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Home회원가입로그인
수련원안내 기도동산 신학마당 신앙과 예술 성서와 말씀 수련숲 알림란
 
 


[일상 속의 영성수련] ‘기적수업’으로 하는 일상 속의 영성수련' (3)_김옥성목사

관리자 2025-02-22 (토) 20:29 1년전 835  

이번회기부터 기적수업으로 하는 일상속의 영성수련 워크북 복습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시간이 된다면 전회기에 소개한 것처럼 하루에 한과씩을 가지고 차분하게 안내하는대로 명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서언


W 50 R1 1. 오늘부터 일련의 복습 시간을 가질 것이다. 앞에서 이미 다뤘던 아이디어들을 5개씩 묶어서, 1번부터 시작하여 50번까지 순서대로 복습할 것이다. 각 아이디어 다음에 짧은 코멘트들이 이어질 텐데, 복습할 때 그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연습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W 50 R1 2. 포함된 코멘트를 포함하여 5개의 아이디어들을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라. 그런 다음, 그 아이디어들을 특정한 순서에 따라 고려할 필요는 없지만, 각 아이디어를 최소한 한 번은 연습해야 한다. 각 연습에 2분 또는 그 이상을 사용하고, 그 아이디어와 관련된 코멘트에 대해 생각하라. 하루 동안 가능한 한 자주 이렇게 하라. 5개의 아이디어들 중에서 어느 하나가 특별히 마음에 와 닿는다면, 그것에 집중하라. 그러나 하루를 마감할 때, 반드시 모든 아이디어들을 한 번 더 복습하도록 하라.


W 50 R1 3. 연습 시간에 각각의 아이디어 뒤에 나오는 코멘트들을 문자 그대로 혹은 철저하게 다룰 필요는 없다. 차라리 다만 중심 포인트를 강조하고, 그것과 관련된 아이디어를 점검하면서 그것에 대해 생각하라. 복습은 눈을 감고 해야 한다. 혼자 있을 때에는, 가능하다면, 조용한 곳에서 하라.


W 50 R1 4. 그대의 학습 단계에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 복습을 위해 특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배운 것을 적용하는데 특별한 환경이 필요한 것은 아님을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미 평온하고 조용한 상황보다는 오히려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그대가 배운 것이 더욱 필요할 것이다. 그대로 하여금 스스로에게 고요함을 가져오고, 고민과 혼란을 치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학습의 목적이다. 이것은 고민과 혼란을 피하여 그대만의 고립된 피난처를 구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W 50 R1 5. 평화는 그대의 일부이며, 오로지 그대가 처한 어떤 상황도 그대로 받아들일 것만을 요구함을 아직은 배워야 할 것이다. 마침내 그대가 있는 곳은 한계가 없으며, 따라서 그대의 평화도 그대처럼 모든 곳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W 50 R1 6. 복습의 목적을 위해서 아이디어들이 항상 원래의 형식대로 주어지지는 않음을 그대는 주목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주어진 대로 아이디어들을 사용하라. 원래의 말로 돌아갈 필요도 없고, 그때 제시된 방식으로 그 아이디어들을 적용할 필요도 없다. 이제 우리는 앞에서 다룬 첫 50개의 아이디어들 사이의 관계들, 그리고 그대를 이끌고 갈 사고체계의 일관성을 강조할 것이다.



다음 아이디어들을 다룬다(1-5)


W 51 L 1. 1) “나에게 보이는 어떤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이유는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며,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이것을 인지해야 한다. 지금 내가 본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전vision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그것을 보내버려야 한다. 그래야 비전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W 51 L 2. 2) “내게 보이는 것이 내게 갖는 모든 의미는 내가 부여하였다.” 나는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을 판단하였다. 내가 보는 것은 이것 오로지 이것뿐이다. 이것은 비전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실재의 환상일 뿐이니, 나의 판단은 실재로부터 아주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 판단은 타당성이 없음을 인지할 용의가 있으니, 나는 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 판단은 나에게 해를 입혔으므로, 나는 그 판단에 따라 보고자 원치 않는다.


