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7일 / 부활절 일곱째 주일
이사야서 32:9-18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아, 일어나서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딸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여인들아, 몸서리 쳐라. 맨몸이 되도록 옷을 다 벗어버리고 베로 허리를 둘러라. 밭농사와 포도농사를 망쳤으니, 가슴을 쳐라. 나의 백성이 사는 땅에 가시덤불과 찔레 나무가 자랄 것이니, 가슴을 쳐라. 기쁨이 넘치던 모든 집과 흥겨운 소리 그치지 않던 성읍을 기억하고, 가슴을 쳐라. 요새는 파괴되고, 붐비던 도성은 텅 비고, 망대와 탑이 영원히 돌무더기가 되어서, 들나귀들이 즐거이 뛰노는 곳, 양 떼가 풀을 뜯는 곳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 높은 곳에서부터 다시 우리에게 영을 보내 주시면, 황무지는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온갖 곡식을 풍성하게 내는 곡창지대가 될 것이다. 그 때에는,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이다.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
사도행전 1:15-16, 21-26
그 무렵에 신도들이 모였는데, 그 수가 백이십 명쯤이었다. 베드로가 그 신도들 가운데 일어서서 말하였다.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를 잡아간 사람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하여, 성령이 다윗의 입을 빌어 미리 말씀하신 그 성경 말씀이 마땅히 이루어져야만 하였습니다. ---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에,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로부터 예수께서 우리를 떠나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늘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을 뽑아서, 우리와 더불어 부활의 증인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바사바라고도 하고 유스도라고도 하는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서, 기도하여 아뢰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시는 주님, 주님께서 이 두 사람 가운데서 누구를 뽑아서, 이 섬기는 일과 사도직의 직분을 맡게 하실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 유다는 이 직분을 버리고 제 갈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비를 뽑게 하니, 맛디아가 뽑혀서,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의 수에 들게 되었다.
요한복음서 16:16-24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에게 물어 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게 되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한 말을 가지고 서로 논의하고 있느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근심에 싸여도, 그 근심이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여자가 해산할 때에는 근심에 잠긴다. 진통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지금 너희가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볼 때에는, 너희의 마음이 기쁠 것이며, 그 기쁨을 너희에게서 빼앗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다.”
[ 근심이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
1. 떠남과 기다림 사이의 질문
오늘은 부활절 일곱째 주일이며, 부활 절기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부터는 성령강림 절기가 시작됩니다.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며 걸어 온 이 절기의 마지막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중요한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의 근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려면 무엇이 우리 안에서 새롭게 되어야 하는가?
오늘 세 본문은 모두 근심과 기쁨 사이에 있는 숙고의 시간을 강조합니다. 이사야서는 안일함에 머무르는 백성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사도행전은 배반으로 인한 상실 이후에 공동체가 숙고하면서 한 제자의 빈 자리를 채우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요한복음서는 제자들의 근심과 예수님의 약속 사이에 근심이 어떻게 기쁨으로 변화하는지 말해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현실의 근심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근심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 근심을 기쁨으로 변화시키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안일함에서 의로운 평안으로
이사야서 제1부(1장~39장)는 남유다 왕국 멸망 직전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북이스라엘 왕국을 삼켜버린 앗시리아 제국의 위협 앞에서 이사야는 남유다 왕국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미래의 메시아 왕국에 대한 희망을 제시합니다. 오늘 본문에 이사야는 당시의 사회 지배층을 향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아, 일어나서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딸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여기에서 안일함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편안함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안전할 것이라는 영적 둔감함을 의미합니다. 현실의 모순과 문제를 보지 못한 채, 이기적인 평안만을 추구하고, 민족의 위기와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어느 시대든지, 걱정거리가 없이 안일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다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멸망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외면한 채, 안일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납니다. 예언자는 말합니다.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아, 몸부림 쳐라.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여인들아, 몸서리 쳐라. 맨몸이 되도록 옷을 다 벗어버리고 베로 허리를 둘러라. 밭농사와 포도농사를 망쳤으니, 가슴을 쳐라. 나의 백성이 사는 땅에 가시덤불과 찔레 나무가 자랄 것이니, 가슴을 쳐라.” 이 경고의 목적은 심판 자체가 아니라, 근심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스스로 현실을 직면하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도록 일깨우는 숙고의 초대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서의 예언은 심판의 메시지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저 높은 곳에서부터 다시 우리에게 영을 보내 주시면, 황무지는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온갖 곡식을 풍성하게 내는 곡창지대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실 때, 황무지는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곡창지대가 될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평화로운 집에서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름진 땅에서 거두어들인 풍성한 결실을 통해 모든 사람이 공평과 의의 열매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메시아 왕국일 것입니다.
