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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8일 사순절 셋째주일

관리자 2026-03-05 (목) 18:26 6개월전 474  

2026년 3월 8일 / 사순절 셋째 주일

이사야서 60:9-14

너의 자녀들이 온다. 섬들이 나를 사모하며, 다시스의 배들이 맨 먼저 먼 곳에 있는 너의 자녀들을 데리고 온다. 그들이, 주 너의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려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려고, 은과 금을 함께 싣고 온다. 주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방 자손이 너의 성벽을 쌓으며, 그들의 왕들이 너를 섬길 것이다. “비록 내가 진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 내가 은혜를 베풀어서 너를 불쌍히 여기겠다.” 너의 성문은 언제나 열려 있어서, 밤낮으로 닫히지 않을 것이다. 이방 나라의 재물이 이 문을 지나 너에게로 오며, 이방 왕들이 사로잡혀서 너에게로 끌려올 것이다. 너를 섬기지 않는 민족과 나라는 망하고, 그런 이방 나라들은 반드시 황폐해질 것이다. “레바논의 자랑인 잣나무와 소나무와 회양목이 함께 너에게로 올 것이다. 그 나무가 나의 성전 터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니, 이렇게 하여서 내가 나의 발 둘 곳을 영화롭게 하겠다.” 너를 괴롭히던 자들의 자손이 몸을 굽히고 너에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자들이 모두 너의 발 아래에 엎드려서, 너를 ‘주님의 도성’이라고 부르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의 시온’이라고 부를 것이다.

 

빌립보서 3:17-4:1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과 같이, 우리를 본받아서 사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하였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입니다. 그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곳으로부터 우리는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는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기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

 

요한복음서 18:33-40

빌라도가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 예수를 불러내서 물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하는 그 말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오?” 빌라도가 말하였다. “내가 유대 사람이란 말이오? 당신의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겨주었소.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왕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빌라도가 예수께 “진리가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 사람들에게로 나아와서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소. 유월절에는 내가 여러분에게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관례가 있소. 그러니 유대 사람들의 왕을 놓아주는 것이 어떻겠소?” 그들은 다시 큰 소리로 “그 사람이 아니오. 바라바를 놓아주시오.” 하고 외쳤다. 바라바는 강도였다.

 

[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

1. 하늘인가 땅인가?

오늘은 사순절 셋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단순히 금욕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넘어서, 우리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어떤 길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지 새롭게 질문하는 절기입니다. 오늘 세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진리에 속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가치와 질서에 종속된 채, 방향을 잃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늘의 시민인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이사야서 60장은 포로 귀환 이후 새로운 시대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은과 금, 이방의 왕들과 자손들, 레바논의 아름다운 나무들까지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표현이 단순한 정치적 번영이나 외교적 성공의 그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너를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 말씀에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영화롭게 되는 이유는 그들의 힘과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화로움의 본질은 화려함이나 풍요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에,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의 회복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같은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강함이나 부유함이나 세속적 성공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입니까? 세상은 성취와 업적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누구의 이름으로 살아가는지를 먼저 보십니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디에 속해 있으며, 누구의 이름으로 살아가느냐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오늘 우리의 삶이 회복되는 첫걸음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전합니다. “비록 내가 진노하여 너를 쳤으나, 이제 내가 은혜를 베풀어서 너를 불쌍히 여기겠다.” 참된 회복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주도권 아래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방의 왕들이 섬기고, 재물이 흘러들어오고, 레바논의 나무들까지 성전을 아름답게 꾸미게 되는 것은 단순한 이스라엘의 승리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회복을 이끄시는 사건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흩어지고 무너진 마음, 관계의 상처,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자리에서도, 우리의 지혜와 노력만으로는 온전한 회복에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삶을 맡기고 순종할 때, 회복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우리를 바로 세우실 때, 비로소 우리는 온전한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속적 성공보다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을 더 깊이 붙들고 있는가? 지금 내 삶의 회복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있는가?)

 

3. 하늘 시민권자의 삶

이사야서의 말씀이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을 일깨운다면, 빌립보서의 말씀은 그 정체성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보여 줍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다 함께 나를 본받으십시오.” 이 말은 교만이나 우월감의 표현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늘의 시민권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삶의 방향을 보여 주기 위해 자신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세속적 기준만을 소중히 여기는 삶을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사람은, 욕망을 하나님으로 삼고, 수치스러운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착각하며, 땅의 것만 소중하게 여깁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취, 평판, 비교, 경쟁에서 이기는 것들이 인생의 표준이 된다면, 우리는 십자가의 길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세상의 욕망이 아니라 복음의 가치를 선택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때로 흔들리면서도 끝까지,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현재의 고난과 약함이 전부가 아님을 믿습니다. 주님의 다시 오심과 장차 변화될 몸을 소망하며 미래를 바라봅니다. 소비와 경쟁이 아니라 사랑과 섬김을 선택합니다. 체면과 유익이 아니라 진실과 정직을 선택합니다. 원망과 분노 대신 용서와 평화를 선택합니다. 이 땅에서 하늘의 질서를 미리 살아내는 것이 바로 하늘 시민권자의 삶입니다. (인생의 표준은 무엇인가? 하늘 시민권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4. 진리에 속한 사람의 길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빌라도 총독 앞에서 심문을 받습니다. 빌라도가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예수님은 정치적 힘이나 세속 권력으로 다스리는 왕이 아니며, 정의와 진리와 사랑으로 다스리는 왕입니다. 세상은 힘, 성공, 두려움의 원리를 따라 움직이지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다른 원리로 살아갑니다. 세상은 경쟁을 택하지만, 진리의 나라는 섬김을 택합니다. 세상은 두려움으로 움직이지만, 진리의 나라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세상은 유리한 길을 선택하지만, 진리의 나라는 옳은 길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삶의 여러 갈림길에서 늘 선택합니다. 그 선택은 우리가 어느 나라에 속한 사람인지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증언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고, 그 진리의 길이 결국 십자가로 이어짐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따르셨습니다. 반면에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오?’라고 물었으나, 진리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의 관심은 자기에게 유리한 선택, 안정적 통치, 정치적 평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죄 없는 예수님을 풀어 줄 수 있었음에도, 군중의 압력과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바라바를 풀어 주는 선택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에 속한 선택입니다. 빌라도는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유리한가?’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진리에 속한 사람은 옳은 길을 선택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쉽게 흔들입니다. “하늘의 뜻을 따를 것인가, 세상의 이해관계를 따를 것인가?” 진리에 속한 사람은 편한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선택합니다. (빌라도의 길을 선택하는가, 예수님의 길을 선택하는가?)

 

5.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

우리는 하나님이 회복시키신 백성이며, 하늘의 시민권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진리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목적과 판단의 기준, 선택의 원리는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세상이 흔들릴 때 진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고난과 십자가를 넘어서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성찰)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세상인가, 진리의 나라인가? (응답) 하늘의 시민권을 누리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사랑의 주님, 진리의 나라로 우리를 부르시고, 진리의 왕이신 예수님을 따라가도록 이끌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의 이해관계보다 주님의 뜻을 선택하며 하늘의 시민권자로 굳건히 서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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