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13일 / 창조절 둘째 주일
창세기 1:26-31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온 땅 위에 있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있는 열매를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들이 너희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 곧 생명을 지닌 모든 것에게도 모든 푸른 풀을 먹거리로 준다”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요한1서 3:1-10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자녀라 일컬어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를 참모습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깨끗하신 것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불법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마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마다 그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알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자녀된 이 여러분, 아무에게도 미혹을 당하지 마십시오.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의로우신 것과 같이 의롭습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악마에게 속해 있습니다. 악마는 처음부터 죄를 짓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악마의 일을 멸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그가 하나님에게서 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여기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곧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과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누가복음서 12:4-7
내 친구인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다음에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를 내가 보여 주겠다. 죽인 다음에 지옥에 던질 권세를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라도, 하나님께서는 잊고 계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
1. 하나님의 형상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는 자주 사람을 능력과 성과, 소속과 평판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오늘 세 본문은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킵니다. 창세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존엄과 책임을 지녔다고 말합니다. 요한1서는 그 형상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자녀가 되게 함으로써 더욱 분명해지고, 의와 사랑의 열매로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누가복음서는 사람의 위협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두려움을 넘어서는 길을 보여 줍니다. 오늘 말씀은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새롭게 깨닫게 하고, 그 뜻 안에서 우리 자신과 이웃을 다시 보게 합니다.
2. 존엄과 책임
하나님은 사람을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되었다고 해서, 사람이 눈에 보이는 외형으로 하나님을 닮았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말씀을 다양하게 해석해 왔습니다. 어떤 이들은 형상을 인간 내면의 본질로 이해해 왔고, 그 해석은 인간의 존엄을 강조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더욱 강하게 말하는 것은, 사람이 어떤 능력이나 특성을 가졌느냐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어떤 자리를 주셨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복을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 땅을 정복하여라. ---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 여기에서 다스림은 세상을 소유하고 착취하라는 허락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반영하여 생명을 살리고 질서를 지키는 청지기의 책임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피조물의 세계 밖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니라, 피조물의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도록 부름을 받은 존재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형상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존엄이라는 점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신의 형상은 왕과 같은 소수에게만 붙던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로 선언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왕처럼 존귀하며, 모두가 평등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상을 믿는 사람은, 자신을 귀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이웃 또한 귀하게 여기며, 인간 모두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을 보시고 참 좋아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어떤 일을 하거나 스스로 증명하여 얻어 낸 결과를 칭찬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시고 복을 주신 존재 자체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존귀한 이유는 능력이나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언제, 어떻게 느끼는가?
3. 자라나는 하나님의 씨
요한1서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자녀라 일컬어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자격을 증명하여 얻는 지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으로 부르시고 이름 붙여 주신 정체성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길은 세상의 가치가 정해주는 길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에게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깨끗하신 것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완벽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본문이 말하려는 핵심은, 삶의 순간순간 실수가 없는지 세어보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누구의 자녀인가 하는 점을 항상 생각하며 삶의 방향을 결정하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사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씨는 한순간에 열매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씨는 결국 자라납니다. 시간이 지나 의와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산다는 것은, 두려움으로 자신을 지키는 삶이 아니라, 사랑으로 자신을 내주는 삶입니다. 경쟁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의를 행하며 관계를 살리는 삶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다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씨가 내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을 언제, 어떤 경우에 느끼는가?
4. 두려움과 신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그 다음에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예수님은 삶의 현실 속에 폭력과 두려움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기준이 되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려움의 중심을 옮기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를 내가 보여 주겠다. 죽인 다음에 지옥에 던질 권세를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떨며 움츠러들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잊지 말고 늘 의식하며 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사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말과 평가, 위협과 압박이 내 마음의 보좌를 차지하지 않도록,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라도, 하나님께서는 잊고 계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이 말씀은 우리의 가치가 세상이 정해놓은 가격표에 달려 있지 않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생명조차 잊어버리지 않으시므로, 사람은 더 귀하게 여겨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두려움을 이길 힘을 스스로 만들어 내지 않고, 하나님이 이미 베푸신 돌보심을 신뢰함으로써 두려움을 넘어섭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두려움 앞에서 쉽게 흐려집니다. 두려움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고, 관계를 끊게 하고, 사랑을 계산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귀히 여기신다는 믿음이 마음 깊이 자리 잡을 때, 하나님의 형상은 다시 살아나고, 자녀의 담대함이 회복됩니다.
나를 위축시키는 말과 시선과 평가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5.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하나님의 씨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깨끗한 마음으로 의와 평화를 이루어갑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사람은 두려움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사라지지 않고 우리 안에 남아 있으므로,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찰) 하나님의 형상이 내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응답) 하나님의 자녀로 담대하게 살아가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존귀한 존재로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셨으니, 그 이름에 맞는 삶의 열매를 맺게 해주십시오. 우리 안에 심긴 하나님의 씨가 자라서 의와 사랑으로 나타나게 하시고, 형제자매를 사랑하며 평화를 이루어가게 해주십시오. 사람의 말과 시선에 위축되지 않게 하시고, 참새 한 마리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으며, 담대한 믿음으로 두려움을 넘어서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