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3일 / 사순절 셋째주일
전도서 9:11-18
나는 세상에서 또 다른 것을 보았다. 빠르다고 해서 달리기에서 이기는 것은 아니며, 용사라고 해서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아니더라. 지혜가 있다고 해서 먹을 것이 생기는 것도 아니며, 총명하다고 해서 재물을 모으는 것도 아니며, 배웠다고 해서 늘 잘되는 것도 아니더라. 불행한 때와 재난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사람은, 그런 때가 언제 자기에게 닥칠지 알지 못한다. 물고기가 잔인한 그물에 걸리고, 새가 덫에 걸리는 것처럼, 사람들도 갑자기 덮치는 악한 때를 피하지 못한다. 나는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겪는 일을 보고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주민이 많지 아니한 작은 성읍이 있었는데, 한 번은 힘센 왕이 그 성읍을 공격하였다. 그는 성읍을 에워싸고, 성벽을 무너뜨릴 준비를 하였다. 그 때에 그 성 안에는 한 남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가난하기는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이므로, 그의 지혜로 그 성을 구하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가난한 사람을 오래 기억하지 않았다. 나는 늘 “지혜가 무기보다 낫다” 고 말해 왔지만, 가난한 사람의 지혜가 멸시받는 것을 보았다. 아무도 가난한 사람의 말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리석은 통치자의 고함치는 명령보다는, 차라리 지혜로운 사람의 조용한 말을 듣는 것이 더 낫다. 지혜가 전쟁무기보다 더 낫지만, 죄인 하나가 많은 선한 것을 망칠 수 있다.
고린도후서 11:22-30
그들이 히브리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그 밖의 것은 제쳐 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넘어지면, 나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마태복음서 23:1-12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르지 말아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하는 모든 일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문 곽을 크게 만들어서 차고 다니고, 옷술을 길게 늘어뜨린다. 그리고 잔치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며, 장터에서 인사 받기와, 사람들에게 랍비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선생은 한 분뿐이요, 너희는 모두 형제자매들이다. 또 너희는 땅에서 아무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분,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서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 참된 지혜를 따르는 사람 ]
1.
믿음의 자녀들은 세상의 지혜를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참된 지혜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 지혜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복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
전도서 본문은 내용상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앞부분(11-12절)은 지혜가 있다고 해서 늘 성공하거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혜는 능력이나 기술의 개념에 가깝습니다. 빨리 달리는 것, 용사, 지혜와 총명 등은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이나 능력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갑자기 덮치는 재난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삶에는 자기의 기술이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재난이 있기 마련입니다. 또한 그 재난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언제 다가올지 모를 재난에 대비하며, 이미 닥친 재난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뒷부분(13-18절)은 ‘가난한 지혜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안에는 두 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작은 성읍에 위기가 닥쳤을 때 가난한 지혜자가 그의 지혜로 성을 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난하지만 지혜롭다’라는 말은 세속적 지혜에는 맞지 않는 표현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가난이란 어리석음과 연결되고, 지혜는 부유함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성읍에도 세속적 지혜를 가지고 부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지혜는 위기 앞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가난한 지혜자의 이야기는 세속적 부유함이나 성공이 참된 지혜의 보증이 되지 못함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가난한 지혜자의 이야기가 담고 있는 또 하나의 내용은 그 성읍의 사람들이 가난한 지혜자를 금방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 성읍의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의 말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세속적 지혜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가난한 지혜자의 지혜를 보지 못하고, 가난한 지혜자의 가난만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어서 성경은 말합니다. “어리석은 통치자의 고함치는 명령보다 지혜로운 사람의 조용한 말을 듣는 것이 더 낫다.” 참된 지혜는 권력자의 고함치는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의 조용한 말을 듣는 것입니다.
참된 지혜자의 조용한 말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요?
3.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 사도의 적대자들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뒷부분(10장-13장)에는 그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자기 변호와 논쟁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 적대자들이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들이요,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고린도후서 11:13)이라고 말합니다. 고린도교회를 어지럽히는 거짓 사도들의 주된 자랑은 그들이 성경을 잘 알고(히브리인), 선택받았으며(이스라엘 사람), 언약의 백성(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그 적대자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드러내기 위해, 어리석은 짓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자기 자랑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도 히브리인이요 이스라엘 사람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출신성분에 관한 자랑이 그들의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못함을 지적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도 똑같이 자랑할 수 있지만, 오히려 복음을 위해 고생한 이야기를 자랑하겠다고 말합니다. 바울 사도의 고생 목록은 수고, 감금, 매맞음, 죽을 고비 등 육체적 고생(23-25절)과 여행에서의 위험(26-28절)과 교회에 대한 염려(28-29절) 등입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이런 수고와 고생이 자기의 능력과 위대함을 드러내는 자랑거리가 아님을 강조합니다. 바울 사도는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통해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려고 합니다.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30절)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능력과 위대함을 드러내는 것이 참된 지혜이며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본분입니다.
사순절은 우리의 고생 목록을 돌아보고, 우리의 약점들을 살펴보는 절기입니다. 당신의 약점들은 무엇이며, 그 약점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습니까?
4.
예수님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의 어리석음은 세 가지 내용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사람들에게 드러나 보이는 것에 치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했습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 교만에 빠져서 사람들에게 의로움을 과시하려는 것 그리고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당연히 여기려는 경향 등은 어리석음의 특징입니다.
예수님은 ‘랍비나 지도자라는 호칭을 듣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자녀들은 서로에게 친구가 되고 형제자매가 되기 때문입니다. 또 ‘땅에서는 아무도 너희의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자녀들은 세속적 지혜의 권위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자녀들에게 참 지도자요 스승이시며 구원자요 어버이 되시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참된 지혜를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며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높여줍니다.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길은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낮아지는 길입니다.
당신은 낮아지고 있습니까?
5.
참된 지혜를 따르는 사람은 어리석은 통치자의 고함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의 조용한 말을 듣습니다. 출신성분과 기술과 능력을 자랑하지 않고, 자신의 약점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참된 지혜의 길은 이 세상에서 낮아지고 낮아져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품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고난과 십자가를 지나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찰) 믿음 안에서 어리석음과 지혜로움을 분별하고 있는가?
(응답) 겸손과 낮아짐으로 참된 지혜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