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독서’로, 또는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로 불리우는 렉시오 디비나는 ‘하나님의 말씀’ 과 ‘기도’를 두 축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 두 축을 하나로 연결하는 정신이 ‘경청의 영성’입니다. 하나님의 생명력있는 말씀이 선포될 때, 그것에 합당한 반응은 그 말씀을 온전히 경청하는 것입니다. 우주가 맨 처음 했던 일은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빛을 명하시자 우주는 듣고 순종했습니다.(창 1:3).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이 맨 처음 하는 일도 듣는 것이었습니다.(창 1:28). 경청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가는 일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야말로 하나님 백성이 되는 핵심 위치를 차지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고향과 아비의 집을 떠나라 는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창 12:3) 이스라엘의 신앙 생활과 교육의 중심에는 ‘쉐마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아 들으라’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화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신 6:5)
갈릴리의 평범한 어부들은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각적으로 반응함으로서 제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출발하였습니다. 사도바울 또한 믿음도 들음에서부터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난다.’( 롬 10:17). 또한 서방 수도원 운동의 근간이 된 베네딕트 수도회 규칙서의 첫 마디도 ‘들어라(obsculta)’ 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라틴어로 '순명'을 의미하는 obedientia 라는 단어는 ‘누구 앞에서’ 라는 의미의 'ob' 과 ‘듣다’는 뜻의 'audire'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즉 서로 공경스럽게 마주하여 말을 듣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순명의 어원인 것입니다. 영어로 순종을 의미하는 Obedience도 같은 어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무조건적인 맹종이나, 머리로만 수긍하는 이해와 달리 순종은 듣고 받아들이는 경청의 자세입니다.
기도생활에서도 가장 중요한 한 축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기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가 독백이나 자기주장과 다른 점은 상대방에게 말할 뿐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는 것입니다. 기도생활은 자신의 절박한 사정을 간청하는 기도에서 대부분 시작합니다. 그러나 기도생활이 더욱 성숙해 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말에 응답하시는, 또는 자신의 기도보다 먼저 기도하고 계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기도는 온전히 하나님과의 대화가 되고, 풍성한 사랑의 교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경청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이 ‘고요함’입니다. 이 고요함은 단순한 말을 하지 않음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온전히 상대방의 이야기에 주의집중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이야기를 하는 존재를 향해 활짝 열려있는 내적 태도이기도 합니다.
렉시오 디비나의 시작은 성령께서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이끌어 주시기를 간구하면서 고요함에 머무르는 ‘성령청원 기도’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이 때 자신의 호흡을 알아차리며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가다듬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요함이 준비되어질 때, 자연스럽게 말씀을 읽고 듣는 렉시오(lectio)의 단계로 넘어가면 됩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성경책 자체가 매우 귀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개인적으로 읽기보다는 공동체 가운데서 독서자가 성경을 낭독하면, 그것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말씀에 자신의 온 존재를 열고 마음 다해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렉시오 디비나의 근본 토대이자, 전 과정에 흐르고 있는 정신입니다.
그래서 렉시오 디비나에서는 내가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나를 읽게 하라’는 경구가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판단을 우선 내려놓고, 말씀에 온전히 귀 기울일 때, 그 때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살아나고, 그 생명력이 흘러나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