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21일 / 성령강림 후 넷째 주일
요나서 1:1-4, 7-10
주님께서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에 대고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요나는 주님의 낯을 피하여 스페인으로 도망가려고, 길을 떠나 욥바로 내려갔다. 마침 스페인으로 떠나는 배를 만나 뱃삯을 내고, 사람들과 함께 그 배를 탔다. --- 주님께서 바다 위로 큰 바람을 보내시니, 바다에 태풍이 일어나서,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되었다. / 뱃사람들이 서로 말하였다. “우리가 어서 제비를 뽑아서,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우리에게 내리는지 알아봅시다.” 그들이 제비를 뽑으니, 그 제비가 요나에게 떨어졌다. 그들이 요나에게 물었다. “우리에게 말하시오.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우리에게 내렸소? --- ”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그분을 섬기는 사람이오.” 요나가 그들에게, 자기가 주님의 낯을 피하여 달아나고 있다고 말하니,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고, 겁에 질려서 그에게 소리쳤다. “어쩌자고 당신은 이런 일을 하였소?”
사도행전 16:6-15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성령이 막으시므로,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가서, 무시아 가까이 이르러서, 비두니아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예수의 영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서 드로아에 이르렀다. 여기서 밤에 바울에게 환상이 나타났는데,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울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 환상을 바울이 본 뒤에,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건너가려고 하였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 우리는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고, 거기에서 빌립보에 이르렀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요, 로마 식민지였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며칠 동안 묵었는데,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가서, 유대 사람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그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감 장수로서, 두아디라 출신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 여자가 집안 식구와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마태복음서 28:16-20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
1. 보냄과 동행
오늘은 성령 강림 후 넷째 주일입니다. 성령 강림 후 교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활동합니다. 성령님은 복음이 필요한 자리로 일꾼들을 보내십니다. 그러나 이 보내심은 그냥 떠나보내는 명령이 아닙니다. 보내시면서, 동시에 항상 함께하십니다. 보내시는 길 위에, 막히는 자리에, 낯선 땅에, 흔들리는 마음 한복판에 언제나 함께하십니다.
오늘 세 본문은 보내시면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언제나 동행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선교의 여정에 나서게 될 것입니다.
2. 도망자와 동행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에 대고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 부르심도 분명하고, 방향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요나는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지 니느웨로 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나가 부르심 앞에서 곧바로 순종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아는 대로, 니느웨는 당시 악의 대명사인 신생 강대국 앗시리아의 수도였습니다. 그렇다고 요나가 악한 니느웨 사람을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나서 전체 흐름(특히 4장)을 보면, 요나는 원수 같은 니느웨 성에 하나님의 자비가 임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니느웨(북쪽)와 다른 방향인 다시스(서쪽/스페인으로 알려진 지역)로 도망가려고 욥바(남쪽)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요나의 마음 깊은 곳에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요나는 주님의 낯을 피하려 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과연 요나는 주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갈 수 있었을까요?
요나가 도망가는 그 길에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주님께서 바다 위로 큰 바람을 보내시니, 바다에 태풍이 일어나서,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되었다.” 배 안의 사람들은 제비를 뽑아 원인을 찾았고, 그 제비가 요나에게 떨어집니다. 그리고 배 안에 있는 사람들이 요나의 사연을 알게 됩니다. 요나는 고백합니다.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그분을 섬기는 사람이오.”
그러나 요나의 고백과 그의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그 불일치의 영향은 배 전체에 미쳤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은 여기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폭풍은 단지 벌이 아니라, 숨겨진 요나의 불순종을 드러내고, 삶의 방향을 다시 묻게 하는 하나님의 붙드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보내심을 거부한 사람에게도 끝까지 다가오셔서, 그의 도망을 멈추게 하십니다. 요나에게 하나님의 동행은 도망을 멈추게 하는 거룩한 추궁이며, 그 추궁은 회복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로 도망가고 있는가? 도망가는 길에도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는가?)
