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Home회원가입로그인
수련원안내 기도동산 신학마당 신앙과 예술 성서와 말씀 수련숲 알림란
 
 


2026년 9월 6일 창조절 첫째 주일

관리자 2026-08-30 (일) 12:54 29일전 85  

2026년 9월 6일 / 창조절 첫째 주일

창세기 1:1-5, 20-2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니, 빛이 생겼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빛을 낮이라고 하시고, 어둠을 밤이라고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물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새들은 땅 위 하늘 창공으로 날아다녀라“ 하셨다. 하나님이 커다란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는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규대로 창조하시고, 날개 달린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이 이것들에게 복을 베푸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여라. 새들도 땅 위에서 번성하여라“ 하셨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닷샛날이 지났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집짐승과 기어다니는 것과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내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 하나님이 들짐승을 그 종류대로, 집짐승도 그 종류대로, 들에 사는 모든 길짐승도 그 종류대로 만드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요한계시록 4:1, 7-11

그 뒤에 내가 보니, 하늘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내가 들은 그 음성, 곧 나팔 소리와 같이 나에게 들린 그 음성이 “이리로 올라오너라. 이 뒤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와 같이 생기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와 같이 생기고,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과 같이 생기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와 같이 생겼습니다. 이 네 생물은 각각 날개가 여섯 개씩 달려 있었는데, 날개 둘레와 그 안쪽에는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으며, 지금도 계시며, 또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하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계셔서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께,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리고 있을 때에, 스물네 장로는 그 보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엎드려서, 영원무궁 하도록 살아 계신 분께 경배드리고,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내놓으면서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 주님은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은 주님의 뜻을 따라 생겨났고, 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요한복음서 1:1-5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

 

1. 보시기에 좋았다.

오늘은 창조절 첫째 주일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창조의 섭리와 하나님의 손길을 새롭게 만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세계를 보시고 좋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말은 감상이나 취향의 표현이 아니라, 만물이 창조주의 뜻 안에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오늘 세 본문은 그 좋음의 방향을 보여 줍니다. 창세기는 혼돈 위에 세워진 빛과 생명의 질서를 말해줍니다. 요한계시록은 만물이 창조주께 다시 돌아와 예배하게 될 목적을 말해줍니다. 요한복음서는 어둠을 이기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창조절 첫째 주일은, 자연에 대해 감사만 하는 절기만이 아니라, 온 우주를 내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들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 절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던 창조 세계의 질서가 어떤 것인지를 새롭게 깨닫고, 그 질서를 오늘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가기로 결단하게 될 것입니다.

 

2. 혼돈에서 질서로

성경의 첫 문장인 창세기 1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이 첫 문장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신앙고백입니다. 태초는 시간의 시작을, 천지는 공간으로서 우주의 범위를, 창조는 절대자가 시간과 공간으로 존재를 불러내신 사건을 뜻합니다. 우리는 그 시작을 다 헤아릴 수 없지만, 성경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분명히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창조주의 뜻 안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지닙니다.

 

창조는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불러내는 절대자의 행위이며, 혼돈과 공허에 질서를 부여하는 사건입니다. ‘빛이 생겨라’라고 말씀하시는 순간,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갑니다. 그리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여기에서 좋았다는 것은 감각적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십니다. 창조는 혼돈을 방치하지 않고, 나누고 분별하여 질서를 세우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일 때, 우리 안에 참된 평안과 행복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서 벗어나서 편한 것, 빠른 것, 그리고 많은 것을 ‘좋은 것’의 기준으로 삼을 때, 우리의 삶에는 혼돈과 공허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의 질서가 어둠에서 빛을 세우시는 분별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생물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십니다. 바다의 생물과 날개 달린 새들을 종류대로 지으시고, 땅의 생물도 집짐승과 들짐승과 기어다니는 것들을 종류대로 내게 하십니다. 그리고 성경은 반복하여 말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좋은 것의 기준은 획일화가 아닙니다. 다양성이 제자리를 얻고, 각 존재가 제 자리에서 생명을 누리며 번성하는 조화로움과 평화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사람은 피조물의 세계를 소유하려는 욕망을 품지 않습니다. 창조 세계는 우리의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진 책임과 돌봄의 장소입니다. 하나님이 좋다고 선언하신 세계와 그 질서를 훼손하는 삶은, 결국 조화로움과 평화를 파괴하고, 하나님과 맺은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는 선언은 지금 내 마음에 어떤 울림을 주는가?

