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31일 / 성령 강림 후 첫째 주일
민수기 11:24-29
모세가 나가서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백성에게 전달하였다. 그는 백성의 장로들 가운데서 일흔 명을 불러모아, 그들을 장막에 둘러세웠다. 그 때에 주님께서 구름에 휩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더불어 말씀하시고, 모세에게 내린 영을 장로들 일흔 명에게 내리셨다. 그 영이 그들 위에 내려와 머물자, 그들이 예언하였다. 이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들은 다시는 예언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남자가 진 안에 남아 있었다. 하나의 이름은 엘닷이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메닷이었다. 그들은 명단에 올라 있던 이들이지만, 장막으로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영이 그들 위로 내려와 머물자. 그들도 진에서 예언하였다. 한 소년이 모세에게 달려와서, 엘닷과 메닷이 진에서 예언하였다고 알렸다. 그러자 젊었을 때부터 모세를 곁에서 모셔온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나서서, 모세에게 말하였다. “어른께서는 이 일을 말리셔야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를 두고 질투하느냐? 나는 오히려 주님의 백성 모두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그들 모두가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도행전 2:43-47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표징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누가복음서 12:8-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부인당할 것이다.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것이지만, 성령을 거슬러서 모독하는 말을 한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너희가 회당과 통치자와 권력자 앞에 끌려갈 때에, ‘어떻게 대답하고, 무엇을 대답할까’, 또 ‘무슨 말을 할까?’하고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가 말해야 할 것을 바로 그 시각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
1. 성령 안에서 새롭게 세워지는 공동체
오늘은 성령 강림 후 첫째 주일입니다. 성령강림 사건은 한 번의 역사적 현상이 아닙니다. 성령강림 사건은 교회의 시작일 뿐 아니라, 교회가 지녀야 할 정체성의 본질을 알려 주는 사건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프로그램이 아니며, 조직이나 제도 이상의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으로 시작되었고, 성령으로 유지되며, 성령으로 확장되어 갑니다.
오늘 세 본문은 성령 안에서 새롭게 세워지는 공동체가 지녀야 할 세 가지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열린 공동체, 나눔의 공동체, 증언의 공동체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교회 공동체가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2. 열린 공동체
민수기는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방황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입니다. 민수기 11장은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배고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에 만족하지 않고, 고기를 달라고 불평하였습니다. 육의 욕구는 전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육의 욕망은 늘 새로운 불만을 낳지만, 성령의 은혜는 공동체를 새롭게 세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육체적 욕구의 문제로 들끓는 곳, 혼란의 중심에 성령의 사건을 끼워 넣으셔서, 공동체의 시선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백성의 대표로 일흔 명의 장로를 불러 모았습니다. “모세에게 내린 영을 장로들 일흔 명에게 내리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내려주셨습니다. 이 사건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육의 양식에 대한 욕구는 육의 양식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해결책은 영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집중되었던 하나님의 영이 일흔 명의 장로들에게 나누어지고, 이들을 통해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육의 양식은 나눌수록 줄어들지만, 하나님의 영은 나눌수록 더 커집니다. 육의 양식은 불평과 새로운 갈망을 낳았지만,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영의 양식은 공동체를 새롭게 세웁니다.
일흔 명의 장로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영은, 장막 밖에 있던 두 사람에게도 임했습니다. “하나의 이름은 엘닷이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메닷이었다. 그들은 명단에 올라 있던 이들이지만, 장막으로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영이 그들 위로 내려와 머물자. 그들도 진에서 예언하였다.” 장막 바깥, 진 중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자, 여호수아는 모세에게 그들을 말리라고 했지만, 모세는 여호수아의 행동을 질투에서 나온 것으로 여깁니다. 모세는 말합니다. “나는 오히려 주님의 백성 모두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그들 모두가 예언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성령 안에 있는 공동체는 하나님의 은혜를 독점하지 않습니다. 나눌수록 커지는 성령의 역사는 닫힌 경계를 넘어서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는 열린 공동체를 세웁니다.