참된 평안은 단순한 걱정의 부재가 아니라, 공평과 의가 이루어 내는 평화, 샬롬입니다. 근심이 없는 안일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평안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임하여 공평과 의의 질서를 회복할 때 비로소 참된 기쁨의 미래가 열린다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공평과 의의 질서에서 나오는 참된 평화를 누리기 위해 나에게 필요한 것은?)
3. 공동체의 회복
부활하신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베드로와 제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했습니다. 그 가운데 제자들은,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뽑기로 하였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과 죽음은 제자 공동체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배신과 상실의 상처는 공동체를 아프게 했지만, 말씀과 기도 안에서 공동체는 치유와 회복의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새로운 제자의 기준을 정했습니다. “요한의 세례 때부터 주님의 승천 때까지 늘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예수님과 함께 걸으며 훈련된 사람 중에서, 요셉과 맛디아가 후보로 세워졌습니다.
다음 단계는 주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두 사람 가운데서 누구를 뽑아서, 이 섬기는 일과 사도직의 직분을 맡게 하실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십시오.” 제자의 선택은 원래 주님께서 직접 하신 일인데, 주님이 하셨던 일을 남겨진 사람들이 대신 하려 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바로 기도였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제비를 뽑게 하여 결정하는 일입니다. 제비뽑기는 최종 결정권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고대적 방식이었습니다. 결국 맛디아가 뽑혔습니다.
제비를 뽑기 전, 주님의 결정을 구하는 기도에서 새로 세워지는 일꾼의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특성은 ‘섬기는 일과 사도직의 직분’입니다. 열두 명의 사도 중 하나가 되는 것은 섬기는 사도가 되는 일입니다. 맛디아뿐만 아니라, 이미 제자로 부름을 받은 열한 명의 일꾼들 역시 섬기는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성령강림 이전에 공동체가 준비해야 했던 마지막 과정이 바로 섬김의 질서 회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모두 섬김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맡은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 누구를, 어떻게 섬기고 있는가?)
4. 고통과 해산의 기쁨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후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볼 것이다.” 제자들은 혼란과 근심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아직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 다시 오심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근심의 시간을 통해, 제자들의 믿음을 어린아이 상태에서 성숙한 어른의 믿음으로 이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너희가 근심에 싸여도, 그 근심이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여자가 해산할 때에는 근심에 잠긴다. 진통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 때문에, 그 고통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해산의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해산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그 고통은 기억되지 않을 만큼 큰 기쁨으로 바뀝니다. 근심은 생명을 파괴하려는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이 새 생명을 이루시기 위해 허락하신 해산의 진통입니다. 진통 후에 얻은 그 기쁨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다. 구하여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그래서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될 것이다.” 부활 절기 마지막 주일에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근심을 외면하거나 억누르지 말고, 기도의 자리로 가져오라는 주님의 초대가 아닐까요? 우리는 기도의 자리에서 성령의 위로와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그 기쁨은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근심이 기쁨으로 바뀌는 기도의 자리에 무엇을 가져가고 싶은가?)
5. 근심에서 기쁨으로
근심은 믿음의 부족이나 실패가 아니라, 기도의 자리에서 성령의 위로와 능력을 경험하고,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될 기회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며 기도하는 사람은, 근심에서 기쁨으로 옮겨가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성찰) 근심 속에서 기도하는가? 무엇을 기대하는가?
(응답) 섬김의 직분을 기꺼이 감당하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안일함에서 우리를 깨워주시고, 근심 속에서 새 기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섬김의 직분으로 불러주신 것을 감사히 여기며, 예수님의 약속을 붙잡고 성령의 위로와 능력을 기다립니다. 우리의 모든 근심이 주님 안에서 기쁨으로 변하게 하시고,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 안에서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