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새로이 솟대도 만들고, 횃대도 만들고
현재 우리 교단의 현실은 누구나 피부로 느끼는 바대로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무엇부터 바로잡아 가야 할지도 모르는 총체적 난국에 처해있다.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적 삶, 세속주의, 부패, 학문 역량의 약화 등 헤아릴 길이 없다. 그럼에도 이 모든 원인들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리가-교역자도 신도들도-너무 세속주의에 물들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목회자로서 영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과 관계된 것들은 남아 있지 않고, 온통 세속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외치는 정의의 예언은 구호로, 봉사는 복음의 증언이 아닌 시민차원의 운동으로 떨어져서 그 생명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교단은 정체되고, 우리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공허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교역의 현장은 피폐되고, 목회는 교회경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우리의 얽히고설켜서 바라만 보고 있는 오늘의 모든 문제의 해결은 우리가 모든 교회의 삶의 토대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영성에 있다. 이 영성회복을 통한 세속주의의 극복만이 모든 문제를 바로잡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교회가 그 생명을 잃고 부패할 때, 그리고 그 신앙의 본류에서 벗어나서 병이 들 때, 참 교회는 늘 사막과 같은 곳으로 가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노동을 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사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이 수도원 운동이고, 이 삶이 수도생활이다.
수도원과 세상 안에 있는 교회의 관계를 말하자면 솟대와 횃대의 관계와 비슷하다. 솟대는 너무 높아서 아무나 쉽게 오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수도원과 성격이 비슷하다. 반면에 횃대는 약간 높아서 누구든지 조금만 애쓰면 오를 수 있다. 또한 한 번에 여럿이 오를 수 있다.
문제는 교회가 횃대 높이에 있지 않고 세속과 똑같이 바닥에 있을 때, 이런 교회는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님의 거룩으로 이끄는 힘을 잃고 만다. 그러므로 세상 안에 있는 교회의 깊은 곳에는 항상 솟대 기능을 하는 수도원이 있어서, 언제나 교회를 횃대 높이로 유지하여, 진리와 구원의 힘을 간직해야한다.
이런 이유로 이천년 동안 그리스도교는 수도원을 통하여 하나님 신앙과 교회의 본질을 보존해 왔다. 무엇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프로테스탄트 차원에서, 특별히 장로교 전통에서 수도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떼제 공동체, 끄라베라 공동체, 그량샹 공동체, 요나 공동체등이 프랑스, 스위스, 스코틀랜드 등지에서 개혁 전통을 배경으로 생겨나서, 이천년 그리스도교 영성의 진수와 신앙을 보존하고 개혁하면서 세계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 교단만이 아니다. 한국의 프로테스탄트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모든 수단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변질된 신앙의 문제가 있다. 열광주의, 근본주의 그리고 맘몬 추구와 같은 세속주의 때문에 이 천년 그리스도교 영성 안에 있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앙을 상실한 것이다. 이 때문에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은 영적인 공허감을 느끼고 있으며, 교회는 세속주의로 떨어졌으며, 이것이 교회가 쇠퇴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일찍이 안병무는 이 같은 종교의 문제를 깊이를 이해하고, 한국교회 안에 여자수도회인 ‘디아코니아자매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이미 한국 교회의 초창기에 ‘동광원’과 같은 수도생활 모임이 결성되어, 그리스도교의 기도와 노동과 말씀의 영성을 보존했다. 이제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솟대와 같은 수도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삶을 회복할 단계이다. 이로써 현실의 교회를 횃대 높이로 끌어올려서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하는 힘과 방법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세계와 역사 안에서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하나님의 빛이 될 수 있다.
요한 칼빈은 제단을 따로 쌓고 세상과 단절된 수도원은 거부했지만, 수도원의 이상과 삶을 높이 평가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삶을 통해서 수도생활을 하기 원했다.“세상 안에서의 수도생활”이 칼빈의 이상이었고, 이런 이상을 제네바에서 ‘신정정치’로 구현하려고 했다. 이런 칼빈의 꿈이 ‘교회의 훈련’이라는 장로교 목회전통으로 남아있다.
이제 우리 교단에서부터 솟대와 횃대 작업을 해가야 한다. 먼저 솟대 작업으로는 우리 교단 안에 수도원을 마련해야 한다. 기장 수도원을 두어서 순수한 그리스도교 영성을 보전하는 한 편, 이 수도자들을 통해 교단의 기도수련들을 지도하게 한다. 그리하여 일반 교회들이 횃대의 영성을 유지하도록 훈련하는 역할을 한다. 횃대 영성을 위해서는 1)프로테스탄트가 잃어버린 2000년 동안의 수도생활의 방법들(기도들)을 되찾아 보급한다. 2)오늘날 전 세계교회가 수렴한 신앙생활과 훈련의 구조인 매일기도와 주일예배의 구조를 더 현장화 하여 실천한다. 3) 목회자, 신학생, 일반 신도들이 정기적으로 침묵수련을 하면서 자신을 정화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수련을 제도화 한다. 4)이 일의 추진을 위해 기존에 있는 기구인 ‘총회 영성 수련원’을 통해 그 업무를 관장하며, ‘기장 수도회’로 확대 개편하고, 시설을 갖추어 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