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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11일 부활절 넷째주일

관리자 2025-05-05 (월) 10:24 1년전 810  

2025년 5월 11일 / 부활절 넷째주일 / 어버이주일


이사야서 25:1-9

주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높이며,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고, 예전에 세우신 계획대로 신실하고 진실하게 이루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성읍들을 돌무더기로 만드셨고, 견고한 성읍들을 폐허로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대적들이 지은 도성들을 더 이상 도성이라고 할 수 없게 만드셨으니, 아무도 그것을 재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한 민족이 주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며, 포악한 민족들의 성읍이 주님을 경외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곤경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의 요새이시며, 폭풍우를 피할 피난처이시며, 뙤약볕을 막는 그늘이십니다. 흉악한 자들의 기세는 성벽을 뒤흔드는 폭풍과 같고, 사막의 열기와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방 사람의 함성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구름 그늘이 뙤약볕의 열기를 식히듯이, 포악한 자들의 노랫소리를 그치게 하셨습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이 세상 모든 민족을 여기 시온 산으로 부르셔서, 풍성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기름진 것들과 오래된 포도주, 제일 좋은 살코기와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다. 또 주님께서 이 산에서 모든 백성이 걸친 수의를 찢어서 벗기시고, 모든 민족이 입은 수의를 벗겨서 없애실 것이다.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다. 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말끔히 닦아 주신다. 그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바로 이분이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바로 이분이 주님이시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한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으니 기뻐하며 즐거워하자.


고린도후서 4:7-18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예수로 말미암아 늘 몸을 죽음에 내어 맡깁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의 죽을 육신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죽음은 우리에게서 작용하고, 생명은 여러분에게서 작용합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도 믿으며, 그러므로 말합니다. 주 예수를 살리신 분이 예수와 함께 우리도 살리시고, 여러분과 함께 세워주시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서,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서 5:19-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 따라 할 뿐이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아들도 그대로 한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보여 주시기 때문이다. 또한 이보다 더 큰 일들을 아들에게 보여 주셔서,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죽은 사람들을 일으켜 살리시니,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살린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셨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도 공경하게 하려는 것이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죽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는 사람들은 살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셔서, 그 속에 생명을 가지게 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 그것은 아들이 인자이기 때문이다. 이 말에 놀라지 말아라.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생명을 얻고, 악한 일을 한 사람들은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다.”


[ 부활의 능력과 은혜 ]


1. 

오늘 말씀의 제목은 부활의 능력과 은혜입니다. 부활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온전한 일치를 이루심으로써 그 능력 안에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부활의 능력을 믿는 믿음 안에서 그 은혜를 누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의 능력을 다시 한번 깨닫고, 그 은혜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이사야서 제1부(1-39장)의 주요 내용은 임박한 심판에 대한 경고와 회개에 대한 촉구입니다. 오늘 본문의 전반부(1-5절)는 온 세계의 주인이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증거하면서, 남유다 왕국에 임박한 심판의 성격이 어떠한지 말해줍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의하면, 하나님은 가난하고 곤경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에게 요새(피난처)를 제공해 주시는 분이고, 대적들에 해당하는 강한 민족과 포악한 민족들의 성읍은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심판이 가난하고 곤경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건이라는 의미입니다. 흉악한 자들의 기세가 요란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잠잠하게 만드시고 평화를 내려주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이 완전한 멸망을 향한 것이 아니라 구원과 회복을 위한 것임을 보여 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의 후반부(6-9절)는 잔치와 수의를 대비시키면서,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을 제시합니다. 수의란 죽음과 슬픔과 절망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세력을 이기시고 생명의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를 베풀어주십니다. 잔치가 베풀어지는 시온 산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의미하는 장소입니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잔치는 남 유다 왕국에 대한 심판과 멸망 뒤에 찾아올 회복과 새로운 왕국의 건설이라는 희망을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죽음과 절망의 수의가 걸쳐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의를 벗겨 주시고, 눈물을 닦아 주시고, 기쁨과 희망의 잔치를 베풀어주십니다. 죽음을 영원히 멸하신 하나님의 구원은 십자가를 넘어 부활의 영광을 얻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과 영생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가 벗어버려야 할 수의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승리와 영광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3. 

고린도후서는 바울 사도께서 고린도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글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유대계 복음 전도자들이 고린도교회에 끼치는 잘못된 가르침과 그들의 영향력을 염려하면서, 사도적 직분과 사명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올바른 복음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전반부(7-15절)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의 사도직을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질그릇’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질그릇은 연약하고 초라하고 깨지기 쉬운 그릇입니다. 하지만 그 그릇 안에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 보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입니다. 보물을 담고 있는 질그릇은 보물의 영광과 능력을 함께 누립니다. 


질그릇 자체는 보잘 것 없고, 가치 없는 것입니다. 스스로 보기에 답답하고 절망스럽지만, 보물을 담고 있다는 믿음은 실패와 절망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도록 힘을 줍니다. 이 믿음은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았다는 희망을 끝까지 품을 수 있는 힘을 얻게 합니다. 이 믿음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부어줍니다. 사도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는 질그릇과 같습니다. 보물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의 능력과 은혜를 모든 그리스도인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후반부(16-18절)의 핵심은 겉 사람과 속 사람의 대비입니다. 겉 사람은 낡아지지만,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겉 사람은 고난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속 사람은 크고 영원한 영광을 바라봅니다. 겉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르지만, 속 사람은 ‘보이지 않으나 영원한 것’을 향해 앞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은 겉 사람의 눈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지 않고, 속사람의 눈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힘입니다. 이 힘은 우리를 낙심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삶의 문제들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겉 사람의 눈입니까? 속 사람의 눈입니까?


4. 

예수님의 능력은 하나님과 이루신 일치에서 나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일치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일어나는 본질적인 일치이며 동시에 사역의 일치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하나님께 온전히 의존하고 온전히 복종하는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온전한 의존과 온전한 복종이 일치와 능력의 근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본질과 사역의 일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믿음의 모범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님과 본질적으로 일치를 이루면서, 동시에 그 하는 모든 일들이 주님의 뜻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온전한 일치와 복종이 이루어질 때,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참된 능력과 은혜가 나타날 것입니다.


일치의 은혜는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게 해주는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와 이루는 본질과 사역의 일치는, 먼 훗날 마지막 때에 완성될 것이지만, 현실의 삶 속에서 매 순간 일어나야 할 믿음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지상에서 살면서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미리 누리는 것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극복하는 비밀스러운 지혜입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겨간 사람들은, 지상에서도 이미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죽은 뒤에도 부활하여 생명을 얻게 된다고 주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있습니까? 매일 매 순간 본질과 사역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5. 

하나님은 우리의 수의를 벗겨 주시고, 회복과 승리의 잔치를 베풀어주십니다.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보물을 담아 주셨습니다. 이 보물을 품고 살아갈 때 속 사람은 매일 새로워집니다. 우리는 매 순간 그리스도께 온전히 의존하고 온전히 복종함으로써 본질과 사역의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고, 마침내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찰) 그리스도와 일치된 삶을 살고 있는가?


(응답) 온전한 의존과 복종으로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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