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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9일 성령 강림 후 여덟째 주일

관리자 2026-07-03 (금) 12:01 2개월전 243  

2026년 7월 19일 / 성령강림 후 여덟째 주일(일곱째 주일)

이사야서 65:17-25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보아라, 내가 예루살렘을 기쁨이 가득 찬 도성으로 창조하고, 그 주민을 행복을 누리는 백성으로 창조하겠다.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 되고, 거기에 사는 백성은 나의 즐거움이 될 것이니, 그 안에서 다시는 울음 소리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몇 날 살지 못하고 죽는 아이가 없을 것이며,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을 것이다. 백 살에 죽는 사람을 젊은이라고 할 것이며, 백 살을 채우지 못하는 사람을 저주받은 자로 여길 것이다.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집에 들어가 살 것이며,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자기가 지은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을 것이며, 자기가 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먹지 않을 것이다. “나의 백성은 나무처럼 오래 살겠고, 그들이 수고하여 번 것을 오래오래 누릴 것이다.” 그들은 헛되이 수고하지 않으며, 그들이 낳은 자식은 재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께 복 받은 자손이며, 그들의 자손도 그들과 같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며, 그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가 들어 주겠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요한계시록 21:1-7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 때에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또 말씀하셨습니다. “기록하여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 또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며 오메가,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받을 것이다.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자녀가 될 것이다.

 

누가복음서 13:22-30

예수께서 여러 성읍과 마을에 들르셔서, 가르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셨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물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이 적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면서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때에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인님은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할 터이나, 주인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모두 내게서 물러가거라’ 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는 하나님 나라 안에 있는데, 너희는 바깥으로 쫓겨난 것을 너희가 보게 될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면서 이를 갈 것이다. 사람들이 동과 서에서, 또 남과 북에서 와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을 것이다. 보아라, 꼴찌가 첫째가 될 사람이 있고, 첫째가 꼴찌가 될 사람이 있다.”

 

[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사람들 ]

 

1. 새 생명의 질서

오늘은 성령강림 후 여덟째 주일입니다. 성령님께서 제자들을 이끌어 주셔서 만민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갑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들이 걸어가야 할 믿음의 여정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 세 본문은 그 여정이 마침내 어디에 이르러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곳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는 것은 지금의 현실을 피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새 생명의 질서로 우리를 이끌어 가실 때, 흔들리지 않고 그 길을 따라 걷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새 생명의 질서가 무엇이며, 그 질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어떤 결단이 필요한지를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2. 하나님이 창조하시는 새 질서

이사야서 제3부(56장~66)는 바빌로니아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예루살렘에는 바빌로니아에서 귀환한 사람들,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 포로 기간에 유대 땅에 들어 온 이방인들이 함께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누가 참된 백성인가, 누가 정당한 몫을 누릴 자인가, 누가 중심에 서야 하는 가를 두고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현실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뜻밖의 선포를 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니, 이전 것들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을 길이길이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이전 것들이 기억되지 않는다는 말은, 억지로 잊어버리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과거의 상처를 부정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이것은 과거의 상처와 분노와 절망이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나님이 친히 질서를 바꾸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곧 새로운 지배 질서입니다. 죄와 폭력과 슬픔이 다스리던 질서가 무너지고, 차별과 불평등의 제도가 사라지고,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삶의 중심 가치로 세워집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제시하면서, 과거의 지배에서 벗어나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 안에서 사라져야 할 아픈 기억은 무엇입니까?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상처, 나를 가두는 두려움, 누군가를 미워하도록 계속 자극하는 기억은 어떤 것입니까? 옛날 습관으로 되돌아가도록 충동하는 욕망은 무엇입니까? 억압하고 지배하고 배제하고 차별하는 제도에 머물러 있도록 힘을 가하는 잘못된 질서와 체제는 무엇입니까?

 

이사야 예언자는 새 창조의 모습을 매우 구체적으로 그립니다. “집을 지은 사람들이 자기가 지은 집에 들어가 살 것이며, 포도나무를 심은 사람들이 자기가 기른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자기가 지은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을 것이며, 자기가 심은 것을 다른 사람이 먹지 않을 것이다. ”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먹으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이로 삼을 것이다. 나의 거룩한 산에서는 서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을 것이다.”

