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0일 / 성령강림후 여섯째주일
아모스서 5:18-24
너희는 망한다! 주님의 날이 오기를 바라는 자들아, 왜 주님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둡고 빛이라고는 없다. 사자를 피하여 도망가다가 곰을 만나거나, 집 안으로 들어가서 벽에 손을 대었다가, 뱀에게 물리는 것과 같다. 주님의 날은 어둡고 빛이라고는 없다. 캄캄해서, 한 줄기 불빛도 없다.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요한계시록 2:8-11
“서머나 교회의 심부름꾼에게 이렇게 써 보내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네가 당한 환난과 궁핍을 알고 있다. 그런데 사실 너는 부요하다. 또 자칭 유대 사람이라는 자들에게서 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유대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감옥에다 집어넣으려고 한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마가복음서 13:9-1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사람들이 너희를 법정에 넘겨줄 것이며, 너희가 회당에서 매를 맞을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되고, 그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고 가서 넘겨줄 때에, 너희는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아라. 무엇이든지 그 시각에 말할 것을 너희에게 지시하여 주시는 대로 말하여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성령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죽음에 넘겨주고, 아버지가 자식을 또한 그렇게 하고, 자식이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서 부모를 죽일 것이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서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 죽도록 충성하여라 ]
1.
오늘 말씀의 제목은 ‘죽도록 충성하여라’입니다. 믿음의 자녀들은 죽을 때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견디면서 죽을 때까지 충성하는 사람은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됩니다.
2.
아모스의 예언은 풍요로움 속에서 타락해 버린 믿음의 자녀들을 향한 심판과 경고입니다. 아모스 시대의 북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상업 통로를 확보함으로써 물질적인 번영과 풍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번영과 풍요는 이스라엘 상층부의 불신앙과 우상숭배를 초래하였습니다. 이들의 타락으로 인해 공동체의 빈부격차가 심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와 제물들은 더 많은 풍요와 안락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극심한 빈부격차로 신음하며 고통당하는 동족의 아픔을 외면한 채 드리는 제사와 제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킬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주님의 날’을 맞이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날은 구원과 승리의 날이 아니라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된다는 것이 아모스 예언자가 전한 말씀입니다. 아모스 예언자의 시선으로 볼 때,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떠할까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공의가 물처럼 흐르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정의(쩨다카)는 하나님과 이웃 사이에 맺어진 올바른 관계의 원칙을, 공의(미슈타트)는 그 원칙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의 공적 정당성을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강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도 공동체의 낮은 곳으로 흘러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점입니다.
참된 믿음의 자녀들은 풍요와 안락함을 추구하며 살지 않습니다. 시대와 사회의 부정의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마름에 함께 공감하며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자녀들이 은혜의 강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도록 물꼬를 틔워주는 일꾼이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우리의 사랑은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습니까?
3.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 속에서도 신앙적 부요함을 잃지 않음으로써 주님의 칭찬을 들은 교회입니다. 환난과 궁핍 속에서도 부요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환난은 로마제국의 박해와 종교탄압을, 궁핍은 재산몰수와 삶의 제약으로 인한 빈곤함일 것입니다. 당시 시대의 세속적 기준으로 본다면 서머나 교회의 교인들은 무시와 외면 속에 살아가는 비천한 인생에 불과하겠지만, 믿음의 눈으로 본다면 주님의 칭찬을 들으며 생명의 면류관을 차지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부요함에는 세속적인 환난이나 궁핍을 이겨내는 힘이 있습니다. 이런 신앙적 부요함을 누리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궁핍 속에서도 신앙적 부요함을 잃지 않음으로써 주님께 칭찬을 들은 서머나 교회이지만, 그들에게 다가올 미래는 환난의 시간이었습니다. 환난이 없어지면 좋겠지만, 언제나 삶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의 자녀들은 환난을 회피하거나 환난에서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환난 속에서도 충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라는 말은 다가올 환난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과 함께, 아무리 힘든 환난이라도 결국 끝나는 시간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모두 순교하라는 뜻이 아니라, 순교의 정신으로 죽는 날까지 믿음의 순수성과 진실함을 지키면서 환난을 이겨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생명의 면류관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다가오는 고통과 불안과 궁핍함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싸우며 당당히 이겨내야 할 것입니다.
다가올 삶의 시련 앞에 당당하게 서 있습니까?
4.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들은 결국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하지만 참고 견뎌야 할 시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음의 자녀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 참고 기다리며 살아가다가 때로 법정에 고발당하는 일과 매 맞는 일들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삶의 현실은 믿음의 자녀들을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게 만들겠지만, 이 과정을 통해 십자가와 부활과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함께 기도하시면서, 매 순간 지혜와 능력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평안과 희망 속에서 믿음의 여정을 계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약속하는 주님의 말씀은 당신 안에 어떤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까?
성령님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말하는 사람,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기는 사람은 평안과 기쁨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성취해 나갈 것입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깨뜨릴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얻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끝까지 견디면서 구원과 영생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도록 이끄시고 도우십니다.
성령님과 함께 이 믿음의 여정을 계속해 나가시겠습니까?
5.
낮은 곳으로 흐르는 사람, 성령님께 순종하며 끝까지 견디는 사람,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은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성찰) 낮은 곳으로 흐르고 있는가?
(응답)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얻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