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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8일 성령 강림 후 다섯째 주일

관리자 2026-06-24 (수) 12:27 3개월전 278  

2026년 6월 28일 성령강림 후 다섯째 주일

욥기 28:20-28

그렇다면 지혜는 어디에서 오며, 슬기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져 있고, 공중의 새에게도 감추어져 있다. 멸망의 구덩이와 죽음은 지혜를 두고 이르기를 “지혜라는 것이 있다는 말은 다만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혜가 있는 곳에 이르는 길을 아신다. 그분만이 지혜가 있는 곳을 아신다. 오직 그분만이 땅 끝까지 살피실 수 있으며, 하늘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을 보실 수 있다. 그분께서 저울로 바람의 강약을 달아보시던 그 때에, 물의 분량을 달아 보시던 그 때에, 비가 내리는 규칙을 세우시던 그 때에, 천둥 번개가 치는 길을 정하시던 그 때에, 바로 그 때에 그분께서, 지혜를 보시고, 지혜를 칭찬하시고, 지혜를 튼튼하게 세우시고, 지혜를 시험해 보셨다. 그런 다음에,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

 

사도행전 17:22-27

바울이 아레오바고 법정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종교심이 많습니다. 내가 다니면서, 여러분이 예배하는 대상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제단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무슨 부족한 것이라도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셔서, 온 땅 위에 살게 하셨으며, 그들이 살 시기와 거주할 지역의 경계를 정해 놓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서 8:31-38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의 말에 머물러 있으면, 너희는 참으로 나의 제자들이다. 그리고 너희는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일이 없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사람은 다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물러 있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의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한다.”

 

[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지혜 ]

 

1. 무엇이 참된 삶인가?

오늘은 성령강림 후 다섯째 주일이며, 2026년 상반기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의 절반을 지나오면서, 삶의 속도와 방향을 점검하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은 맥추 감사 주일입니다. 첫 열매를 드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얻었는가를 계산하는 것보다, 무엇이 참된 삶이며, 그런 삶을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왔는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지혜입니다. 진리 안에서 누리는 자유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 선물은 저절로 우리 손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진리를 향해 눈을 돌리고, 거짓된 확신을 내려놓고, 진리의 길 위에 자신을 세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제 세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지혜의 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2.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욥기는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라는 삶의 문제를 다루는 지혜서입니다. 욥은 고난 속에서 그 의미를 깨닫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오늘 본문 욥기 28장의 지혜 찬가는 이렇게 묻습니다. “지혜는 어디에서 오며, 슬기가 있는 곳은 어디인가?” 본문은 대답합니다. 지혜는 모든 생물의 눈에 숨겨져 있고, 공중이 새에게도 감추어져 있습니다. 심지어 멸망과 죽음조차, 지혜가 있다는 말은 소문으로만 들었다고 합니다. 인간이 닿는 곳, 인간이 장악하는 영역, 인간이 파악했다고 여기는 자리 어디에서도 참 지혜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는 지식과 정보가 넘칩니다. 그러나 지혜는 오히려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말은 많지만, 진실은 흐려지고, 판단은 가벼워지고, 한 조각의 정보가 전체를 대신해 버립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단정하는 태도는, 결국 자기 확신만 키우고 공동체를 분열시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부분에 대한 확신에 강한 의문을 제기합니다. 참 지혜는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먼저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역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지혜를 불가능한 신비로만 남겨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혜에 이르는 길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땅끝까지 살피시고 하늘 아래의 모든 것을 보십니다. 바람과 물과 비와 천둥의 질서를 정하실 때, 하나님은 지혜를 보시고 세우시고 시험하셨습니다. 지혜의 근원은 창조주 하나님께 있으며, 지혜의 길은 하나님께 열려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혜의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요, 악을 멀리하는 것이 슬기다.” 여기에서 경외는 공포가 아니라, 내가 전체를 볼 수 없다는 겸손한 인정에서 나오는 태도입니다. 전체를 보시는 하나님께 판단과 길을 맡기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경외는 언제나 구체적인 삶의 태도와 실천으로 나타납니다.

 

경외에서 나오는 지혜는 단지 악을 멀리하는 윤리적 결심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도 된다는 교만, 자기 기준을 절대화하는 완고함, 거짓된 확신과 왜곡된 욕망을 끊어내는 삶의 전환입니다. 이 지혜는 멈춰 있는 지식이 아닙니다. 지혜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길을 따라 순종하며 걸어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우리를 불안과 염려의 속박에서 풀어내고, 하나님의 평화로운 질서 안으로 이끌어 갑니다. 지혜는 내가 안다는 확신을 내려놓게 하고, 하나님이 아신다는 믿음 안에 거하게 합니다.

