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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1일 대림절 넷째주일

관리자 2025-12-14 (일) 10:05 9개월전 573  

2025년 12월 21일 / 대림절 넷째주일

예레미야서 23:3-8

이제는 내가 친히 내 양 떼 가운데서 남은 양들을 모으겠다. 내가 쫓아냈던 모든 나라에서 모아서, 다시 그들이 살던 목장으로 데려오겠다. 그러면 그들이 번성하여 수가 많아질 것이다. 내가 그들을 돌보아 줄 참다운 목자들을 세워 줄 것이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무서워 떠는 일이 없을 것이며, 하나도 잃어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다윗에게서 의로운 가지가 하나 돋아나게 할 그 날이 오고 있다. 나 주의 말이다. 그는 왕이 되어 슬기롭게 통치하면서, 세상에 공평과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그 때가 오면 유다가 구원을 받을 것이며, 이스라엘이 안전한 거처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그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다’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보아라. 그 날이 지금 오고 있다. 나 주의 말이다. 그 때에는 사람들이 다시는 ‘이스라엘의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 않고, 그 대신에 ‘이스라엘 집의 자손이 쫓겨가서 살던 북녘 땅과 그 밖의 모든 나라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 것이다. 그 때에는 그들이 고향 땅에서 살 것이다.

 

요한일서 4:13-21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기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고, 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았고, 또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며,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마태복음서 1:18-25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나서,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서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 하였다. 요셉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주님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 들여라. 그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이르시기를,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요셉은 잠에서 깨어 일어나서, 주님의 천사가 말한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는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나니, 요셉은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완전한 사랑 안에 있는 사람들]

1.

오늘은 대림절 넷째주일입니다. 대림절의 초가 점점 밝아지듯, 우리의 마음과 삶도 더 밝아지고 맑아지기를 바랍니다. 대림절의 기다림은 단순한 멈춤의 기다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성육신하여 우리 가운데 오시는 사건을 준비하는 기다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께서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삶이 불완전하고 연약할지라도, 그 완전한 사랑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평안과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세 본문은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를 어떻게 새롭게 하며, 그 사랑이 어떻게 우리 안에서 완전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2.

예레미야는 남유다 왕국 멸망이라는 깊은 어둠의 시대를 살았던 예언자입니다. 그의 메시지는 대부분 심판과 회개로 가득했으나, 오늘 본문에서 그는 심판을 넘어서는 전혀 새로운 구원의 미래를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흩어진 양 떼를 다시 모으고(3-4절), 다윗의 뿌리에서 새로운 의의 가지, 곧 공평과 정의로 다스릴 왕을 일으키겠다(5절)’라고 약속하십니다.

 

특히 예레미야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과거에서 미래로 옮겨 놓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기 전까지, 하나님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7절) 로 표현되었습니다. 이 표현은 이집트 탈출(출애굽) 사건이라는 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지난 시절에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에 대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쫓겨가서 살던 북녘땅과 그 밖의 모든 나라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주’(8절) 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먼 훗날 바빌로니아 포로 생활을 겪은 후 흩어졌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표현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과거의 한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현실과 미래의 시간 속에서 다시 펼쳐질 것임을 알리는 선언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과거의 틀에 가두지 않고, 다가올 미래의 구원을 여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과거의 경험에 갇힌 하나님입니까? 새로운 구원을 여시는 하나님입니까?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의 구원, 다가올 사랑에 대해 어떤 기대를 안고 있는가?

 

3.

요한1서는 예레미야 예언자가 바라본 미래의 구원을 사랑이라는 중심 개념을 통해 새롭게 해석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랑 안에 있습니다.” (16절) 하나님의 사랑은 추상적 감정이나 고상한 이념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실제적 생명력입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때, 그 사랑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사랑이 현재화되고 실체가 되는 사건, 곧 작은 성육신입니다.

 

요한은 특히 보이는 형제자매에 대한 사랑을 강조합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20절) 달리 말하면 이렇습니다. ‘보이는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자리 잡을 때, 두려움은 힘을 잃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18절) 두려움은 징벌을 떠올리지만, 사랑은 담대함을 낳습니다. 사랑을 선택하는 사람은 담대합니다. 사랑을 품는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하나님처럼 여기면서 사랑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4.

복음서 본문은 완전한 사랑이 어떻게 구체적 삶의 선택이 되는지를, 요셉을 통해 보여줍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약혼한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마리아를 부끄럽게 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파혼하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로서는 충분히 의로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셉을 의로움에서 사랑의 순종으로. 한 단계 더 깊은 자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들여라.”(20절) 요셉은 두려움을 넘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으며, 그 순종은 완전한 사랑의 행동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이 실제 역사 속에 실현되었습니다. 요셉은 그저 조용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을 행동으로 옮긴 사람, 사랑으로 순종하고 사랑으로 담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나의 말과 행동은 의로움에 머물러 있는가, 사랑의 성육신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5.

하나님은 흩어진 백성을 모으시는 분이며, 그 사랑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사랑이며, 우리의 두려움을 몰아내고 새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새롭게 하고, 미래를 향해 길을 여는 사랑입니다. 완전한 사랑 안에 사는 사람은, 보이는 형제자매를 하나님처럼 귀히 여기며, 하나님의 사랑을 삶 속에서 현재화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랑을 통해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성찰) 완전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나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가? 그 사랑이 지금 내 안에서 현재화되고 있는가?

 

(응답) 지금 사랑하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하나님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니 감사합니다. 두려움 대신 사랑을 선택하게 하시고, 요셉처럼 순종으로 사랑을 드러내게 해주십시오. 완전하신 사랑에 순종으로 응답하며 날마다 하나님을 닮아가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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