 

새 창조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빼앗기지 않는 삶, 헛되지 않은 수고, 해치지 않는 관계입니다. 억압당하지 않는 삶, 수고가 허무로 돌아가지 않는 삶, 폭력과 두려움이 끊어지는 새로운 관계가 새 하늘과 새 땅의 질서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약속을 예루살렘의 회복이나 남유다 왕국의 재건으로 이해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그 울타리를 넘어서, 메시아가 다스리는 평화의 왕국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평화는 한 민족의 소망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민족과 모든 피조물의 세계로 확장됩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먹는 모습은 동화적 장면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어떤 질서로 세워지는지를 보여 주는 선언입니다. 새 하늘 새 땅은 경쟁과 정복이 사라지고, 사랑과 생명으로 온 세상이 다시 창조되는 곳입니다.

 

사랑과 생명의 세상으로 옮겨가기 위해, 내려놓아야 할 옛 질서는 무엇인가?

 

3. 위로와 생명수

요한계시록은 박해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을 향한 위로와 희망의 말씀이 기록된 책입니다.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세력이 세상을 장악한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요한계시록은 온 세상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밝히면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격려합니다.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 그때 보좌에서 큰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 환상은 이사야 예언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의 중심은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곳이 새 예루살렘이며, 하나님이 눈물을 닦아 주시는 곳이 새 창조의 자리입니다. 눈물을 닦아주시는 하나님의 위로는 감정적 위로가 아니라, 죽음과 고통의 일상이 끝나는 것을 뜻하며, 모든 두려움과 절망의 근거가 무너지는 새 현실의 선포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거저 마시게 하겠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사람은 오늘의 목마름을 해결하려고 죽음의 질서에 매달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생명수를 향해 나아갑니다. 새 창조의 소망은 막연한 내일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오늘의 선택을 새롭게 하는 실제적인 능력이며 힘입니다.

 

나는 무엇으로 목마름을 달래고 있는가?

 

4. 첫째와 꼴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이 적습니까?”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은, 새 하늘 새 땅의 약속과 너무나 멀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도성을 ‘예언자들을 돌로 쳐 죽이는 도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십니다.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아시면서도 그 길로 가셨습니다. 새 하늘 새 땅은 저절로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지만, 그 새로움은 우리를 회개와 순종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좁은 문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넓은 문은 대체로 쉽습니다. 내 자리를 지키고, 내 이익을 확보하고, 내 편을 강화하는 길과 연결됩니다. 그러나 좁은 문은 나의 욕망과 자랑과 배타성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생명의 질서를 따르는 길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경고하십니다. “들어가려고 해도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들은 주인님 앞에서 먹고 마셨던 사람이며, 길거리에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경청하고 공동체의 성만찬에 참가하는 사람으로 해석됩니다. 이 말씀은 신앙의 외형을 가진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가장 두려운 경고입니다.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이 안에 있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배우고 성만찬에 참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좁은 문을 통과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좁은 문은 말씀을 삶으로 옮기며, 불의를 끊고 생명의 길로 돌이키며, 깨어 기다리는 사람에게 열리는 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꼴찌가 첫째가 될 사람이 있고, 첫째가 꼴찌가 될 사람이 있다.” 하나님 나라 잔치 참여는 우리가 생각하는 서열과 자격 심사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첫째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자기 확신에 갇혀서 문 바깥에 설 수 있고, 꼴찌라고 여겨졌던 사람들이 은혜로 잔치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첫째와 꼴찌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보여 줍니다.

 

오늘 우리에게 첫째는 무엇이고, 꼴찌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붙잡고 있는 신앙적 자부심, 공동체 안에서의 지위, 익숙함과 경력,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는 확신이 오히려 좁은 문을 통과하지 못하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참여할 수 있으려면, 우리에게 어떤 결단과 실천이 필요할까요?

 

5.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는 길

이사야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생명 질서를 보여 줍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임재와 위로, 그리고 생명수를 약속하며 새 시작의 희망을 보여 줍니다. 누가복음서는 그 소망이 오늘의 삶에서 좁은 문을 향한 결단과 실천으로 드러나야 함을 선포합니다. 새 창조를 향한 소망은 우리를 현실에서 떠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한복판에서 옛 질서를 끊고, 새 생명의 길을 선택하게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사람은 좁은 문 앞에서 한 걸음씩 순종으로 걸어서,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성찰) 내가 지나가야 할 좁은 문은 어디에 있는가?

(응답) 하나님 나라의 생명 질서를 선택하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이 오늘 우리의 삶을 움직이게 해주십시오. 두려움과 습관에 묶이지 않게 하시고, 생명의 길로 돌이키게 해주십시오. 좁은 문 앞에서 순종할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기쁨에 참여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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