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1일 / 사순절 둘째주일
사무엘기하 12:5-10, 13
다윗은 그 부자가 못마땅하여, 몹시 분개하면서, 나단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서 맹세하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또 그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니, 그는 마땅히 그 어린 암양을 네 배로 갚아 주어야 합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고, 또 내가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하여 주었다. 나는 네 상전의 왕궁을 너에게 넘겨 주고, 네 상전의 아내들도 네 품에 안겨 주었고, 이스라엘 사람들과 유다 나라도 너에게 맡겼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다면, 내가 네게 무엇이든지 더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너는, 어찌하여 나 주의 말을 가볍게 여기고, 내가 악하게 여기는 일을 하였느냐? 너는 헷 사람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다. 너는 그를 암몬 사람의 칼에 맞아서 죽게 하였다. 너는 이렇게 나를 무시하여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아다가 네 아내로 삼았으므로, 이제부터는 영영 네 집안에서 칼부림이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 다윗이 나단에게 자백하였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금님은 죽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3:11-19
그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 곁에 머물러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라서, 솔로몬 행각이라고 하는 곳으로 달려와서, 그들에게로 모여들었다. 베드로가 그 사람들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또 어찌하여 여러분은, 우리가 우리의 능력이나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하기나 한 것처럼, 우리를 바라봅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종 예수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일찍이 그를 넘겨 주었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작정하였을 때에도, 여러분은 빌라도 앞에서 그것을 거부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 거룩하고 의로우신 분을 거절하고, 살인자를 놓아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고 잘 알고 있는 이 사람을 낫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은 그 믿음이 이 사람을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완전히 성하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해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빌어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만 한다고 미리 선포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
요한복음서 18:15-17, 24-27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라서,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대문 밖에 서 있었다. 그런데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인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문지기 하녀에게 말하고,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 때에 문지기 하녀가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한사람이지요?” 베드로는 “아니오” 하고 대답하였다.
안나스는 예수를 묶은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보냈다. 시몬 베드로는 서서, 불을 쬐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그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가 부인하여 “나는 아니오!”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으로서, 대제사장의 종 가운데 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러시오?” 베드로가 다시 부인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 주님과 눈 마주치는 사람들 ]
1. 무지의 어둠 속에서
사순절 둘째 주일을 맞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바라보고, 그 고난 앞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라는 부르심을 받습니다. 사순절은 단순히 죄를 떠올리고 마음을 무겁게 하는 절기가 아니라, 우리의 무지와 어둠을 밝히고,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하는 절기입니다. 오늘 세 본문은 무지한 삶이 어떻게 죄를 초래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어떻게 그 무지를 깨워 주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무지를 다시 한번 깨닫고, 주님과 눈을 맞춤으로써, 다시 사랑과 진리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2. 무지를 직면한 다윗
다윗 왕이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와 정을 통하고, 부하들과 음모를 꾸며서 우리야가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을 때, 하나님은 예언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나단 예언자는 양과 소를 많이 소유한 부자가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 양 한 마리를 빼앗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다윗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심하게 분노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확실히 살아 계심을 두고서 맹세하지만,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합니다.” 다윗의 이 분노는 참된 정의감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온 어리석은 반응이었습니다. 다윗의 무지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성공과 권력의 편안함으로 인해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 마비되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나단 예언자는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 말은 무지의 장막을 찢어내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때로 다른 사람의 죄에는 분노하면서, 정작 자신의 무지와 어두움을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단 예언자는 악랄한 부자의 이야기가 바로 다윗 왕의 범죄를 가리킨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나단 예언자의 말은 다윗 안에 깊이 숨겨진 무지를 드러냈고, 그제야 다윗은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오랜 자신의 무지 속에서 벗어나서 비로소 하나님과 시선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나단은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임금님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죄의 현실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다윗이 자신의 무지에서 돌이켜 하나님과 시선을 맞추는 순간, 그를 다시 품어 주셨습니다.
나는 어떤 무지에 붙잡혀 있는가? 내가 보지 못하는 나의 죄는 무엇인가?
3. 무지에서 돌아서기
다윗이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순간 하나님과 시선을 맞출 수 있었듯이,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무지한 군중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무지함에 빠져 있는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그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가다가, ‘아름다운 문’이라는 성전 문 곁에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을 고쳐주었습니다. 이 치유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때, 베드로는 말합니다. “어찌하여 이 일을 이상하게 여깁니까?” 베드로는 치유의 사건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합니다. 이어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해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을 죽인 것은, 단순한 악의 결과라기보다, 영적인 무지에서 비롯된 비극의 열매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바로 그 무지의 행위를 통해 예언자들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빌어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아야만 한다고 미리 선포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습니다.” 무지는 죄를 낳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그 죄의 행위를 통해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 여기에서 회개는 도덕적 반성의 수준이 아니라, 주님과 다시 눈을 마주치기 위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해서, 혹은 두려워서, 혹은 마음이 굳어서, 주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순절은 그 무지를 걷어내고 주님께 주님과 시선을 맞추기 위해 우리 자신을 돌이키는 시간입니다.
지금 나는 무엇 때문에 주님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가?
4. 베드로의 시선
사도행전에서 베드로는 군중의 무지를 지적하면서, 그들이 주님께 돌이키도록 이끌었지만, 복음서에서는 정작 베드로 자신이 무지와 두려움 속에서 주님을 부인합니다. 베드로의 무지는 인간의 깊은 연약함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따라 대제사장의 집까지 갔습니다. 거기에서 문지기 여종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냐고 묻자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오” 베드로는 그 뒤에 두 번 더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베드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시선을 돌리게 되었고, 시선을 돌리자 말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무지의 삶이 단지 알지 못함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진리를 피하는 삶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 때문에, 손해를 보기 싫어서,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자주 주님의 시선을 회피하며, 주님을 모른다고 말하는 삶을 선택합니다.
베드로가 세 번째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 곧 닭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가복음서에 의하면 그 순간에 예수님은 뒤돌아 베드로를 바라보셨고,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베드로는 자신을 부인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바깥으로 나가서 비통하게 울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바라보신 시선은 정죄의 시선이 아니라, 깨우치는 시선, 베드로의 무지를 밝히는 은혜의 시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무지를 이미 알고 계셨고, 그의 연약함까지 품으셨습니다. 베드로가 실패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무지와 실패의 순간이야말로 제자가 새롭게 태어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완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무지를 깨우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두려움은 넘어서 주님과 시선을 마주치고 있는가?
5. 다시 부르시는 주님
사순절은 죄만 기억하는 시간이 아니라, 무지 속에서도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의 시선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다윗도, 예루살렘의 군중도, 베드로도 모두 무지 때문에 무너졌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무지를 깨우시고 다시 돌이켜 주님을 바라보게 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무지와 두려움이 무엇이든, 주님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바라보시고, 다시 부르시고, 다시 일으키십니다. 주님과 눈을 마주치면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고난과 죽음을 넘어서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성찰) 지금 주님과 눈을 맞추고 있는가?
(응답) 주님과 눈 마주치며 주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의 무지와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찾아오시고, 다시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시선을 피할 때가 많았으나, 이제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의 무지를 깨워, 다시 은총의 길을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