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5일 / 성령강림 후 여섯째 주일 / 맥추 감사 주일
출애굽기 23:14-19
너희는 한 해에 세 차례 나의 절기를 지켜야 한다.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해진 때에, 이레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어야 한다. 너희가 그 때에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너희는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너희는 너희가 애써서 밭에 씨를 뿌려서 거둔 곡식의 첫 열매로 맥추절을 지켜야 한다. 또한 너희는 밭에서 애써 가꾼 것을 거두어들이는 한 해의 끝무렵에 수장절을 지켜야 한다. 너희 가운데 남자들은 모두 한 해에 세 번 주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 너희는 나에게 바치는 희생제물의 피를 누룩 넣은 빵과 함께 바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절기 때에 나에게 바친 기름을 다음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도 안 된다. 너희는 너희 땅에서 난 첫 열매 가운데서 제일 좋은 것을 주 너희 하나님의 집으로 가져 와야 한다. ---
고린도후서 8:1-7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여러분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내가 증언합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구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우리에게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기대한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먼저 자신들을 주님께 바치고, 우리에게 바쳤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디도에게 청하기를, 그가 이미 시작한 대로 이 은혜로운 일을 여러분 가운데서 완수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일에 있어서 뛰어납니다. 곧 믿음에서, 말솜씨에서, 지식에서, 열성에서, 우리와 여러분 사이의 사랑에서 그러합니다. 여러분은 이 은혜로운 활동에서도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
마가복음서 4:26-29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낟알을 낸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댄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이다.”
[ 첫 열매를 드리는 맥추 감사절 ]
1. 다시 시작하는 감사
오늘은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하반기의 첫 주일을 감사 주일로 지키는 까닭은, 한 해의 절반을 지나온 자리에서 삶의 중심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리기 위함입니다. 맥추 감사는 무엇을 얼마나 얻었는가를 따져보는 날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누리는 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고, 그 은혜에 응답하기 위해 새롭게 결단하는 날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새출발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해마다 세 차례 절기를 지키라고 명하십니다.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지 절기의 시기와 횟수가 아니라, 그 절기를 지키는 정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통해 백성들의 삶을 하나님 중심으로 다시 묶어 주십니다.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자기 힘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이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빈 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그런데 빈손은 단지 드릴 것이 없다는 뜻만이 아닙니다. 감사 없는 마음, 기억 없는 신앙, 계산과 습관만 남아 있는 예배의 빈손을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의무를 통해 우리의 결실물을 빼앗아 가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절기를 통해 다시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믿음을 회복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감사 절기의 뿌리는 구원의 기억입니다. 구원의 기억이 살아 있을 때, 우리의 감사도 살아납니다.
출애굽기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애써서 밭에 씨를 뿌려서 거둔 곡식의 첫 열매로 맥추절을 지켜야 한다.” 맥추절은 단순히 수확을 계산하거나 자랑하는 날이 아닙니다. 첫 열매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아직 뒤에 얼마나 더 거둘지 알지 못하지만,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 열매는 내 것만이 아닙니다. 이 길은 내 힘만으로 된 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특히 해마다 맥추 감사 주일은 하반기의 시작입니다. 상반기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감사의 제목도 있고, 어려움과 아픔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맥추절은 과거를 단지 되풀이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구원의 기억 속에서, 감사의 절기로 새롭게 출발하는 절기입니다. 한 해의 끝 무렵 수장절(추수 감사 주일)을 향해 나가는 길에서, 맥추절은 우리에게 다시 방향을 잡게 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맥추 감사는 지금까지 잘 버텼다는 자부심이 아니라, 이제부터 하나님을 더 신뢰하겠다는 결단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려는 첫 열매는 무엇인가?