W 51 L 3. 3) “나는 내게 보이는 어떤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보이는 것을 잘못 판단하거늘 어찌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내가 보는 것은 내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투사한 것이다. 나는 보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니, 그것은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해하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보내버려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으니, 그럼으로써 보이고 이해되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렇게 할 용의를 냄으로써, 나는 지금 내가 보는 것을 이것과 바꿀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전에 한 선택보다 더 나은 선택이 아니겠는가?


W 51 L 4. 4) “이 생각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의식하고 있는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나는 신 없이 생각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의 진정한 생각이 아니다. 나의 진정한 생각은 내가 신과 함께 하는 생각이다. 나는 나의 진정한 생각을 의식하지 못하니, “내” 생각이 그 자리를 차지도록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인지하고, 그것을 보내버릴 용의가 있다. 나는 내 생각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밀어낸 바로 그것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선택한다. “내” 생각은 의미가 없지만, 내가 신과 함께 하는 참생각 안에 모든 창조가 들어있다.


W 51 L 5. 5) “나는 절대로 내가 생각하는 이유로 속상한 것이 아니다.” 나는 절대로 내가 생각하는 이유로 속이 뒤집히는 것이 아니니, 끊임없이 “내” 생각을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끊임없이 내 생각을 진리로 만들려 한다. 나는 모든 것을 나의 “적”으로 만들었으며, 따라서 나의 분노는 정당하고 내 공격은 타당하였다. 나는 내게 보이는 모든 것에 이러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그 모든 것을 얼마나 오용했는지 깨닫지 못하였다. 나에게 상처를 주었고 내가 더 이상 원치 않는 사고체계를 방어하기 위해 이렇게 해 왔다. 나는 그것을 보내버릴 용의가 있다.




Lesson 52 오늘의 복습은 다음 아이디어들을 다룬다(6-10)


W 52 L 1. 6)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기 때문에 속이 뒤집힌다.” 실재는 결코 무섭지 않다. 실재는 내 속을 뒤집을 수 없다. 실재는 오로지 완전한 평화만을 가져온다. 내 속이 뒤집히는 것은 언제나 내가 지어낸 환상으로 실재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환상이 속을 뒤집는 까닭은 내가 환상에게 실재성을 부여함으로써 실재를 환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혼동한다고 해도 신의 창조는 전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무無때문에 속이 뒤집힌다.


W 52 L 2. 7) “나는 오로지 과거만을 본다.” 나는 세상을 돌아보면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단죄한다. 나는 이것을 봄seeing이라고 부른다. 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거슬러 과거를 보며, 그들을 “적”으로 만든다. 마침내 내가 내 자신을 용서하고 내가 누구인가를 기억하게 될 때, 나는 내게 보이는 모든 이와 모든 것을 축복할 것이다. 과거는 없을 것이며, 따라서 “적”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든 것을 신과 함께 바라볼 것이다.


W 52 L 3. 8) “내 마음은 과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오로지 내 자신의 생각만 보며, 내 마음은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 그렇다면 내가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현재가 내 마음에 다가오지 못하도록 과거를 바라보고 있음을 기억하도록 하자. 나는 신을 거슬러 시간을 사용하고 있음을 이해하도록 하자. 과거를 보내버리는 법을 배우고, 그럼으로써 내가 포기하는 것은 무無임을 깨닫도록 하자.


W 52 L 4. 9) “나는 아무것도 지금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내가 아무것도 지금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오로지 지금 있는 것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를 볼 것인가 현재를 볼 것인가의 선택이 아니라, 다만 볼 것인가 아닌가의 선택일 뿐이다. 내가 보기로 선택한 것은 나로 하여금 비전을 잃게 하였다. 이제는 볼 수 있도록, 다시 선택하리라.


W 52 L 5. 10) “내 생각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에게 사적私的인 생각이란 없다. 그러나 내가 의식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사적인 생각뿐이다. 이 생각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러한 생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은 창조의 일부이며 창조주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나의 초라하고 의미 없는 “사적” 생각들로 진정으로 나의 것인 모든 것을 가리기보다는 차라리 우주의 생각과 하나가 되는 것이 낫지 않을까?




