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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4일 대림절 셋째주일

관리자 2025-12-07 (일) 10:00 9개월전 561  

2025년 12월 14일 / 대림절 셋째주일

이사야서 62:10-12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려라. 보아라, 주님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신다. 딸 시온에게 일러주어라. 보아라, 너의 구원자가 오신다. 그가 구원한 백성을 데리고 오신다. 그가 찾은 백성을 앞장 세우고 오신다. 사람들은 그들을 ‘거룩한 분의 백성’이라 부르며 ‘주님께서 속량하신 백성’이라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너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사랑한 도성’이라고 부르며,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도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히브리서 11:37-12:2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요한복음서 1:22-28

그래서 그들이 말하였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란 말이오?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할 말을 좀 해주시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시오?” 요한이 대답하였다.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대로,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고 말이오.”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또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면, 어찌하여 세례를 주시오?” 요한이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이가 한 분 서 계시오. 그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지만,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만한 자격도 없소.” 이것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다.

 

[새 이름]

1.

기다림의 절기인 대림절의 셋째주일입니다. 대림절은 단순히 기다리는 절기가 아니라, 아기 예수의 몸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오셔서, 새 정체성을 부여하시고, 새 이름을 주십니다. 새 이름을 받은 사람은 삶도 새로워집니다.

 

오늘 세 본문은 하나님께서 어떤 새 이름을 주시는 지, 그 새 이름이 지향하는 삶의 방향이 어디인지, 그리고 새 이름을 살아가는 사람이 지녀야 할 구체적인 삶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새 이름을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성탄의 복된 선물도 함께 받게 될 것입니다.

 

2.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갔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을 때, 이사야 예언자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나아가거라. 성 바깥으로 나아가거라. 백성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라. 큰길을 닦고 돌들을 없애어라. 뭇 민족이 보도록 깃발을 올려라.”(10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닫힌 성이 아니라 열린 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문을 잠그고 자신만 지키는 공동체가 아니라, 흩어진 사람들을 맞이하는 공동체, 더 나아가 그들을 위해 먼저 밖으로 나가 길을 닦고 깃발을 들어 올리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무너진 성, 닫힌 성, 절망의 성이었던 예루살렘이 이제 열린 성, 희망의 깃발이 펄럭이는 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에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이 새 이름을 얻는다는 것은 그저 이름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 공동체의 존재 방식이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더 이상 예루살렘 성은 버림받은 도성이 아닙니다. 심판을 받아서 초토화되었던 성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도성,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은 도성이 됩니다. 예루살렘 성이 멸망할 때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더 이상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모두 새 이름을 얻습니다. 그들의 새 이름은 거룩한 분의 백성, 주님께서 속량하신 백성(12절)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믿음의 자녀들을 새 이름으로 불러 주십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회복과 희망의 이름을 지어 주십니다. 낡은 공동체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열린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새 이름으로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새 이름은 무엇인가?

 

3.

히브리서 11장은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고문당하고(35절), 돌로 맞고, 톱질을 당하고, 칼에 맞아 죽었으며,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겪었습니다. (37절)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39절)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그들은 실패자이거나 버림받은 인생처럼 보입니다. 세속사회와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떠돌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세상이 주지 못하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바로 ‘증인, 믿음을 끝까지 지킨 사람, 더 큰 약속을 향해 달려간 사람’이라는 이름입니다. 이들의 위대함은 세속사회 안에서 이룬 성공에 있지 않습니다. 세속사회를 거슬러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39-40절)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도 받지 못한, 더 좋은 계획이 있습니다. 그들이 받지 못한 것, 더 좋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이 선물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더 좋은 계획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12장 2절)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리심으로써 새 이름을 얻으셨습니다. 모든 고통과 시련을 이겨내는 믿음의 시작점이 되셨고, 부활하심으로 구원과 영생의 기쁨을 누리는 믿음의 완성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심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를 밝혀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던 분이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지치고 넘어지고 때로 실족하는 우리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증인, 하나님 나라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됩니다. 새 이름을 얻은 믿음의 자녀들은 서로를 새 이름으로 부르며, 서로 격려하며, 평화의 공동체를 세워갑니다.

 

새 이름을 얻고 하나님의 보좌에 이를 때까지, 이 세상에서 참고 견뎌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

 

4.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을 때, 많은 사람이 그의 말과 행동에 주목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지도자 혹은 예언자,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런 기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요한에게 ‘당신은 누구요? 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말하는 데 집중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여라’하고 말하는 사람이다.”(23절)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서 정체성을 찾지 않고, 뒤에 오시는 분이신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규정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집중된 세상의 관심을 그리스도께 돌렸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며,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사람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그대로 살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적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봉사와 헌신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부각시키는 삶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비추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관심은 나 자신으로부터 예수님에게로 옮겨져야 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새 이름으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해야 합니다. 위대한 세례 요한조차 ‘그분의 신발 끈 풀 만한 자격도 없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더 깊이 집중해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시선과 헌신이, 온전히 예수님께로 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5.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 흔들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 자기만 비추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밝히는 사람이라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 새 이름을 받은 우리는 이제 다른 이들에게도 새 이름을 불러 주어야 합니다. 상처 속에 갇힌 사람들을 향해 ‘너는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불러 줄 때, 우리 공동체는 평화의 길을 열어가는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성찰) 나의 새 이름은 무엇인가?

 

(응답) 예수님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우리에게 새 이름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는 사람으로, 흔들리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의 보좌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 예수님을 드러내는 사람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매일 새로운 존재로 나 자신을 발견하며, 다른 사람도 새 이름으로 불러 주는 평화의 일꾼이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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