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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6일 성령 강림 후 아홉째 주일

관리자 2026-07-03 (금) 12:23 2개월전 313  

2026년 7월 26일 / 성령강림 후 아홉째 주일(여덟째 주일)

이사야서 32:1-4, 16-20

“장차 한 왕이 나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통치자들이 공평으로 다스릴 것이다.” 통치자들마다 광풍을 피하는 곳과 같고, 폭우를 막는 곳과 같게 될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서 흐르는 냇물과 같을 것이며, 사막에 있는 큰 바위 그늘과 같을 것입니다. “백성을 돌보는 통치자의 눈이 멀지 않을 것이며, 백성의 요구를 듣는 통치자의 귀가 막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경솔하지 않을 것이며, 사려 깊게 행동할 것이며, 그들이 의도한 것을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그 때에는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이다.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 비록 삼림이 우박에 쓰러지고 성읍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도, 씨를 뿌리는 곳마다 댈 물이 넉넉하고, 어디에서나 안심하고 소와 나귀를 놓아 키울 수 있으니, 너희는 복이 있다.

 

요한계시록 11:15-19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큰 소리가 났습니다.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는 스물네 장로도 엎드려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말하였습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던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그 크신 권능을 잡으셔서 다스리기 시작하셨습니다. 뭇 민족이 이것에 분개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이 주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이제는 죽은 사람들이 심판을 받을 때가 왔습니다. 주님의 종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작은 사람이든 큰 사람이든 주님 이름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실 때가 왔습니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킬 때가 왔습니다.” 그러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그 때에 번개가 치고, 요란한 소리와 천둥소리가 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큰 우박이 쏟아졌습니다.

 

누가복음서 22:24-30

제자들 가운데서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칠 것이냐는 물음을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뭇 민족들의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으로 행세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고,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 누가 더 높으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냐, 시중드는 사람이냐? 밥상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

너희는 내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한 사람들이다. 내 아버지께서 내게 왕권을 주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에게 왕권을 준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나라에 들어와 내 밥상에서 먹고 마시게 하고, 옥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하겠다.”

 

[ 낮아지고 내려가는 섬김의 사랑 ]

 

1.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

오늘은 성령강림 후 아홉째 주일입니다. 성령강림 사건 이후 복음이 확장되는 곳마다 믿음의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그 공동체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지향하는 새로운 삶의 질서를 드러냅니다. 그 질서는 하나님의 통치로 세워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 방식은 세상의 방식과 다릅니다. 사랑으로 낮아지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내려가는 섬김의 방식입니다.

 

오늘 세 본문은 이 새로운 통치 방식의 핵심인 섬김이 무엇이며,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보여 줍니다. 공의로운 통치자의 섬김은 백성에게 평화로운 피난처와 그늘이 되어 줍니다. 겸손과 섬김이 없는 세속 권력은 하나님의 통치에 저항하지만, 결국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가 승리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섬김의 일꾼으로 부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군림과 과시, 경쟁과 지배의 질서를 벗어나서, 낮아지고 내려가고 섬기는 제자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2. 듣고 살피는 섬김의 지도자

이사야서 제1부(1–39장)는 남유다 왕국이 멸망의 위기에 처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삼습니다. 이 시기의 예언은 주로 불순종에 대한 경고와 회개 촉구로 가득하지만, 오늘 본문인 32장은 심판 이후에 다시 세워질 새 통치의 모습을 선포합니다. “장차 한 왕이 나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통치자들이 공평으로 다스릴 것이다.” 새로운 통치자가 나타난다는 말은 단지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통치의 성격 자체가 바뀐다는 약속입니다.

 

그 통치자는 백성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백성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통치자들마다 광풍을 피하는 곳과 같고, 폭우를 막는 곳과 같게 될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서 흐르는 냇물과 같을 것이며, 사막에 있는 큰 바위 그늘과 같을 것입니다.” 공의와 공평의 통치는 이론이나 이상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을 실제로 지키고 보호합니다. 폭풍과 폭염 앞에서 숨을 곳이 되는 지도력, 메마른 땅에 물길을 내는 지도력, 그늘을 만들어 사람을 살리는 지도력이 새 통치의 모습입니다. 새 통치의 권위는 위에서 눌러 세우는 힘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 감싸는 사랑에서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그 통치자의 태도를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백성을 돌보는 통치자의 눈이 멀지 않을 것이며, 백성의 요구를 듣는 통치자의 귀가 막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경솔하지 않을 것이며, 사려 깊게 행동할 것이며, 그들이 의도한 것을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듣는 귀와 보는 눈은 섬김의 태도입니다. 백성의 신호를 듣고, 약자의 필요를 알아보고, 경솔함 대신 책임으로 말하는 사람, 그가 섬김의 지도자입니다. 반대로,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지도력은 백성을 불안 속에 몰아넣고, 공동체를 흔듭니다. 하나님은 그런 시대의 지도자들과 대비되는 새 통치를 약속하십니다.