Lesson 53 오늘의 복습은 다음 아이디어들을 다룬다(11-15)


W 53 L 1. 11) “나의 의미 없는 생각이 내게 의미 없는 세상을 보여준다.” 내가 의식하는 생각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 생각을 그려내는 세상도 의미가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신이상이며, 따라서 세상이 만들어내는 것도 정신이상이다. 실재는 정신이상이 아니며, 나는 정신이상인 생각과 함께 실재 생각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보는 것에 대한 나의 가이드로서 나의 실재 생각을 바라본다면, 나는 실재 세상을 볼 수 있다.


W 53 L 2. 12) “나는 의미 없는 세상을 보기 때문에 속이 뒤집힌다.” 정신이상인 생각은 속을 뒤집어 놓는다. 그것은 어디에서도 질서를 찾을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오로지 혼돈만이 혼란스러운 생각을 나타내는 세상을 지배하며, 혼돈에 법이란 없다. 나는 이러한 세상에서는 평화로이 살 수 없다. 나는 이 세상이 실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한, 이 세상을 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전적으로 정신이상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기로 선택하지 않는다.


W 53 L 3. 13) “의미 없는 세상이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전적으로 정신이상인 것은 두려움을 만들어내니, 완전히 믿을 수 없으며 신뢰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친 것은 전혀 믿을 수 없다. 그것은 아무런 안전이나 희망을 내어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나는 이 세상에 실재라는 환상을 주었으며, 이 세상을 믿음으로써 고통을 받아왔다. 이제 나는 그 믿음을 철회하고 실재에 믿음을 두기로 선택한다. 이 선택을 통하여, 나는 두려움의 세상의 모든 결과로부터 벗어날 것이니, 그 세상은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W 53 L 4. 14) “신께서는 의미 없는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셨다.” 신께서 의미 없는 세상을 창조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그것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신께서 모든 의미의 참근원이시며, 실재인 것은 모두 신의 참마음 안에 있다. 실재는 내 마음 안에도 있으니, 신께서 나와 함께 그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창조의 완전함이 내 집이거늘, 어찌하여 내가 내 자신의 정신이상 생각 때문에 계속해서 고통을 받아야 하겠는가? 내 결정의 힘을 기억하고, 내가 진정으로 거하는 곳을 인지하도록 하자.


W 53 L 5. 15) “내 생각은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이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은 내 생각을 반영한다. 내가 어디에 있고 내가 무엇인지 나에게 말해주는 것도 내 생각이다. 내가 고통과 상실과 죽음으로 점철된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나는 오로지 나의 정신이상 생각이 나타내는 것만을 볼 뿐이며, 내가 보는 것 위로 나의 실재 생각이 그 자비로운 빛을 비추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신의 길은 확실하다. 내가 지어낸 이미지들은 신을 이길 수 없으니, 그것은 나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뜻은 신의 참뜻이며, 나는 성부聖父 앞에 다른 신들gods을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Lesson 54 오늘의 복습은 다음 아이디어들을 다룬다(16-20) 


W 54 L 1. 16) “나에게 중립적인 생각이란 없다.” 중립적인 생각은 불가능하니, 모든 생각은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거짓 세상을 지어내거나 나를 실재 세상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나 생각에 결과가 없을 수 없다. 나의 잘못된 생각으로부터 내가 보는 세상이 일어나듯이, 내가 내 잘못을 바로잡을 때 내 눈앞에 실재 세상이 드러날 것이다. 내 생각은 진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닐 수 없다.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내가 보는 것은 그 중 하나를 보여준다.


W 54 L 2. 17) “나는 어떤 중립적인 것도 보지 못한다.” 내가 보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을 증거 한다. 내가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으리니, 삶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세상을 바라보자. 내 마음 상태는 변할 수 있음을 나는 안다. 그러므로 내가 보는 세상 또한 변할 수 있음을 나는 안다.