3. 길과 마음을 여시는 성령님
1차 선교 여행에서 본격적인 이방 선교를 시작한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 회의를 거친 후 2차 선교 여행을 떠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 사도의 선교 여정이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바울 사도 일행은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북쪽 소아시아 지역으로 가려 했으나, 두 번이나 길이 막혀 나가지 못합니다. 선교 의지가 약해서 나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막으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성령님이 막으셔서 바울 사도 일행이 나가지 못한 것은 선교의 실패가 아닙니다. 함께하시는 성령님께서 방향을 조정하신 것입니다. 선교는 우리가 선택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열어 주시는 길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막히는 자리를 공동체 분별의 자리로 삼아야 합니다.
드로아에서 바울 사도는 마케도니아 사람이 와서 도와달라고 하는 환상을 봅니다. 바울 사도 일행은 아시아를 떠나, 유럽을 향해 나가기로 합니다. 그 결정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개인의 생각이나 느낌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분별하여 확신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습니다. 선교의 길이 막혔지만 실망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손길은 그들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믿음의 여정은 때로 막히고 때로 허락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크고 넓은 은혜의 지평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바울 사도 일행은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빌립보에 이릅니다. 그리고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아가,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루디아가 등장합니다. “주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빌립보에서 복음의 확장은 먼저 마음을 여시는 주님의 역사로부터 시작됩니다. 바울의 언변이 아니라, 주님의 손길이 한 사람의 마음을 여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의 열림은 믿음의 결단으로 이어집니다.
세례를 받은 루디아는 말합니다.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한 사람의 마음이 열리고, 한 집의 문이 열립니다. 복음을 위한 부르심은 이렇게 구체적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더 나아가, 이 빌립보의 첫 열매는 이후 바울 사도의 선교 여정에 큰 도움과 영향을 끼칩니다. 빌립보 공동체는 바울 사도에게 중요한 선교 후원 공동체가 됩니다. 선교의 역사는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보내시는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열고, 한 집의 문을 열어 주시며 선교의 여정에 함께하십니다.
(지금 어디에서 막혔는가? 성령님께서 어디로 이끄시기를 기대하는가?)
4. 끝 날까지 함께하시는 주님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산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경배합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배의 자리에는 의심도 함께 있습니다. 흔들림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다가오십니다.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승천하셨지만, 주님은 확신이 완성된 사람들에게만 사명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흔들리는 제자들, 의심이 남아 있는 공동체에 다가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보내심은 인간의 완성도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가까이 오시는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공동체가 나가야 할 길이 다시 열립니다.
예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사명의 근거는 제자들의 역량이 아니라, 예수님의 권세입니다. 그 권세 위에서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복음을 위한 부르심은 단지 전하라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세우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주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지키게 하는 공동체적 제자의 길에 도달해야 합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관이 아니라, 복음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약속하십니다.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주님은 보내시지만, 떠나지 않으십니다. 부름을 받은 사람은 가야 합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닙니다. 복음을 위한 사명은 고독한 임무가 아니라, 동행의 약속 안에서 감당하는 순종입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제자가 되는 그날까지 주님께서 항상 함께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동행을 얼마나,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5. 보내시고 함께 하시는 주님
요나는 부르심을 피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바울 사도 일행은 막히는 길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유럽 선교의 첫 열매를 보았습니다.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가라고 명령하시며, 세상 마지막 날까지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음 선교를 위해 보내시며, 홀로 두지 않으십니다. 보내시면서, 함께하십니다. 이 약속을 믿고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 걸음을 통해 믿음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실 것입니다.
(성찰) 부르심 앞에 어떤 두려움과 떨림이 있는가?
(응답) 함께하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복음을 위해 우리를 부르실 때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막히는 길 앞에서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성령께서 여시는 방향을 따라 담대히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붙잡고, 주님께서 보내시는 자리로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