(우리 공동체가 닫힌 문을 열어야 할 영역은 어디인가?)
3. 나눔의 공동체
사도행전 본문은 성령의 임재가 가져온 공동체적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는 풍족한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가난했고, 정치적 억압 아래 있었으며, 생존 자체가 불안정한 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임하자, 그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소유욕을 버리고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나눔이 기쁨이 되었습니다.
성령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성령은 사람을 물질의 두려움에서 해방합니다. 성령은 물질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섬김과 사랑의 통로가 되도록 다시 질서를 잡아 주십니다. 육의 양식을 쥐고 있던 손이 영의 양식으로 채워질 때, 손을 펴서 나누게 되고, 공동 소유라는 기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나눔은 도덕적 선행이 아니었습니다. 공동 소유는 단순한 경제 행태의 변화가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나눔과 공동 소유는 성령의 능력으로 드러난 선교적 사건이었습니다.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으면서 만족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샀습니다. 호감을 산다는 것은 세상의 인기에 영합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경을 받으며 스스로 따라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가 공공성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믿는 사람을 더해 주셨습니다. 성장하고 확장하는 선교적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눔과 공동 소유가 하나의 선교 전략으로 행해진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이 이끄시는 대로 따랐을 뿐이었습니다. 세상은 능력을 지닌 공동체가 아니라, 사랑을 가진 공동체에 마음을 엽니다.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는 성령의 충만함을 나눔과 공동 소유로 표현했고, 그 나눔은 사랑의 선물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었습니다. 오늘 우리 공동체도 성령의 충만함 안에서 사랑과 나눔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언제나 교회를 다시 본질로 돌아가도록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따라오도록 하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담대하게 증언하는 공동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 사람을 시인할 것이다.”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은 거창한 선포가 아니라, 일상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있고, 안전을 확보하려는 본능이 있으며, 박해를 피하고자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신앙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불의한 결정 앞에서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가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입술과 행동을 통해서 담대하게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자유는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시선 아래 서게 하는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육적 욕망은 우리에게 다수의 무리에 숨어서 평안과 안락을 취하라고 속삭이지만, 성령님의 음성은 우리가 담대하게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지상에서 특별히 각오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며,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삶을 살아갈 때, 세상의 반대와 심문과 박해에 직면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으셨던 것처럼,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대답하고, 무엇을 대답할까’, 또 ‘무슨 말을 할까?’하고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가 말해야 할 것을 바로 그 시각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실 것이다.” 바로 그 시각에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이 말씀은 단지 박해의 순간만이 아니라, 우리가 말해야 할 책임을 느끼는 모든 순간에 적용됩니다. 인간 이성의 말을 하지 않고, 자기 감정의 말을 하지 않고, 자기 욕망의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시시각각 성령님께 묻고, 성령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사람은 어떤 위험이나 두려움 앞에서도 염려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위로의 말이 필요할 때, 믿음을 설명해야 할 때, 부당한 상황이나 갈등에 직면했을 때, 그 모든 순간에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입을 열어 진실하고 사랑스러운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말할 수 없는 자리는 어디인가?)
5.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성령의 능력 안에서 교회는 열리고, 나누고, 증언하는 공동체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우리가 성령님께 순종하여 열리고, 나누고, 증언할 때, 우리 공동체는 하나님 나라의 기쁨과 영광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성찰)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할 때 나의 삶과 공동체는 어떤 모습을 지닐까?
(응답) 열고, 나누고, 담대히 증언하며 살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소유의 벽을 허물어 주시며, 사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진리를 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가 초대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게 하시고, 성령의 은혜로 열리고, 나누고, 증언하는 공동체로 서게 해주십시오. 이 땅의 모든 교회 위에 성령의 바람을 불어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빛과 사랑과 정의가 온 세상에 넘쳐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