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일 / 부활절 일곱째주일
창세기 28:10-22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 층계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 곳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삼아 벤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베델이라고 하였다. 그 성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다.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로마서 8:33-39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서 17:11-19
“나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으나, 그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켜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서는 한 사람도 잃지 않았습니다. 다만, 멸망의 자식만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아버지께로 갑니다. 내가 세상에서 이것을 아뢰는 것은, 내 기쁨이 그들 속에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여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 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에게서 그들을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과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을 위하여 나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 부활의 은총을 누리는 사람들 ]
1.
오늘은 부활절기 마지막주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승천하셨지만, 지상에 남겨진 제자들과 분리되지는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지상의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부활의 은총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이삭의 작은 아들 야곱은 눈 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축복기도를 받았습니다. 맏아들 에서는 동생에게 복수하려고 하였습니다. 쌍둥이 형제의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그녀의 오빠이자 야곱의 외삼촌인 라반의 집으로 급히 피신시킵니다. (창세기 27-28장)
야곱은 외삼촌의 집이 있는 하란으로 가다가,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던 중 꿈을 꾸게 됩니다. 꼭대기가 하늘에 닿은 층계에서 하나님의 천사는 야곱에게 약속의 말씀을 전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광야의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은 모든 믿음의 자녀들을 향한 약속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신다는 말씀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야곱은 말합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이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야곱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어, 한밤중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자다가, 꿈속에서 하나님의 천사를 봅니다. 이것은 삶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의미합니다.
그 광야의 꿈이 하늘과 통하는 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하늘과 통하는 문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호화로운 궁궐에 있어도, 안락한 침대에 누워 있어도, 하늘 문이 닫혀 있다면 그곳은 고통과 절망의 장소입니다.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누워도, 하늘 문이 열린 곳이라면 그곳은 축복의 장소입니다.
야곱은 광야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돌베개를 베고 누워있어도 하늘 문이 열린 곳이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광야와 같은 삶을 살아도, 우리에게 하늘 문이 열려 있다면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자기의 뜻을 다 이루는 삶이라도, 하늘 문이 닫혀 있는 삶이라면 희망이 없습니다.
당신의 삶은 하늘 문과 연결되어 있습니까? 매일매일 하늘 문을 열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않는다고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그 근거는 두 가지로 설명됩니다. 첫째, 하나님이 재판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최종 판결권을 가지신 분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 최종심의 판결을 하급심이 뒤집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변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희생으로 우리 죄의 값을 다 치르신 분이 우리를 위해 직접 변호해 주시므로, 그 누구도 반론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우리들은 결코 유죄판결을 받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33-34절)
그리스도의 은혜는 죄사함의 은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우리를 계속 지켜 주시고 함께 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정에서 정죄받지 않는 구원의 특권을 누리지만, 지상의 삶에는 실제적인 시련과 고난이 있습니다. 믿음의 자녀들은 고난의 현실을 인정하면서, 이 현실을 우리의 힘만으로 극복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겸손히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하시므로 이 고난의 강을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38-39절)
고난의 현실을 인정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한계를 겸손히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4.
요한복음서 17장은 예수님의 고별 기도 혹은 대제사장으로서 드리는 기도로 표현됩니다. 체포와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올리브 산(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 같이 떨어지도록 기도하셨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누가복음서 22:44)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서 17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내용을 더 풍성하게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것, 내 기쁨이 그들 속에 차고 넘치게 해 달라는 것, 악한 자들에게서 그들을 지켜 달라는 것 그리고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달라는 것을 청원합니다.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청원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한 일치를 이루신 것처럼, 지상에 남겨진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과 온전한 일치를 이루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이룬 일치는 지상에 남겨진 제자 공동체의 일치로 이어질 것입니다. 주님과 이룬 일치는 주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게 합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제자들을 거룩하게 하려고 나를 거룩하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거룩하게 한다는 말의 의미는 십자가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거룩한 제물로 십자가에 내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하심과 일치되는 제자들의 삶은 자신의 생명을 거룩한 제물로 내놓으신 희생의 모범을 따르는 삶입니다. 대제사장으로 드리신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의 삶을 거룩한 제물로 기꺼이 내놓으려는 제자들의 희생적 실천을 통해 응답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응답됨으로써, 모든 믿음의 자녀들은 이 땅에서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당신의 삶은 예수님과 거룩한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까? 거룩한 제사장으로 당신을 부르시는 주님께 어떻게 응답하고 있습니까?
5.
부활의 은총을 누리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하늘 문이 열리는 곳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죄사함의 은총과 함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사랑의 능력을 얻습니다. 부활의 은총을 날마다 누리는 사람은 주님과 온전한 일치를 이룸으로써,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성찰) 거룩하게 일치되고 있는가?
(응답) 부활의 은총 안에서 거룩한 제사장의 삶을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