 

섬김의 통치는 열매로 확인됩니다. “그 때에는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이다.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공평과 정의는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삶을 실제로 바꾸는 힘입니다. 강자의 탐욕이 제어되고, 약자의 권리가 세워질 때, 공동체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 섬기는 통치의 목표는 사람들이 불안에 갇혀 살지 않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흔들리는 환경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며 평온히 쉬게 하는 것이 새 통치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섬김의 태도는 나의 말과 행동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

 

3. 저항하는 권력과 드러나는 사랑의 언약

요한계시록은 박해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 승리를 보여 줍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하늘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세상 나라는 우리 주님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주님께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이것은 단지 미래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 통치의 최종 선언입니다. 그런데 땅에서는 다른 반응이 일어납니다. “뭇 민족이 이것에 분개하였으나 오히려 그들이 주님의 진노를 샀습니다.” 왜 분개할까요? 세속 권력의 방식은 군림과 과시, 지배와 확장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 권력은 타인을 수단화하고, 약한 이를 희생시켜 자신을 유지합니다. 그 안에는 겸손과 섬김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랑으로 낮아지는 통치, 생명을 살리는 통치가 임할 때, 군림의 권력은 설 자리를 잃고 분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섬김의 나라가 서면 착취의 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서 사도 요한은 결정적인 장면을 봅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였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언약, 곧 하나님이 백성과 맺으신 약속과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언약의 핵심은 결국 사랑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 원리는 권력의 기술이 아니라, 사랑의 언약입니다. 성전이 열리고 언약궤가 드러나는 환상은 마지막 날에 세워질 나라가 사랑으로 다스려지는 나라임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사랑과 섬김의 통치가 나의 삶과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질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4. 예수님이 보여 주신 새로운 사랑

누가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체포와 고난과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는 장면을 전합니다. 주님은 이미 다가오는 고난을 아셨고, 배신과 흩어짐의 밤을 앞에 두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자리에서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제자들 가운데서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칠 것이냐는 물음을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세상의 권력 논리가 제자들의 마음에도 그대로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세상의 통치를 정확히 진단하십니다. “뭇 민족들의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으로 행세한다.” 그리고 단호히 선을 그으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 주님은 제자 공동체에 전혀 다른 질서를 세우십니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고,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 주님의 통치는 말로만 선포된 이상이 아니라, 십자가로 향하는 삶 전체로 증명된 통치였습니다.

 

여기서 섬김은 단순한 예절이나 처세가 아닙니다. 섬김은 사랑의 방식입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사랑을 말해 왔고, 동서양의 사상과 전통도 사랑의 가치를 이야기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여 주신 사랑은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자기 내어줌이며, 선택적 호의가 아니라 경계를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신분과 계급, 성별과 민족, 가까운 사람과 낯선 사람을 가르는 담을 넘어, 가장 작은 이들을 품으시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방향은 언제나 아래로 흐릅니다. 섬김의 사랑은 낮은 곳을 향하고, 약한 사람들 곁에 머물며, 생명을 살리기 위해 내려갑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바로 이 섬김의 사랑으로 세상 안으로 들어갔고,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느 시대든 지배하고 군림하는 권력의 방식에 익숙해질 때, 섬김의 원리를 잃고 비판을 받습니다. 교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길은 커짐이나 과시가 아니라, 낮아짐과 섬김입니다.

 

지금 낮아지고 있습니까? 아래로 내려가고 있습니까?

 

5. 낮아지고 내려가는 섬김의 일꾼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듣고 살피며 보호하는 새 통치의 지도자를 약속합니다. 요한계시록은 군림의 권력이 저항해도 결국 사랑의 언약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가 승리함을 보여 줍니다. 누가복음서는 그 통치가 예수님의 섬김으로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통치는 군림이 아니라 섬김이며, 그 섬김의 뿌리는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새 통치의 질서 안에서 우리는 낮아지고 내려가는 섬김의 사랑을 선택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듣는 귀와 보는 눈으로 섬기고, 누군가의 삶을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야 합니다. 경쟁과 과시의 질서가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웃을 살리는 공동체를 세워야 합니다. 낮아지고 내려가는 섬김의 일꾼들은 지금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드러내며, 마침내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기쁨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성찰) 지금 누구 위에 있는가? 누구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가?

(응답) 낮아지고 내려가서 섬기는 삶을 살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 안에 군림하려는 마음과 높아지려는 욕망을 꺾어 주십시오. 낮아지고 내려가서 섬기게 해주십시오. 듣는 귀와 보는 눈을 주셔서, 누군가의 필요를 살피고 책임지며 섬기게 해주십시오. 사랑의 언약으로 다스려지는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경쟁하는 세상의 방식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으로 섬기게 해주십시오. 우리 공동체가 메마른 땅의 냇물과 같은 피난처가 되게 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광풍을 피하며 쉬는 그늘이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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