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3일 / 창조절 열두째주일
열왕기상 8:27-30
그러나 하나님, 하나님께서 땅 위에 계시기를, 우리가 어찌 바라겠습니까? 저 하늘, 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모시기에 부족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성전이야 더 말하여 무엇 하겠습니까? 그러나 주 나의 하나님, 주님의 종이 드리는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오늘 주님의 종이 주님 앞에서 부르짖으면서 드리는 이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주님께서 밤낮으로 눈을 뜨시고, 이 성전을 살펴 주십시오. 이 곳은 주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곳입니다. 주님의 종이 이 곳을 바라보면서 기도할 때에, 이 종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종인 나와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바라보며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주님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는 대로 용서해 주십시오.
고린도전서 3:16-17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마태복음서 12:1-8
그 무렵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서 먹기 시작하였다. 바리새파 사람이 이것을 보고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를,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지 않았느냐? 그것은 오직 제사장들 밖에는, 자기도 그 일행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또 안식일에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범해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율법책에서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더라면, 너희가 죄 없는 사람들을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 하나님의 성전 ]
1.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자리
가을이 점점 깊어집니다. 지나온 시간과 머물렀던 공간을 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한 겹씩 마음에 쌓입니다. 그러나 그 아쉬움 속에서도 우리는 깨닫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자리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곳을 성전 삼아 우리를 만나 주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모든 순간 속에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셨고, 우리의 발걸음이 닿았던 자리마다 은총의 흔적을 남기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모든 시간과 공간을 품으신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은 하늘 저 너머이면서, 동시에 온 우주 한 가운데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스스로 여기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고, 우리가 기도할 때 그 자리를 거룩한 곳으로 삼으십니다.
오늘 말씀은 멀리 초월해 계시면서도 동시에 우리 곁에 와 계시는 하나님의 신비를 세 가지 모습으로 보여줍니다. 성전을 통해 임재하시는 하나님, 사람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거룩한 현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전과 안식일을 넘어 자비로 드러나신 하나님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머무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거룩한 변화의 은혜를 새롭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2. 공간이 아니라 관계 안에 계시는 하나님
솔로몬은 성전 봉헌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먼저 고백합니다. “저 하늘, 저 하늘 위의 하늘이라도 주님을 모시기에 부족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성전이야 더 말하여 무엇 하겠습니까?” 솔로몬은 성전의 웅장함보다, 그곳에서 드려질 기도와 예배의 진실함이 더 소중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광야의 여정 속에서 법궤를 중심으로 이동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장막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고 믿었고, 백성들은 그곳에서 예배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솔로몬은 그 광야의 경험과 전통을 이어받아, 예루살렘의 성전이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자리”가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곳이란, 단지 신성한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뜻과 능력이 드러나며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곳은 이방의 신을 따르는 세속의 문화가 사라지는 곳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그것이 물질의 우상일 수도 있고, 명예나 성공의 신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봉헌하며, 하나님께 집중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예배 또한 그러해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중심과 삶의 한가운데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순종이 가득 찰 때, 그 자리와 그 시간이 곧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처소가 됩니다.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내 안에서 제거해야 할 세속의 문화는 무엇인가?
3.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
솔로몬의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처소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 이후, 성전의 의미는 더 이상 돌로 지은 건물 안에 머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거룩한 처소는 믿음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 세워졌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인 각자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바울의 이 말씀이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성전은 더 이상 특정한 공간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이 머무시는 관계의 자리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 그리고 믿음 안에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 바로 그곳이 하나님의 거룩한 처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우리가 쓰는 시간과 공간이 하나님의 거룩함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분노로 말할 때, 우리 안의 성전은 흔들립니다. 우리가 용서와 자비를 베풀 때, 우리 안의 성전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이제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모임이 곧 하나님의 거처입니다. 성령이 머무시는 그 자리에서 사랑과 겸손, 용서와 화해가 피어나야 합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고 있는가? 내 말과 행동이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자리가 되고 있는가?
4.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 원하시는 것
거룩한 처소가 각 사람과 교회 공동체 안에 세워졌다면, 그 거룩함을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할까요? 그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성전보다 더 크신 분이며 자비와 생명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이 행동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금지한 39가지 행위 중 하나라고 비판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이 생각하는 안식일과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안식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안식일은 멈춤의 날이었지만, 예수님께 안식일은 사랑과 회복의 날이었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죽은 안식일과 살아 있는 안식일의 차이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안식일에 하면 안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예수님은 안식일에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이야기를 예로 드시며 말씀하십니다. ‘모든 율법에도 자비의 예외가 있다.’ 다윗 일행이 제단에 차려 놓은 빵을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단의 음식은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배가 고플 때, 그들의 허기를 채워 주는 자비의 원칙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안식일 법의 경우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하는 필수적인 일들에 대해 예외를 적용하는 것이 안식일과 성전의 거룩함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제사보다 자비’라는 호세아 6장 6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모든 율법을 해석하는 대원칙이 자비(사랑)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공간과 거룩한 시간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기 위한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를, 형식이 아니라 사랑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성전 건물은 하늘과 우주 모든 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제한되고 특별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거룩한 공간입니다. 안식일은 모든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제한되고 특별한 시간 안에서,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평안의 은혜를 누리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거룩한 공간과 거룩한 시간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한된 거룩한 공간인 성전보다 더 큰 분이시며, 제한된 거룩한 시간인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몸과 생명을 제물로 드려, 그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완전히 허무셨습니다. 이제 주님과 함께 있는 모든 시간과 공간은 거룩하게 변화됩니다. 오늘 우리는 성전보다 더 큰 분이시며 모든 시간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당신의 거룩한 공간은 어디입니까? 당신의 거룩한 시간은 언제입니까?
5.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가는 삶
솔로몬의 성전은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거룩한 처소로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한정된 공간과 시간 안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한계를 넘어서, 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 모든 사람이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제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며, 믿는 자들의 삶의 현장입니다. 기도하는 자리, 섬기는 손길, 이웃을 돌보고 품는 마음, 그 모든 곳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그리스도의 임재가 우리의 일상과 관계 속에서 드러날 때, 우리의 삶은 단순한 하루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감사가 곧 예배가 되고, 예배가 곧 삶이 됩니다. 그때 우리의 삶은 성전이 되고, 우리의 하루는 예배가 됩니다. 하나님이 머무시는 그 자리에서, 우리도 사랑과 자비로 충만하게 채워질 것입니다.
(성찰)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가는가?
(응답) 모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모든 순간과 자리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내 마음이 주님의 성전이 되게 하시고, 주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머물러 우리의 생각과 말이 거룩함으로 드러나게 해주십시오.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서 거룩한 주님의 임재가 나타나게 해주시고, 우리 교회가 사랑과 자비로 세워지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