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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9일 주현절 다섯째주일

관리자 2025-02-03 (월) 10:47 1년전 907  

2025년 2월 9일 / 주현절 다섯째주일


예레미야서 23:23-32

“내가 가까운 곳의 하나님이며, 먼 곳의 하나님은 아닌 줄 아느냐? 나 주의 말이다. 사람이 제아무리 은밀한 곳에 숨는다고 하여도, 그는 내 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나 주의 말이다. 내가 하늘과 땅 어디에나 있는 줄을 모르느냐?”

“나의 이름을 팔아 거짓말로 예언하는 예언자들이 있다. ‘내가 꿈에 보았다! 내가 꿈에 계시를 받았다!’ 하고 주장하는 말을 내가 들었다. 이 예언자들이 언제까지 거짓으로 예언을 하겠으며, 언제까지 자기들의 마음 속에서 꾸며낸 환상으로 거짓 예언을 하겠느냐? 그들은, 조상이 바알을 섬기며 내 이름을 잊었듯이, 서로 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내 백성이 내 이름을 잊어 버리도록 계략을 꾸미고 있다. 꿈을 꾼 예언자가 꿈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 말을 받은 예언자는 충실하게 내 말만 전하여라. 알곡과 쭉정이가 서로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나 주의 말이다. 내 말은 맹렬하게 타는 불이다. 바위를 부수는 망치다. 나 주의 말이다. 그러므로 보아라. 내 말을 도둑질이나 하는 이런 예언자들은, 내가 대적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제멋대로 혀를 놀리는 예언자들을, 내가 대적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허황된 꿈들을 예언이라고 떠들어대는 자들은 내가 대적하겠다. 나 주의 말이다. 그들은 거짓말과 허풍으로 내 백성을 그릇된 길로 빠지게 하는 자들이다. 나는 절대로 그들을 보내지도 않았으며, 그들에게 예언을 하라고 명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런 유익도 끼칠 수 없는 자들이다. 나 주의 말이다.”


요한계시록 8:1-5

그 어린 양이 일곱째 봉인을 뗄 때에, 하늘은 약 반 시간 동안 고요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일곱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나팔을 하나씩 받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금향로를 들고 제단에 섰습니다. 그는 모든 성도의 기도에 향을 더해서 보좌 앞 금제단에 드리려고 많은 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향의 연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뒤에 그 천사가 향로를 가져다가, 거기에 제단 불을 가득 채워서 땅에 던지니, 천둥과 요란한 소리와 번개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누가복음서 12:49-56

“나는 세상에다가 불을 지르러 왔다.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바랄 것이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러나 나는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할는지 모른다. 너희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도리어,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 한 집안에서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서, 셋이 둘에게 맞서고, 둘이 셋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맞서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맞서고, 어머니가 딸에게 맞서고, 딸이 어머니에게 맞서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맞서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서, 서로 갈라질 것이다.”

예수께서 무리에게도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소나기가 오겠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그런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왜, 이 때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 ]


1. 

오늘 말씀의 제목은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혼돈과 어둠의 시대에도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은 지혜와 사랑의 빛 안에서 참 평화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과 함께 평화를 누리며 나갈 수 있는 길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 

예레미야는 남유다 왕국 멸망 시기에 수십 년간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언자입니다. 왕국의 멸망을 슬퍼하며 울며 기도한 눈물의 예언자로 지칭됩니다. (예레미야 애가) 오늘 본문은 남유다 왕국의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심판의 말씀 중 일부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진 말씀에서 하나님은 ‘가까운 곳의 하나님’이 아니라 ‘먼 곳의 하나님’입니다. 가까운 곳의 하나님이란, 자칭 예언자들이 자신의 마음대로 하나님을 부릴 수 있다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이 담긴 말입니다. 이에 반해 먼 곳의 하나님이란 절대성과 초월성을 지닌 하나님, 멀리 계셔도 우리의 은밀한 행실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곁에 가까이 와 계시면서 동시에, 멀리 떨어져서 우리의 삶과 역사를 전체적으로 바라보시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겸손한 믿음으로 그 분께 순종함으로써, 하늘의 뜻을 이루고 우리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 예언자들이 꿈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여기에서 꿈은 거짓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자기 마음대로 왜곡하는 수단을 의미합니다. 꿈은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꿈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꿈 자체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내용과 결과를 통해 증명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기준이 되는 것은 성경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자녀들에게 중요한 것은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의 나무가 아니라 숲을 통해 전체를 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까이 계시지만 동시에 멀리 떨어져서 우리를 꿰뚫어 보고 계십니다. 허황된 꿈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시키는 거짓 예언자들을 분별하고,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기를 기대하십니다. 분별과 순종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3. 

요한계시록은 박해의 시대에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며,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는 말씀이 기록된 책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도 요한에게 전해졌습니다. 계시는 완전하고 영원하지만, 계시를 표현하는 인간의 언어는 제한적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은밀하게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묵시문학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가 매우 조심스럽게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어린 양과 일곱 봉인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어린 양이란 마지막 심판의 비밀이 기록된 두루마리 책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 두루마리에는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만 개봉할 수 있는 일곱 봉인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섯 봉인이 차례로 열리고 마지막 일곱 봉인이 열리는 상황에 대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린 양이 받은 두루마리의 마지막 봉인을 뗄 때 고요함이 찾아왔습니다. 이 고요함 속에 나팔을 든 일곱 천사가 등장합니다. 나팔 소리에 앞선 고요함은 돌이킬 수 없는 심판의 심각성과 절대성을 나타냅니다. 나팔 소리가 울리기 직전의 고요함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의 시간입니다. 


그런데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직전에 또 다른 천사가 금향로를 들고 나타납니다. 이 금향로에는 성도들의 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이 환상은 성도들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바쳐지며, 다시 땅으로 내려와 지상의 사람과 자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믿음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 되어 사람과 자연에 영향을 끼칩니다. 


혼돈과 어둠의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절대성을 믿으며 고요함 속에서 그분의 음성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동시에 모든 기도의 향기가 반드시 하나님께 올라간다는 믿음으로, 변함없이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요히 기다리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우리의 믿음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요?


4. 

예수님은 이 세상에 평화의 사도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이 세상의 평화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불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정결하게 하고 새롭게 하는 수단으로서 ‘힘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세례란 그리스도가 받게 될 고난과 죽음이라는 자기 희생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불과 세례를 통과한 자들이 누리게 될 선물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정결케 하는 불의 과정과 자기 희생이라는 세례의 과정을 통과함으로써, 진정한 제자가 됩니다. 이 과정을 회피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뒤를 따를 수 없으며, 참 평화를 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참 평화를 향해 나가려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분열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평화와 분열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평화로 맺어진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세상과 맺어진 평화를 깨트리는 것, 세상이 주는 평화로부터 분열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불을 주시는 예수님, 분열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통해 온전한 평화와 화해와 치유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안락함과 쾌락과 자기 만족에서 벗어나라고 요구하십니다. 정결함과 새로움 그리고 자기 희생의 과정을 거쳐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라고 요청하십니다. 참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주님의 초청에, 우리는 어떤 결단과 각오로 응답해야 할까요?


5.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은, 가까운 곳에 계시며 동시에 먼 곳에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겸손히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고요히 기다리며 지속적으로 기도합니다. 거짓 평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결케 하는 불과 자기 희생의 세례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와 참 평화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성찰) 고요히 기다리며 지속적으로 기도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은?


(응답) 주님과 함께 참 평화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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