W 54 L 3. 18) “내가 보는 것의 결과를 경험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사적私的인 생각이 없으면, 사적인 세상을 볼 수 없다. 분리라는 미친 아이디어조차도 내가 보는 세상의 기초가 될 수 있기 전에 먼저 공유되어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 나눔은 무無의 나눔이었다. 나는 또한 나의 실재 생각을 불러올 수도 있는데, 그 생각은 모든 이와 모든 것을 나눈다. 나의 분리 사고가 다른 이들의 분리 사고를 부르듯이, 나의 실재 생각은 그들 안의 실재 생각을 일깨운다. 그리고 내 실재 생각이 내게 보여주는 세상은 나뿐 아니라 그들의 눈앞에도 드러날 것이다.


W 54 L 4. 19) “내 생각의 결과를 경험하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나는 어느 것에서도 혼자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온 우주를 움직인다. 신의 아들은 헛되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없다. 그는 어느 것에서도 혼자일 수 없다. 따라서 내 마음과 함께 모든 마음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으니, 나의 힘이 신의 힘이기 때문이다.


W 54 L 5. 20) “나는 볼 각오가 되어 있다.” 내 생각은 공유된다는 특성을 인지하기에, 나는 볼 각오가 되어 있다. 세상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내게 보여주는 증거를 바라볼 것이다. 나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 두려움을 사랑으로, 눈물을 웃음으로, 상실을 풍요로 대체할 수 있었다는 증거를 바라볼 것이다. 나는 실재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으로 하여금 나의 뜻과 신의 참뜻이 하나임을 내게 가르치도록 할 것이다.




Lesson 55 오늘의 복습은 다음 아이디어들을 다룬다(21-25)


W 55 L 1. 21) “나는 사물을 다르게 보기로 결심한다.” 지금 내가 보는 것은 단지 병과 재난과 죽음의 표시뿐이다. 이는 신께서 성부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위해 창조하신 것일 수 없다. 내가 이러한 것들을 본다는 바로 그 사실이 내가 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나는 신의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보는 것은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름을 말해 준다. 나는 내 자신에 대한 환상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내 안에 있는 진리를 증거하는 것을 볼 각오가 되어 있다.


W 55 L 2. 22) “내가 보는 것은 복수의 한 형식이다.” 내가 보는 세상은 사랑하는 생각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것이 모든 것을 공격하는 그림이다. 그것은 결코 신의 참사랑과 신의 아들의 사랑을 반영하지 않는다. 이 그림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의 공격 사고이다. 나의 사랑하는 생각은 세상에 대한 이 지각으로부터 나를 구원하고, 신께서 내가 갖도록 의도하신 평화를 내게 줄 것이다.


W 55 L 3. 23) “나는 공격 사고를 포기함으로써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바로 이 안에 나의 구원이 들어있다. 다른 어떤 곳에도 없다. 공격 사고가 없다면 공격 세상을 볼 수 없으리라. 용서를 통하여 사랑이 내 의식으로 돌아올 때, 나는 평화와 안전과 기쁨의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내가 보는 것 대신에 내가 보기로 선택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W 55 L 4. 24) “나는 내 자신의 최선의 이익을 지각하지 못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거늘 어떻게 내 자신의 최선의 이익을 인지할 수 있겠는가? 내가 나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나를 환상의 세상에 더 가까이 묶어둘 뿐이다. 나 스스로는 내 자신의 최선의 이익을 지각할 수 없음을 인지하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신께서 내게 주신 참안내자를 따를 용의가 있다.


W 55 L 5. 25) “나는 무엇이든 그 목적을 알지 못한다.” 내게 있어서, 모든 것의 목적은 내 자신에 대한 나의 환상이 실재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나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이용하려 한다. 나는 세상이 있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의 진정한 목적을 인지하지 못한다. 내가 세상에 부여한 목적은 무서운 세상의 그림을 그려냈다. 내가 세상에 부여한 목적을 철회하고 세상에 대한 진리를 배움으로써, 세상의 참 목적에 내 마음을 열자.


hi
이전글  다음글  목록 글쓰기



copy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