 

3. 창조의 목적은 예배

요한계시록은 박해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을 위로하는 책이며, 마지막 때까지 새 하늘 새 땅을 바라보게 하는 희망과 용기의 책입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 가운데 열려 있는 하늘의 문을 봅니다. 그리고 하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너라. 이 뒤에 일어나야 할 일들을 너에게 보여 주겠다” 이 음성은 현실에서 도망치라는 명령이 아니라, 현실을 다른 눈으로 보라는 초대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박해의 현실 속에서도 믿음의 자녀들이 눈을 들어 하늘의 문을 바라보게 하시고, 보좌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십니다.

 

사도 요한이 본 하늘 보좌 주위에는 네 생물이 있고, 스물네 장로가 있습니다. 네 생물은 쉼 없이 외칩니다.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으며, 지금도 계시며, 또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또 스물네 장로는 엎드려 경배드리고,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내놓으며 이렇게 찬양합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하나님, 주님은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주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은 주님의 뜻을 따라 생겨났고, 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창조 신앙은 곧 예배 신앙으로 연결됩니다. 만물이 창조주에게서 나왔으니, 만물은 창조주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자리로 돌아갑니다.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 제국은 황제를 신으로 고백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세속의 신이 우리의 중심에 자리를 잡으려 합니다. 권력과 자본, 인기와 성과, 성공과 자기 과시가 하나님의 자리를 노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의 자녀들은 땅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가되, 삶의 중심은 하늘 보좌에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창조 절기는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멈추는 절기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되돌아가 참되게 예배하는 절기입니다.

 

내 마음의 보좌에 무엇이 앉아 있는가?

 

4. 어둠을 이기는 빛

창세기가 창조의 시작을 말해준다면, 요한복음서는 창조의 근원을 알려 줍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요한복음서가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며, 창조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하나이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단지 한 인물의 등장이 아니라, 창조의 근원이 우리 역사 한복판으로 들어오신 사건이며, 새 창조의 시작입니다.

 

처음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빛과 생명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혼돈과 어둠이 여전히 남아 있는 세상 한가운데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단호히 말합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 말씀은 현실의 어둠을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둠이 있어도 빛은 꺼지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어둠이 짙어 보여도, 빛은 끝내 생명의 길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존재의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며, 생명의 빛을 따라 새 창조의 길을 걷는 일입니다. 새 창조는 먼 미래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서, 어둠의 습관과 절망과 냉소를 끊고, 말씀의 빛을 따라 생명과 사랑을 선택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은 여전히 어둠과 죽음의 언어로 사람들을 붙들려고 하지만,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빛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 오신 빛을 바라보고 따라 걸어갈 마음의 결단입니다.

 

아직 이겨내지 못한 내 마음의 어둠은 무엇인가?

 

5.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

하나님의 창조는 어둠과 혼돈으로부터 빛과 생명을 끌어낸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그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어둠과 죽음의 세력은 최종적 권세를 가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여전히 어둠과 혼돈으로 흔들리지만, 믿음의 자녀들은 하늘 보좌를 바라보며 오직 하나님께만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은 오늘도 믿음의 자녀들을 빛과 생명의 길로 이끄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계를 향해 다시 걷게 하십니다.

 

(성찰 )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과 나의 좋음이 일치하는 것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응답) 하늘 보좌를 바라보며 빛과 생명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창조주 하나님, 혼돈과 어둠 속에서 빛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세계를 세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기준을 편리함과 빠름과 많음에 두지 않게 하시고, 창조주의 뜻 안에서 조화와 질서를 다시 이루게 해주십시오. 우리 마음의 보좌에 올려놓은 욕망과 우상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께만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예배자가 되게 해주십시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씀을 붙잡고, 지금 여기에서 생명과 사랑을 선택하며, 새 창조의 길을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copy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