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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9일 주현절 둘째주일

관리자 2025-01-12 (일) 22:04 1년전 902  

2025년 1월 19일 / 주현절 둘째주일


이사야서 11:10-13

그 날이 오면,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깃발로 세워질 것이며, 민족들이 그를 찾아 모여들어서, 그가 있는 곳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 날이 오면, 주님께서 다시 손을 펴시어서, 그의 남은 백성들, 곧 앗시리아와 하 이집트와 상 이집트와 에티오피아와 엘람과 바빌로니아와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남은 사람들을, 자기의 소유로 삼으실 것이다. 주님께서 뭇 나라가 볼 수 있도록 깃발을 세우시고, 쫓겨난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깃발을 보고 찾아오게 하시며, 흩어진 유다 사람들이 이 땅의 사방에서 그 깃발을 찾아오도록 하실 것이다. 그 때에는 에브라임의 증오가 사라지고, 유다의 적개심이 없어질 것이니, 에브라임이 유다를 증오하지 않고, 유다도 에브라임에게 적개심을 품지 않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3:1-9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영에 속한 사람에게 하듯이 말할 수 없고, 육에 속한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 같은 사람에게 말하듯이 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젖을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는 여러분이 단단한 음식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러분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있으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 편이다” 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아볼로 편이다” 한다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렇다면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 아볼로와 나는 여러분을 믿게 한 일꾼들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 주신 대로 일하였을 뿐입니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심는 사람과 물 주는 사람은 하나이며, 그들은 각각 수고한 만큼 자기의 삯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물입니다.


마가복음서 9:38-41, 50

요한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쉬이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해서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너희는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쳐 두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



[ 함께 누리는 하나님의 구원 ]


1. 

오늘 말씀의 제목은 함께 누리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모든 사람이 함께 누리게 될 복입니다. 이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새롭게 깨닫고 그 구원의 복을 모든 사람과 함께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이사야 예언서 제1부(1장~39장)는 남 유다 왕국 멸망 이전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10장에는 북 이스라엘 왕국을 무너뜨린 앗시리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어서 11장 1절부터 메시아가 이루게 될 평화의 나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는 장면(11:6-8)은 북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기원전 721년경)으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지파들의 회복을 전망하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크게 보아 남 유다 왕국의 멸망(기원전 587년경) 이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될 유대인들의 회복과 예루살렘 재건까지 염두에 둔 말씀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그날’이라는 표현은 이새의 뿌리(다윗 왕조)를 중심으로 하는 메시아 왕국이 세워지는 날이고, 해방과 귀환과 회복 그리고 재건이 이루어지는 날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족적 열망이 성취되는 날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두 가지 점을 강조합니다. 첫째 강대국의 침략 때문에 전 세계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아가 이끌어 가는 평화의 왕국으로 다시 모이게 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연약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모아들이고, 메시아의 왕국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둘째 이렇게 다시 모이게 된 메시아 왕국에서는 증오와 반목이 사라지고 온전히 하나가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에브라임 (북이스라엘)과 유다 (남유다)는 원래 한 민족이었지만, 솔로몬왕이 죽은 뒤에 분열되어 대립하다가 결국 각각 멸망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심판과 멸망 이후에 세워지는 메시아의 왕국은, 갈라져서 반목하던 에브라임과 유다가 서로를 향한 증오와 적개심을 거두고, 이스라엘의 자손으로서 하나의 왕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북이스라엘 멸망에 이어서, 남유다 왕국에 다가온 하나님의 심판은, 절망적 파괴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메시아 왕국을 향한 시작점이 된다는 것이 예언의 핵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믿음의 자녀들을 다시 한 번 불러 모으십니다. 흐트러진 신앙생활과 일상을 돌아보고 제자리를 찾아가도록 이끄십니다. 또한 반목과 갈등을 넘어서 온전한 화해를 이루는 공동체로 변화되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개인의 삶이, 가정생활이, 교회 공동체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평화의 왕이 이끄는 메시아의 왕국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가 개인의 삶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이 세상에서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이루어가야 할까요?


3. 

고린도교회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메시아가 이끄는 평화의 왕국을 이루지 못하고, 서로 반목하고 분열하여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런 상황이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육에 속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시기와 싸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육에 속한 사람이 되지 말고 영에 속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이란 성숙한 신앙인을 말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지만, 영에 속한 사람 즉 성숙한 신앙인은 단단한 음식을 먹고 소화할 수 있는 어른과 같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은 신앙 공동체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문제들을 지혜와 사랑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특별히 자신과 아볼로가 하나님의 동역자임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하나님의 동역자가 됩니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을 추종하는 사람들과 아볼로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두 사람이 각각 다른 과업을 맡았을 뿐, 그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바울과 아볼로가 하나님의 동역자이면서 서로에게 동역자가 되듯이, 고린도교회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서로서로 동역자가 됨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다고 말합니다. 


메시아가 이끄는 평화의 왕국은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서로 존중하며 협력하는 공동체입니다. 신앙 공동체의 평화를 깨트리고 분열을 일으키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신앙 공동체를 평화의 왕국으로 세워나가기 위해 더욱 힘써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4. 

오늘의 복음서 본문 직전에는, 제자들이‘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라며 서로 다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9:33-37)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공동체 내부에서 일어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제자 공동체 외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으로 가르치시는 하나님 나라의 현실을 보여 주는 일입니다. 제자 공동체 밖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제자(요한)들은 반대했지만, 그들과 달리 예수님은 그들의 활동이 가치가 있는 일이며 예수님을 지지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지는 소금에 관한 이야기는 산상수훈의 말씀(마태복음서 5:13)과 함께 제자의 직분을 이해하기 위해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제자들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이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는 것처럼 제자들은 세상 속에서 사랑의 맛을 내고 희생과 섬김의 모범을 보이며 살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제자들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낮추며 겸손히 섬길 뿐만 아니라, 공동체 외부를 향해서도 열린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닫혀 있거나 서로 경쟁하는 곳은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메시아가 이끄는 평화의 왕국은 서로 존중하며 화목함을 이루는 곳입니다. 


우리의 신앙공동체가 외부를 향해 열려 있는 공동체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신앙공동체 내부적으로 화목할 뿐만 아니라 신앙공동체 바깥에 있는 세상과도 화목한 평화의 왕국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이러한 신앙공동체가 되라는 주님의 요청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5. 

하나님의 구원은 메시아가 이끄는 평화의 왕국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평화의 왕국은 이스라엘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온 인류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평화의 왕국은 서로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일에 협력하는 사람들을 통해 세워집니다. 소금처럼 자신을 녹여 맛을 내고 부패를 막아 하나님의 구원을 이룹니다. 


(성찰) 소금처럼 자신을 녹여내고 있는가?     


(응답) 하나님의 구원을 함께 누리며 살겠습니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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