 

전체를 보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할 내 삶의 영역은 어디인가?

3.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지혜

바울 사도는 2차 선교 여행의 여정에서, 드디어 고대 유럽 사회의 문화적 중심지인 아테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아테네 아레오바고에서 사람들의 종교심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곳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제단을 발견합니다.

 

당시 아테네 시민을 비롯한 그리스인들은 다신론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연과 인간 삶의 다양한 영역을 각 신들이 관장한다고 믿고 있었고, 그들의 번영과 안정을 위해 수많은 신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썼습니다. 무엇보다 신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혹시 빠뜨린 신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 보이지 않는 힘을 달래지 않으면 재앙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삶을 통제할 수 없다는 공포가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래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는 제단까지 세웠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 불안을 접촉점 삼아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알지 못하고 예배하는 그 대상을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참 지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막연한 두려움을 신앙으로 착각하지 않고, 알지 못하는 대상을 향한 불안을 경건으로 포장하지 않고, 참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종교심이 많아도 진리를 모르면 자유가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제단, 더 많은 계산, 더 많은 금기에 사로잡힐 뿐입니다. 바울 사도가 전한 하나님은 불안을 먹고 사는 신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바울 사도는 참 신이시며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며,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신 분입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땅 위에 살게 하셨으며, 시간과 공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림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다고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결론을 덧붙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막연하게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신의 진노를 두려워하면서 비위를 맞추려는 종교의 틀에 갇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의 형상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 어떤 미신도, 철학이나 이념도, 삶의 욕망이나 상처도, 이 거룩한 형상을 향한 간절한 열망을 잠재우거나 지워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앞날을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호흡과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을 내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의무가 아니라, 자유로운 고백입니다. 맥추 감사 주일을 앞두고, 우리는 두려워서 바치는 제물이 아니라,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감사로 나아갑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를 어떤 말과 행동과 삶으로 표현하고 싶습니까?

 

4. 진리를 아는 지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여기에서 진리는 단지 정보를 뜻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드러나는 현실이며, 삶을 규정하는 기준입니다. 그리고 그 진리는 잠깐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머물러 있을 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머문다는 것은 관계를 말합니다. 배우고 순종하고 지키며, 다시 그 말씀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자유는 감정적 해방이 아니라, 진리 안에 머무는 제자가 누리는 선물입니다.

 

한편, 1세기 아테네 시민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신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정은 결국 두려움이 만든 제단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요한복음서에 등장하는 1세기 유대인들은 다른 방식의 확신, 다른 방식의 교만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일이 없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혈통과 전통, 신앙적 자부심을 자유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는 영적 교만입니다. 나는 이미 괜찮다는 생각으로 진리 앞에 서기를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다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물러 있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롭게 될 것이다.” 죄의 종살이란 무엇일까요? 단지 도덕적 실수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완고함, 거짓에 기대어 자신을 지키려는 집착, 자기 의와 자기 정당화에 묶여 있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그 종살이를 끊고, 하나님의 집에 머무는 자유인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자유는 자기 스스로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자유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진리를 아는 지혜란, 이 말씀이 내 삶에 실현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결단입니다.

 

나는 무엇에 묶여 있는가?

참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 어디로 나가야 하는가?

 

5. 진리, 지혜, 자유

맥추감사 주일은 단지 상반기를 정리하는 행사가 아닙니다. 한 해의 상반기 마지막 주일에 우리는, 성과를 계산하기보다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았는지 돌아봅니다. 참 감사는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된 사람이 드리는 진정한 고백입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로, 불안이 아니라 맡김으로, 자기주장과 교만이 아니라 말씀에 머무르는 제자의 도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그 자유는 삶을 가볍게 만들지 않고, 진리 안에서 바로 서도록 하는 자유입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감사의 고백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찰) 진리 안에서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면, 나를 묶고 있는 가장 큰 사슬은 무엇인가?


(응답) 믿고 따라가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지혜의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작은 부분에 갇혀서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전체를 내다보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참된 지혜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가까이 계신 주님을 찾게 하시고, 말씀 안에 머무르며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주시는 참 자유 안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로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이 은혜를 기억하며 맥추 감사 주일을 준비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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