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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의 영성] "영성으로 본 기장의 출발과 현재, 그리고 과제" (3)_홍순원 목사

관리자 2025-02-22 (토) 20:13 1년전 834  

프란시스 영성 잃은 교회


한국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서로 일방적으로 치달으며 그 생명을 잃게 되었다. 보수 측은 예수께서 직접 선포하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실천을 잃어버렸고, 그 영성은 성공과 복, 신비한 은사를 구하는 열광주의로 치달았다. 반면에 진보 측-바로 우리 교단의 문제인데-은 기도와 기도생활을 잃었다. 그러자 그 사회적 실천은 세속적인 운동으로 전락하고, 교회의 삶은 온통 정치화 되었고 방종으로 흘렀다.


이 두 진영이 세속주의로 떨어진 그 근본 원인은 프란시스의 상실에 있다. 프란시스의 영성은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은 가난과 기도, 그리고 고난 받는 생명(자연생명 까지도)을 위한 섬김이 결합되어 있다. 어느 틈에 우리 삶에서 가난과 기도-이제 이것을 영성이라고 하자-가 실종되고 사회적 실천만 남게 되었다. 이것은 프란시스의 반쪽을 잃은 것이다. 곧 영성을 상실한 것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 교단과 그 안의 모든 지 교회들의 모든 문제들-운동논리, 정치화, 세속주의, 분열등-을 야기시키고, 급기야 기장의 존폐문제까지 생긴 것이다. 어느 틈에 우리가 프란시스의 반쪽인 영성을 잃었는데,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반민주, 반인권, 그리고 분단으로 고통당하는 군사독재 정권시대에 예언자적인 소명을 받아 투쟁해야 하는 역사적 상황 때문이었다. 이 시대적 강조 때문에 모든 하나님 나라 투쟁의 출발이 되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를 그만 소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학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해방의 신학을 받아들이면서 절름발이로 받은 탓이 있다. 남미의 해방신학에서는 영성과 해방실천을 분리할 수가 없다. 우선 해방신학자들 자신이 가톨릭 사제들로서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을 하는 관상가들이다. 해방신학에 따르면 진정한 신학은 모두 영성으로부터, 역사 안에 계시는 하나님과의 강력한 만남으로부터 나온다. 보수진영은 물론 우리도 곧잘 오해하듯이 해방신학에서 마르크시즘은 가난의 현실을 분석하는 도구일 뿐이다. 도리어 해방신학에서 마르크시즘의 유물론과 무신론은 경계의 대상이다. 해방신학자는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삶을 가지고 성서에 다가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빛과 영감을 구한다.


해방신학이 곧잘 받는 유혹은 신비적인 뿌리들을 망각하는 것이다. 해방을 위한 온갖 투신이 우러나오는 그 신비스런 뿌리를 망각하고 나면, 정치활동만을 가장 뛰어난 배타적인 가치를 지닌 것으로 여길 위험성이 있다. 억압당하는 사람들과 만민을 위해 투쟁하는 신앙이 생기고, 이 신앙이 늘 쇄신하는 장소는 기도, 관상, 하나님과의 내밀하고도 공동체적인 친교를 맺는 순간이다. 곧 영성은 종교적 삶에 있어서 토대이며, 해방에 기여함으로 더욱 풍부해진다. 이런 해방신학의 영성과 해방실천의 관계는 ‘행동하는 관상’(contemplation in action)이나 ‘관상하는 행동'(action in contemplation)이라고 할 있다.


우리는 해방의 신학과 실천에서 결코 뗄 수 없는 데도 기도는 떼고 해방의 실천 요소만 가져온 경향이 있다. 이것이 그만 자유분방과 이어지고 말았다. 고요한 기도들을 통해 신비롭게 하나 되는 그분은 바로 성서의 야훼-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하고 눌린 자들의 보호자 이신-하나님이시다. 이 때문에 참 기도에 들면 반드시 절로 해방의 삶으로 이끌린다. 


박봉랑 선생님께서 투병하실 때 병문안을 간 적이 있다. 병중에 계시면서 박사님은 평소 거부감을 가지셨던 구티에레즈의 책들을 읽고 계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셨다. 해방신학은 성서신학이고, 계시신학이고, 영성신학이라고 하셨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출발 때에 그 토대로 가진 프란시스의 영성을 회복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따라가는 것인데, 한마디로 가난과 기도라고 하는 영성의 회복이고, 이것을 훈련하는 수행(수도생활)의 회복이다. 이것을 회복하는 때 우리는 교단 차원과, 그리고 개 교회마다 겪는 혼란을 극복하고 다시 능력있는 사명의 자리와 생동감 있는 생명 공동체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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