에서 원망이 아니라 찬양으로 응답하게 하시고, 어린아이처럼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주님의 얼굴을 알아보게 해주십시오. 종교개혁 주일에 우리 교회가 다시 은혜와 말씀 앞에 서게 하시고,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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