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8일 / 성탄절 첫째주일
호세아서 11:1-4, 8-9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그러나 내가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리 떠나갔다. 짐승을 잡아서 바알 우상들에게 희생제물로 바치며, 온갖 신상들에게 향을 피워서 바쳤지만, 나는 에브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었고, 내 품에 안아서 길렀다. 죽을 고비에서 그들을 살려 주었으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다.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는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 아무리 화가 나도, 화나는 대로 할 수 없구나.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있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위협하러 온 것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1:26-31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 처지가 어떠하였는지 생각하여 보십시오. 육신의 기준으로 보아서, 지혜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권력 있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을 택하셨으니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되시며, 의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셨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한 대로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서 2:13-23
헤롯이 죽은 뒤에,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서 말하였다.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거라. 그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 요셉이 일어나서,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요셉은, 아켈라오가 그 아버지 헤롯을 이어서 유대 지방의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곳으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는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리 지방으로 물러가서, 나사렛이라는 동네로 가서 살았다. 이리하여 예언자들을 시켜서 말씀하신바,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 사랑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 ]
1.
2025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수고하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사랑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입니다. 성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와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죄인을 끝까지 품어 주시는 자비의 마음으로 우리 역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바로 그 자비가 몸을 입고 오신 사건이며, 사랑의 왕이 우리 가운데 임하신 사건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왕을 기쁨으로 맞이하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로운 한 해를 열고자 합니다.
2.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국가적 혼란과 신앙적 타락이 극에 달했던 시대에, 호세아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아기의 걸음마를 가르치고 품에 안아 길러 주시는 부모처럼 대해 주셨습니다. “나는 인정의 끈과 사랑의 띠로 그들을 묶어서 업고 다녔으며, 그들의 목에서 멍에를 벗기고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 (4절) 이것은 단순한 부모의 감정이 아니라, 라훔(불쌍히 여김)과 헤세드(끊어지지 않는 사랑)라는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지 못하고 멀리 떠났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8절)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악행을 생각하면, 버림받을 수밖에 없고 원수의 손에 넘겨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노보다 강한 것이 자비이고, 심판보다 앞서는 것이 하나님의 품으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너희 가운데 있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를 위협하러 온 것이 아니다.” (9절) 하나님의 진노가 있어도, 하나님은 믿음의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심판이 있어도, 멸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며, 멸망을 넘어 회복으로 이끄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호세아가 전한 이 자비의 하나님은 성탄의 사건에서 연약한 아기 예수를 보호하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맞닿아 있습니다.
지난 한 해 나는 하나님의 자비를 어떻게 경험했는가? 다가오는 새해, 나는 어떤 자비를 기대하고 있는가?
3.
고린도교회는 분파와 갈등으로 흔들리는 공동체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갈등의 뿌리가 자기 자랑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27절) 여기에서 지혜 있는 자와 강한 자란, 세속적 기준으로 스스로 지혜롭고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비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 곧 잘났다고 하는 것들을 없애시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이리하여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28-29절) 이는 단순히 약자를 편들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비 아래 서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택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강한 사람을 버리려고 약한 사람을 택하지 않으셨습니다.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지혜로운 자도 어리석은 자도, 모두가 하나님의 자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누구든지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라.” (31절) 하나님은 세상의 강함을 뒤흔들고, 약함을 통해 자비를 드러내십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바로 그 자비가 가장 선명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고린도교회의 갈등과 분쟁의 원인을 자기 자랑이라고 진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탄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 앞에서, 모든 믿음의 자녀들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합니다. 자기 자랑을 버리고, 하나님의 자비 앞에서 자신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인정할 때, 공동체의 분열과 갈등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내가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자랑과 교만은 무엇인가?
4.
예수님은 높은 곳에서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의 보호도 받기 어려운 구유에서 태어나셨고, 태어나자마자 헤롯 왕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 시대는 폭력, 두려움, 불안, 권력투쟁이 난무하는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연약한 아기 예수를 지켜내셨고,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아기 예수는 그 시대의 중심으로 들어가 헤롯과 권력투쟁을 벌이지 않고, 연약함과 낮아짐의 방식을 취하면서 시대의 주변부로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는 위험을 피하지 않고, 그 위험의 한복판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권력투쟁이 아니라 자비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헤롯은 자기 권력이 흔들릴까 두려웠습니다. 로마제국은 안정적인 식민 지배 통치를 원했습니다. 산헤드린과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종교적인 권위와 지도력이 약해지는 것을 막으려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주변에 자리 잡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이해관계에 매달려서, 기존 사회체제의 변화를 거부하였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과 세력이 아기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기의 목숨을 노리는” 무시무시한 적대세력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도 길을 여시고, 연약함을 통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내 삶의 모습과 가정생활과 사회적 관계들은 새로운 왕이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계실만한 곳인가요? 혹시 아기 예수가 내 삶에 왕으로 오시는 것을 불편해하면서, 이집트로 혹은 북쪽 변방 추운 곳으로 쫓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내 안에 이미 다른 왕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새로 오시는 왕을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요?
아기 예수를 참된 왕으로 모시기 위해 내 삶에서 치워야 할 헤롯의 흔적은 무엇인가?
5.
호세아는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바울 사도는 연약한 자를 선택하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줍니다. 마태복음서는 강한 헤롯이 아니라 어리고 연약한 아기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가 이 땅 위에 실현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성탄의 아기 예수는 자비의 왕입니다. 그 자비는 포기하지 않는 사랑이며, 약함을 통해 강함을 꺾는 사랑이며, 연약한 자를 통해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자비의 왕을 기쁨으로 맞이하며, 자기 자랑을 버리고, 연약함을 인정하며,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찰) 아기 예수를 삶의 진정한 왕으로 모시고 있는가?
(응답) 아기 예수를 사랑의 왕, 자비의 왕으로 모시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자비의 하나님! 연약함 속에 오신 아기 예수를 우리의 왕으로 맞이합니다. 자기 자랑과 교만을 내려놓고, 자비 안에 서게 하시며, 우리의 삶이 사랑의 왕을 모시는 자리가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