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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6일 부활절 넷째 주일

관리자 2026-04-19 (일) 10:38 5개월전 342  

2026년 4월 26일 / 부활절 넷째 주일

이사야서 63:7-14

---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그들은 나의 백성이며, 그들은 나를 속이지 않는 자녀들이다” 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 그들의 구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주님께서도 친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하게 하시지 않고 주님께서 친히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사랑과 긍휼로 그들을 구하여 주시고, 옛적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치켜들고 안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역하고, 그의 거룩하신 영을 근심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도리어 그들의 대적이 되셔서, 친히 그들과 싸우셨습니다. 그들은, 지난날 곧 주님의 종 모세의 날을 생각하며 물었습니다. “그의 백성 곧 양 떼의 목자들을 바다로부터 올라오게 하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그들에게 그의 거룩한 영을 넣어 주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 주님의 영이 그들을, 마치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떼처럼, 편히 쉬게 하시지 않았던가?” 주님께서 이렇게 주님의 백성을 인도하셔서, 주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26, 32-39

아브라함의 자손인 동포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 가운데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여,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그 약속을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으로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셔서, 조상들의 후손인 우리에게 그 약속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다시는 썩지 않게 하셨는데, 이렇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 약속한 거룩하고 확실한 복을,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 --- 그러므로 동포 여러분, 바로 이 예수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죄 용서가 선포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던 그 모든 일에서 풀려납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됩니다.

 

요한복음서 21:9-14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너라.”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 내렸다. 그물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제자들 가운데서 아무도 감히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가 주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 같이 생선도 주셨다.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새 아침 ]

1. 주님과 함께 맞이하는 새 아침

오늘 말씀의 제목은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새 아침입니다. 부활은 단순히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매일매일 새 아침을 열어나가는 현재의 은혜입니다.

 

오늘 세 본문은 각기 다른 시대와 상황 속에서 한 가지 공통된 사실을 증언합니다.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인도하시며, 실패 속에서도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게 하시는 분이라는 점입니다. 부활은 그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 속에서 완전하게 드러난 사건입니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새벽이 오듯, 부활의 은혜는, 가장 깊은 어둠을 뚫고 찾아오는 새 아침과 같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새 아침을 맞이하는 은혜를 깨닫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출발하게 될 것입니다.

 

2. 친히 인도하시는 하나님

이사야서 본문은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속에 있을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고난을 받을 때에 주님께서도 친히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하게 하시지 않고 주님께서 친히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멀리서 바라보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을 받을 때, 함께 고난을 받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부르짖을 때, 직접 일어나시는 분입니다. 이집트 탈출 사건에서 하나님은, 천사에게 위임하지 않으시고 친히 홍해를 갈라놓으시고, 친히 백성을 품으시며, 친히 나타나셔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언제나 하나님이 친히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깊은 상처와 혼란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부활의 신앙은 바로 이 고백에서 시작합니다. “내 고난 속에도 주님이 함께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 결과 하나님은 그들의 대적이 되어 싸우시는 분이 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역하고, 그의 거룩하신 영을 근심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도리어 그들의 대적이 되셔서, 친히 그들과 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역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절망의 자리에서 이스라엘은 옛날의 구원을 회상했습니다. “그들에게 그의 거룩한 영을 넣어 주신 그분이, 이제는 어디에 계시는가?” 이 회상은 단순한 추억이나 과거를 그리워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붙잡기 위한 믿음의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회상 속에서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인도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반역이 있었어도, 방황이 있었어도, 하나님은 결국 자기 백성을 다시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의 신앙도 종종 무뎌지고 지치고 후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옛날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순간, 새로운 인도하심이 시작됩니다. 거기가 바로 새 아침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 있는가?)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해야 할 지점은 어디인가?)

 

3.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사도행전 13장은 바울 사도의 1차 선교 여행 초기 비시디아 지역의 안디옥에서 전도하면서 행한 설교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 지역의 유대인 회당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합니다. 바울 사도의 청중은 두 부류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 그는 먼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이 구약 성경에서 약속된 언약의 성취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다윗과 예수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다윗은 죽어 썩었으나,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썩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에게 약속된 왕의 영광과 구원은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실현되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시편 말씀의 성취로서 다윗 왕을 언급한 것은, 유대인의 신앙 전통 전체가 예수님의 부활을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바울 사도를 통해, 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 소망이 예수님을 통해 현실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의 설교가 유대인에게만 향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여러분이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던 그 모든 일에서 풀려납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됩니다.” 바울의 이 말은 형식으로는 유대인 동포들에게 한 말이지만, 내용으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모든 이방인을 향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종교적 교리나 가르침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류를 향해 새로운 신앙 공동체의 시작을 선포하는 선언입니다. 의로움은 민족과 혈통의 경계 안에 머물지 않으며, 율법 준수의 능력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새 생명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복음은 상처 입은 유대인들에게는 약속의 성취를 의미하고, 하나님을 찾던 경건한 이방인들에게는 새로운 존재로의 초대를 의미합니다. 부활의 복음은 모든 사람의 삶에 새로운 아침을 가능하게 하는 복된 소식입니다. 


(내가 부활의 새 아침을 열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4. 실패의 밤에서 새 아침으로

복음서 본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의미를 아직 그들의 삶에 적용하지 못했기에, 그들에게 현재의 힘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옛 삶의 자리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밤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고, 예수님이 가까이 오셔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부활 신앙이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때, 누구든지 다시 과거로, 익숙하나 생명을 주지 못하는 자리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 밤의 갈릴리는 제자들에게 실패, 공허, 무력한 밤의 상징입니다. 그물은 찢어지지 않았지만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처럼 비어 있었습니다. 부활 신앙이 현재화되지 않고,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때, 그 삶은 텅 빈 그물과 같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셨고, 그물은 찢어질 듯 가득 찼습니다. 어두운 실패의 밤이 지나간 해변에는 이미 주님께서 준비하신 숯불과 빵과 생선이 있었습니다. “와서 아침을 먹어라.” 예수님께서 차려 주신 이 식탁은 용서의 식탁이며, 회복의 식탁이며, 사랑으로 교제하는 식탁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실패를 꾸짖지 않으시고, 그들의 빈 그물을 비난하지 않으시며, 그들의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먼저 새로운 아침을 차려 놓으실 뿐입니다. 그리고 그 아침의 식탁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임재를, 부활이 현재화되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부활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찾아와 새로운 아침을 여는 은혜의 사건입니다. 


(나는 실패의 어두운 밤에 있는가, 아니면 회복의 새 아침에 있는가?)

 

5.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새 아침

하나님은 고난 속에 함께 하시며, 반역 속에서도 다시 인도하시며, 죽음 속에서 생명을 일으키시고, 실패의 밤 뒤에 새로운 아침을 차려 주시는 분입니다.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새 아침은 이미 우리 앞에 차려져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식탁 앞에서 부활의 은혜로 다시 일어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성찰) 내가 가야 할 주님의 식탁은 어디인가?


(응답) 주님과 함께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주님, 우리의 어둠 속에 찾아오셔서 새 아침을 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넘어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주시고, 부활의 은혜로 다시 시작하게 해주십시오. 오늘도 주님과 함께 걸어가게 하시고, 새 생명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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