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2일 / 사순절 다섯째 주일
에스겔서 18:26-32
의인이 자신의 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죄를 짓다가, 그것 때문에 죽는다면, 그는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이다.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떠나 돌이켜서, 법대로 살며, 의를 행하면, 자기의 목숨을 보전할 것이다. ---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모두 너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갈라디아서 2:15-21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
누가복음서 23:39-43
예수와 함께 달려 있는 죄수 가운데 하나도 그를 모독하며 말하였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사람 ]
1. 누가 생명을 얻는가?
오늘은 사순절 다섯째 주일입니다. 우리는 다음 주 종려주일을 지나, 고난주간을 거쳐, 부활주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 세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누가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이를 것인가? 누가 십자가의 생명을 누릴 것인가? 오늘 말씀은 그 사람의 세 가지 모습을 보여 줍니다. 돌아서는 사람, 믿음으로 서는 사람 그리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붙드는 사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낙원에 이르는 길을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돌이키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에스겔 예언자는 바빌로니아 포로기 시대의 인물이지만, 에스겔서의 메시지는 남유다 왕국 멸망 직전 시기부터 포로 귀환 이후 시기에 이르는 폭넓은 시대를 반영합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에스겔서 18장은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며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징벌을 내리시고 어떤 사람에게 복을 내리실까요? “의인이 자신의 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죄를 짓다가, 그것 때문에 죽는다면, 그는 자신이 지은 죄 때문에 죽는 것이다.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서 떠나 돌이켜서, 법대로 살며, 의를 행하면, 자기의 목숨을 보전할 것이다.”
의인과 죄인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에스겔 예언자가 전하는 말씀에 따르면, 의인이라도 의를 버리면 죄인이 되고, 죄인이라도 죄에서 돌이키고 선하고 공명정대하게 살기 시작하면 의인이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과거보다 지금의 선택을, 가문이나 혈통보다 개인의 책임을, 전통보다 현재 삶의 모습을 보신다는 점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어제의 내가 아니라 오늘의 나를 보십니다. 과거의 공로가 오늘의 생명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잘못이 오늘의 생명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지금 돌이키는가, 지금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에스겔 예언자는 말합니다. “너희는, 너희가 지은 죄를 모두 너희 자신에게서 떨쳐내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왜 죽고자 하느냐?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그가 죽는 것을 나는 절대로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결국 죄인들이 회개하여 생명의 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들이 벌을 받아 죽는 것을 절대로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는 것, 회개하고 생명의 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멸망이 아니라 회복을 바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나에게 필요한 돌이킴은 무엇인가? 내 삶을 하나님께 돌이키는 시작점은 어디인가?)
3. 십자가에 참여하는 믿음
갈라디아 교회 안에는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이 함께 있었습니다.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 중 일부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에 대해 우월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우월감은 유대인들만 율법을 알고,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이나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다르지 않음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 말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한계와 부패성에 대한 진단입니다.
유대 출신 그리스도인이든,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이든, 모든 인간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또 율법을 완전하게 지킨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구원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진리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은총 아래에서 의롭게 됩니다. 이 진리 앞에서 그 누구도 우월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차별받을 수 없습니다. 율법은 차별을 만들지만, 복음의 은혜는 모든 장벽을 허물어 버립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언제나 평등의 자리입니다. 이 진리 안에서, 모든 민족과 출신성분의 장벽은 무효가 됩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율법과 공로 의식은 차별과 우월감과 교만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존재로 이해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교만, 우월감, 편견, 공로 의식, 차별의 마음이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옛 자아가 죽고 새로운 생명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나는 무엇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가?)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4. 간청하는 사람
누가복음서 23장은,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구원에 이르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 대표적인 예를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오늘 본문에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 옆에 함께 매달려 있던 두 죄수가 나옵니다. 먼저, 그 중 한 사람은 예수님을 모독했습니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회개도 경외감도 없이,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요구만을 늘어놓는 죄인의 최후 모습입니다.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을 모독하는 사람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는 자신의 죄와 예수님의 거룩함을 인정하며 고백합니다. 그리고 간청합니다. 그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공로도 없었지만, 회개하고 믿었고, 예수님을 의지했습니다.
두 죄수 모두 같은 형벌을 받고 있었고, 둘 다 죽음을 앞두고 있었고, 둘 다 예수님과 가까이 있었지만, 그 중 한 사람만 낙원을 허락받았습니다. 그 사람이 낙원을 허락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예수님을 바라보았고, 예수님께 간청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로 그 간청이 필요합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간청하는 그 사람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회개한 죄인은 낙원을 허락받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신뢰하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율법으로는 합격할 수 없는 우리를, 일단 합격시키는 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입학시험에 합격한 후 교육받고 성장해 가는 학생과 같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은혜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내가 지금 예수님께 고백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십자가의 주님을 붙들고 있는가?)
5.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사람,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간청하는 사람. 바로 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사람입니다.
(성찰) 회개하고 돌이키며 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응답) 주님과 함께 낙원에 이르는 길을 걷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죄에서 돌이켜 생명을 얻으라 하신 말씀 앞에 서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살게 해주십시오. 십자가 위에서 생명을 약속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주님의 은총 안에서 낙원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