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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2일 사순절 첫째주일

관리자 2026-02-15 (일) 10:32 7개월전 491  

2026년 2월 22일 / 사순절 첫째 주일

예레미야 애가 3:55-59

주님, 그 깊디 깊은 구덩이 밑바닥에서 주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못들은 체 하지 마시고, 건져 주십시오’ 하고 울부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 간구를 들어 주셨습니다. 내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게 가까이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내 원한을 풀어 주시고, 내 목숨을 건져 주셨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내가 당한 억울한 일을 보셨으니, 내게 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로마서 7:15-2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 13:16-19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나는 너희 모두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택한 사람들을 안다. 그러나 ‘내 빵을 먹는 자가 나를 배반하였다’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곧 나’ 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 고난 속에서 바라보는 주님의 은총 ]

1. 은총을 배우는 사순절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며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사순절은 단지 무거운 마음으로 우리의 죄를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라, 고난의 한가운데에서도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다시 배우는 절기입니다.

 

오늘 세 본문은 인간의 어리석음과 고난, 그리고 흔들림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총이 언제나 먼저 임한다는 사실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증언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고난 한복판에서도 주님께서 열어 주시는 은총의 빛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갈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2. 구덩이의 기도와 주님의 은총

예레미야는 나라가 멸망하고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참혹한 현실 속에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불러온 고난을 목격하며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 깊은 자리에서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 깊디 깊은 구덩이 밑바닥에서 주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 기도는 더 이상 도망칠 수도 없고, 버틸 수도 없는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마지막 호흡과 같습니다. 죄의 결과로 닥친 고난이기에 더 슬프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껴지기에 더 고통스러운 자리였습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부릅니다. 절망이 깊어질수록 더 간절하게 하나님께 매달리며 은총을 구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비슷한 절망의 깊은 구덩이를 경험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전쟁, 재난, 상처, 상실… 또한 각자의 삶 안에도 말할 수 없는 깊은 골짜기가 있습니다. 이 절망을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불순종을 꾸짖어야 하지만, 동시에 무너진 백성을 향한 연민과 사랑을 멈출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예레미야의 눈물은 사실 하나님의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예레미야의 간구 앞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고난이 사라지기 전에, 회복이 보이기 전에, 은총이 먼저 임했습니다. “내가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게 가까이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여전히 폐허였습니다. 포로 생활은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변하기 전에 하나님의 은총이 먼저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위로가 고난을 없애기 위해 뒤늦게 오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먼저 와서 고난을 견디게 하십니다. 성경은 이 진리를 반복해서 보여 줍니다. 이집트 군대의 추격 앞에서 홍해가 열리고,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던 다윗에게 피할 길이 열렸으며,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먼저 부활의 소망을 약속하셨습니다. 고난이 끝나야 은총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먼저 와서 우리가 고난을 지나갈 수 있게 하십니다.

 

지금 어떤 고난 속에 있는가? 먼저 임하신 하나님의 은총은 무엇인가?


3.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은총

예레미야 애가가 공동체의 절망 한가운데 찾아온 하나님의 은총을 보여 주었다면, 로마서 본문은 각 개인의 내면에서 역사하는 은총의 능력을 보여 줍니다. 고난의 현실에서 은총이 먼저 왔다면, 바울 사도는 혼란스러운 내면 한가운데에도 은총이 먼저 찾아온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인간 내면의 비극적 분열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약함이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를 흔드는 죄의 지배력에 대한 실존적 고백입니다. 


우리도 너무 잘 압니다. 개인적인 삶에서,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을 때, 기도해야 함을 알면서도 무기력에 져버릴 때, 끊어야 할 습관임을 알면서도 반복하는 순간들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해야 하지만 상처로 인해 벽을 세우고, 화평을 추구해야 하지만 말로 상처를 남기며, 이해하려 해야 하지만 판단이 먼저 나가는 순간들을. 바울의 고백은 곧 우리의 고백입니다. “왜 나는 늘 같은 자리에 넘어질까? 왜 결심은 오래가지 못할까?”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모두 연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임을 깨닫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내 지체 속에서 역사하는 죄의 법이라 부릅니다. 이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단순한 의지 부족이나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문제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바울의 탄식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왜 감사할까요? 내 안의 죄의 법을 도덕적 결심으로 끊을 수 있을까요? 윤리적 노력, 수행, 고행이 인간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결심은 오래가지 못하고, 도덕은 욕망을 바꾸지 못하며, 수행은 행동만 조절할 뿐 마음을 새롭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총은 우리 안으로 깊이 들어와 죄의 뿌리를 흔듭니다. 우리가 스스로 올라가 도달하는 은총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려오셔서 우리를 끌어 올리시는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발견한 복음은 바로 이것입니다. 은총이 먼저이며, 은총이 죄의 법을 끊습니다.

 

죄와 싸울 때, 나는 나의 힘을 의지하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은총을 붙드는가?

 

4. 섬김의 은총

로마서가 인간 내면의 죄와 은총의 싸움을 보여 주었다면, 복음서는 그 은총이 예수님의 삶에서 어떻게 행동으로 드러났는지 보여 줍니다. 은총은 단순한 선언이 아닙니다. 배반자를 품는 사랑이며, 낮은 자를 섬기는 거룩한 실천입니다. 십자가를 앞두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말씀도, 기적도 아닌 발을 씻기는 섬김의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제자의 본질은 지식이나 능력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섬김은 약자의 생존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택하신 거룩한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제자들이 훗날 서로의 발을 씻기며 살아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섬김 자체가 은총이 현실에 나타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할 제자가 있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를 내치지 않으셨고, 그의 발마저 씻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빵을 먹는 자가 나를 배반하였다.” “이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곧 나’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다가 배반할 것을 아셨고, 배반·체포·고난·죽음의 과정을 보고 제자들이 절망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흔들릴 것을 미리 아시고, 그 흔들림을 붙들기 위해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들립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길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예수님을 다시 바라보는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오늘 우리도 실망스러운 현실 속에서 흔들립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전히 말씀하십니다. “흔들리지 말아라. 나는 이미 너희 앞에서 이 길을 걸었다.”

 

주님의 은총 안에서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고난의 주님을 따라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5. 고난 속에서 바라보는 은총의 길

고난보다 은총이 먼저입니다. 절망보다 위로가 먼저이며, 죽음보다 생명이 먼저입니다.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섬김과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사람은 죽음을 넘어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성찰) 지금 나에게 임하신 주님의 은총을 붙들고 있는가?


(응답) 흔들림 없이 주님의 뒤를 따르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주님, 고난 속에서도 먼저 찾아오시는 은총을 기억합니다. 절망 속에서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시고, 흔들릴 때마다 붙들어 주시는 주님을 믿고 감사합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으로 살게 하시고,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뒤따르며, 끝까지 믿음으로 걸어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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