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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4일 창조절 둘째주일

관리자 2025-09-07 (일) 17:17 1년전 726  

2025년 9월 14일 / 창조절 둘째주일

창세기 11:1-9

처음에 세상에는 언어가 하나뿐이어서, 모두가 같은 말을 썼다. 사람들이 동쪽에서 이동하여 오다가, 시날 땅 한 들판에 이르러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자, 벽돌을 빚어서, 단단히 구워내자.”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썼다. 그들은 또 말하였다. “자,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고서, 탑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날리고, 온 땅 위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주님께서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만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 백성으로서, 이렇게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서,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주님께서 거기에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고린도후서 4:1-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서 이 직분을 맡고 있으니,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끄러워서 드러내지 못할 일들을 배격하였습니다. 우리는 간교하게 행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환히 드러냄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의 양심에 우리 자신을 떳떳하게 내세웁니다. 우리의 복음이 가려 있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가려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경우를 두고 말하면,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을 여러분의 종으로 내세웁니다. “어둠 속에 빛이 비쳐라” 하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서 13:21-27

“그 때에 누가 너희에게 ‘보아라,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보아라, 그리스도가 저기에 있다’ 하더라도, 믿지 말아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표징들과 기적들을 행하여 보여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 받은 사람들을 홀리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조심하여라. 내가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여 둔다.” “그러나 환난이 지난 뒤에, ‘그 날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그 때에 그는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 내려오시는 하나님 ]

1. 내려오시는 하나님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내려오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올라가려 합니다. 더 높이, 더 많이, 더 크게 만들려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은 올라가시는 분이 아니라, 내려오시는 분입니다. 바벨탑 위로 내려오신 하나님,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 그리고 마지막 날 큰 권능과 영광으로 다시 내려오실 주님. 성경은 일관되게 내려오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내려오셔야, 이 세상의 구원은 완성될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에도 바벨탑이 있습니다. 끝없이 오르고, 많이 모으고, 더욱더 인정받으려는 욕망이 우리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끝없이 올라가려는 사람의 욕망과는 달리 내려오시는 하나님은 은혜 안에서만 구원과 생명의 길이 열린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2. 올라가려는 욕망과 흩으심의 섭리

바벨탑 이야기는 기술과 문명이 인간의 욕망과 결합했을 때 나타나는 위험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벽돌과 역청으로 성과 탑을 쌓으며 말했습니다. “우리의 이름을 날리자, 온 땅에 흩어지지 말자.” 이는 곧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인간 욕망의 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탑 위에 내려오셔서 사람들의 언어를 뒤섞으셨고, 결국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언어의 혼잡은 단순한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흩어져서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형성하게 하셨습니다. 다양하게 흩어진 인류가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고 살면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공존하게 하셨습니다. 바벨탑은 하나의 언어와 가치로 세상을 통제하고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인간 욕망의 상징이었지만, 내려오신 하나님은 획일화의 위험에서 인류를 구하셨습니다. 바벨탑의 심판은 인류가 다양성 속에서 새로운 구원으로 나아가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바벨탑을 쌓고 있는가?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한 채 획일과 효율만을 추구하는 삶은 어떻게 될까?

 

3. 질그릇 안의 보물(내려오신 복음)

바벨탑 이야기에는 바빌로니아 포로 생활을 겪은 유대민족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포로기의 유대민족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 바빌로니아 제국의 발달 된 문명과 기술 그리고 거대한 신전과 건축물들을 보면서 제국의 위력에 압도되었습니다. 문화적 열등감과 신앙적 회의감이 그들의 눈을 가려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인간이 세운 탑은 결코 하늘에 닿을 수 없으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이 깨달음은 절망을 넘어,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과 회복에 대한 믿음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 사도가 전하는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적대자들은 바울 사도가 전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의 신(사탄)이 사람들의 눈을 가려서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세상의 신이란 추상적 개념이 아닙니다. 당시 고린도 사람들을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군사력, 황제 숭배, 그리스-로마 신화와 문화까지 포함한 실체적 장막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눈을 가려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속의 욕망은 ‘효율과 결과적 성취’라는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문화양식에 집중할 것을 요구합니다. 높은 탑을 쌓고, 그 탑에 오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라고 유혹합니다. 거대한 바벨탑을 향한 욕망 즉 세속을 향한 욕망은 믿음의 눈을 가립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셨고, 그 빛은 결코 가려질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의 보물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이지만, 그 안에 담긴 보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우리를 희망의 백성으로 만듭니다. 바벨탑이 무너지듯, 바빌로니아 제국이 무너지듯, 인간 욕망의 탑들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다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자녀들은 낙심하지 않습니다. 비록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인생이지만, 그 안에 빛나는 보물 그리스도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내 삶을 지배하는 것은 세속의 욕망인가, 아니면 내려오신 그리스도의 빛인가?

나는 질그릇 같은 연약함 속에서도 보물을 간직한 희망의 백성인가?

 

4. 다시 내려오실 주님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많은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기적과 표징으로 사람들을 홀릴 것이라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기적과 표징을 좋아합니다. 기적과 표징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니라 표징과 기적만을 바라볼 때, 표징과 기적들은 변형된 바벨탑이 됩니다. 더 많이 모으고, 더 높이 오르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표징과 기적에 쉽게 홀릴 것입니다. 표징과 기적이 나타날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들었고, 예수님께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고난의 길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은 떠나갔고 제자들은 도망갔으며 베드로조차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많은 기적과 표징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도,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좁은 문으로 쉽게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표징과 기적에 홀려서, 십자가의 길 즉 겸손과 낮아짐과 자기 희생의 길을 놓쳐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주님은 사람들을 모으십니다.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 선택된 사람들이란 누구일까요?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믿는 사람들이며, 표징과 기적이라는 바벨탑의 유혹을 이겨낸 사람들이며, 십자가와 고난의 길을 외면하지 않고 겸손과 낮아짐과 자기 희생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 사람들이며, 생명과 진리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가? 거짓 표징과 기적의 유혹을 넘어, 다시 내려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가?

 

5. 결단의 고백

우리는 욕망의 탑을 버리고, 내려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하겠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질그릇과 같지만, 보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간직한 희망의 백성으로 살겠습니다. 다시 내려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이웃과 함께 생명평화의 길을 걷겠습니다.

 

성찰

내려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다양성과 공존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질그릇 같은 나의 연약함 속에 보물을 간직한 희망의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응답

욕망의 탑을 버리고, 내려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하겠습니다.

깨지기 쉬운 질그릇 안에 빛나는 보물을 지닌 희망의 백성으로 살겠습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주님, 우리의 눈을 가린 세상의 장막을 걷어 주십시오. 로마 제국의 군사력과 문화처럼, 오늘 우리의 눈을 가리는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십시오. 십자가의 길을 따르며, 다시 내려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희망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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