3. 시련 속에서 이루어지는 은혜로운 활동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마케도니아 교회 교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들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이 말은 세상의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환난의 시련 속에서 기쁨이 넘친다는 것,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베푼다는 것. 이것은 은혜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고, 은혜 안에서 누리는 넉넉함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구제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하였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우리에게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구제하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까요? 심지어 구제하는 일에 동참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맥추 감사의 방향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나눔은 부담이 아니라 특권이었습니다. 자기 형편을 기준으로 삼는 사람에게는 감사와 구제의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 가진 것이 더 많아져야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감사를 뒤로 미룹니다. 그러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감사할 길을 찾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지금 자기 손에 주어진 것을 헤아리기보다, 이미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마케도니아 교회를 칭찬한 바울 사도는, 이제 고린도 교회를 칭찬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일에 있어서 뛰어납니다. 곧 믿음에서, 말솜씨에서, 지식에서, 열성에서, 우리와 여러분 사이의 사랑에서 그러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믿음도, 말도, 지식도, 열정도, 사랑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이 은혜로운 활동에서도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
은혜로운 활동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앞서 마케도니아 교회가 보여 준 그 일들입니다. 이 은혜로운 활동은 단지 헌금의 액수를 늘리는 일이 아닙니다. 마케도니아 교회가 보여 준 것처럼, 계산이 아니라 은혜가 삶을 움직이게 하는 활동을 말합니다. 나눔을 의무로 여기지 않고 특권으로 여기는 마음, 형편을 넘어 자원하여 참여하는 마음,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주님께 바치는 삶의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가 맥추 감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열매는 내가 가진 것의 일부만이 아닙니다. 첫 열매는 내가 누구인가의 고백이며, 내 삶이 누구에게 속했는가의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첫 열매는 결국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시간, 관계, 선택, 노동, 재능 등 우리의 삶 전체입니다. 주님께 먼저 드리는 삶이 있을 때, 감사는 말이 아니라 은혜로운 활동이 됩니다.
성령님께서 나에게 요청하시는 은혜로운 활동은 무엇인가?
4. 저절로 맺는 열매의 감사
복음서 본문은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스스로 자라는 씨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립니다.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랍니다. 하지만 씨를 뿌린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중요한 일들 역시 대부분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지금의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펼쳐질지도 다 알 수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불안에 사로잡혀서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체념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더 높은 차원에서 해결책을 보여 줍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맥추 감사는 바로 이 믿음을 확인하는 절기입니다. 우리의 손은 씨를 뿌릴 뿐입니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내가 이루어 낸 성과에 대한 칭찬이나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을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 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낟알을 낸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댄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이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는다는 말은 일을 하지 않거나 게을러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계산과 조급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자기 지식과 힘으로 하나님 나라를 앞당기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혁명적인 운동으로, 어떤 사람은 연구와 계산으로, 어떤 사람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방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앞당기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자라며, 우리는 그 과정에 믿음으로 참여할 뿐입니다.
그 참여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씨를 뿌리는 행동입니다. 다음은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그리고 때가 오면 낫을 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맥추절에 첫 열매를 드리는 것은, 아직 모든 결실을 다 보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자라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감사로 응답하는 행위입니다. 바로 그 믿음이 우리를 조급함에서 자유롭게 하고, 불안에서 평안으로 옮겨 줍니다.
주님께 맡겨야 할 내 안에 있는 조급함은 무엇인가?
5. 새출발
맥추 감사의 길은 하나님 앞에 빈손이 아니라, 첫 열매로 서는 것입니다. 형편이 아니라, 은혜로 넉넉함을 누립니다.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때를 기다리며 참여하는 것입니다. 맥추 감사는 과거의 기억에 머무는 절기가 아닙니다. 하반기의 시작에서,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다시 새롭게 출발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맥추 감사 주일은 남은 것을 드리는 날이 아니라, 첫 열매로 하나님께 삶을 맡기는 날입니다. 그 길에서 아픈 기억도 감사의 제목으로 바뀔 것입니다. 환난과 가난 속에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베푸는 삶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믿음으로 씨를 뿌리는 사람은 신뢰와 인내와 순종의 길 위에서 복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성찰) 내가 드릴 첫 열매는 무엇인가?
(응답) 감사와 기쁨으로 새출발하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첫 열매를 받으시는 하나님, 우리가 빈손이 아니라 감사로 주님 앞에 설 수 있기를 원합니다. 형편이 아니라 은혜로 넉넉히 나누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는 주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끝까지 기다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해의 남은 시간, 삶의 남은 시간을 하나님께 맡기며 기쁨으로 새출발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