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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의 영성] "영성으로 본 기장의 출발과 현재, 그리고 과제" (2)_홍순원 목사

관리자 2024-09-25 (수) 11:09 2년전 984  
주체적 신앙인들의 프란시스 영성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신앙으로 출발한 우리 교단의 주역들의 가장 크고 공통된 요소는, 저들이 한결같이 프란시스의 제자라는 것이다. 김재준을 불러내고 신학으로 이끈 송창근 목사는 평생 성빈(聖貧)을 실천했다. 이에 감화 받은 김재준 목사는 늘 프란시스를 흠모하면서 프란시스를 자신의 ‘보호성자’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의 구상으로 경동교회에서 ‘선린 형제단’이 결성되었을 때, 이것은 동지들과 함께 프란시스의 이상을 실천하는 것이었다. 강원용 목사는 기독교 사회주의에 눈뜨고 프란시스의 감화를 받아 선린형제단의 이상을 실천했다. 한 때 그는 프란시스처럼 평생 독신으로 살 생각을 했으며, 일본 유학 시절에 강순명, 윤남하, 이준묵에게 영향을 준 ‘가가와’(Kagawa Toyohiko)를 만나 깊은 영향을 받게 되는데, 가가와는 일본의 프란시스였다.

  프란시스의 영성과 삶 자체가 가난과 섬김이다. 프란시스 안에 ‘벌거벗은 영혼’ 또는 ‘맨발’이라고 하는 하나님 앞에서의 영성과 가난한 생명을 섬기는 사회적 실천이 함께 들어있다.


  이처럼 우리 교단의 주체적 신앙인들의 프란시스와 함께 지역을 달리하여 저 아래 쪽의 또 다른 주체적인 프란시스들이 자생하여 있었다. 송창근, 김재준, 강원용, 안희국, 김삼수, 전학석 같은 프란시스가 위쪽 함경도와 북간도의 프란시스 영맥이라고 한다면, 아래쪽의 최홍종, 강순명, 이현필 등으로 대표 되는 남도 또는 무등산 프란시스 영맥이 있다.


  이 ‘무등산 영맥’은 자생적인 토착영성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유영모, 이세종, 이현필에 이르고, 흘러내려 오면 강순명, 백영흠, 조아라, 여성숙, 이준묵 등에 이르는 경건과 실천 목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수도공동체인 디아코니아 공동체 운동으로 이어진다. 엄두섭 목사에 따르면 최홍종 목사가 이 영맥의 위에 있고, 강순명 목사가 그 영향을 받는다. 강순명 목사가 광주 ‘YMCA’에서 ‘독신 전도단’을 조직하고 청년들을 지도할 때, 바로 이준묵과 차남진, 윤남하, 고형노, 박철웅, 그리고 후에 이현필이 가담했다. 이들은 5년 동안 전도와 노동, 공부와 수도를 하며 공동체 생활을 했다.


  흥미있는 사실은 이 무등산의 프란시스 영맥에서 우리 교단의 인물들을 여럿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백영흠, 여성숙, 이준묵, 윤남하가 그들이다. 이들은 남녘에서 역시 주체적으로 프란시스의 영성과 삶을 일구어 낸다.(이런 면에서 남도의 이세종, 이현필 같은 영성 역시 기장의 것이다.)


  이 무등산 영맥을 극단적으로 대표하는, ‘맨발의 성자’로 불리는, 이현필의 삶은 그대로 프란시스의 삶이었다. 이현필은 가난, 독신, 순결 서약을 하고 ‘동광원’이라고 하는 ‘한국개신교 자생 수도공동체’를 설립했다. 그를 흠모하고 따르는 무리들이 독신으로 살면서 수도생활을 하는 한편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다. 이현필의 벗인 이준묵은 동광원의 분원인 ‘등대원’을 세워 각각 남자들과 여자들이 공동생활을 하게 했다. 그러면서 이준묵은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사회참여 운동을 본격 시작했다.


  이 무등산의 영성가들, 곧 한국의 프란시스들은 한결같이 사회적 실천가들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 평생 헌신한 것은 물론, 대 사회적인 문제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런 점에서 저 북쪽의 프란시스 영맥과 남쪽의 프란시스 영맥은 강조점을 달리하면서도-북쪽은 사회적 실천, 남쪽은 기도-궤도를 같이 한다. 송창근과 김재준 그리고 그의 제자들의 사회적 실천 안에는 프란시스의 영성이 그 토대를 이루고 있다. 놀랍게도 프란시스를 고행-사실 프란시스는 세상을 부정하거나 고행주의자가 아니다-의 차원에서 따라 산 무등산의 영성가들 안에는 사회적 실천이 그 토대를 이루고 있다. 어느 것이 앞에 오든 프란시스에게서 영성(기도)과 섬김(하나님 나라 실천)은 뗄 수없는 것이다.


  함경도와 북간도의 주체적 신앙에서 형성된 프란시스에서 우리 교단의 주역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또 무등산 영맥으로 주체적으로 형성된 프란시스에서도 우리 교단의 주역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실제로 이 발생지가 다른 두 주체적인 프란시스 영맥이 교류하며 합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백영흠, 김재석, 전학석, 안병무, 여성숙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한두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전학석은 한국신학대학 제 7회 졸업생으로 세 영적인 아버지를 만나고 살았다. 그 첫 째이며 영원한 아버지는 김재준이었다. 김재준의 영적인 아들이면서 제자이기도 한 전학석은 그에게서 프란시스와 함께 하나님 나라 실천을 이어받는다. 전학석은 1948년 5월 전라남도 해남 신원리로 목회하러 가서 두 번째 영적인 아버지를 만나는데, 그가 이준묵이다. 그리고 6.25가 터지고 전학석은 다시 전라도로 내려가는데, 거기서 세 번째 영적 스승인 백영흠을 만난다. 이준묵과 백영흠은 바로 무등산 영맥의 프란시스로 엄격한 청빈 생활을 하며 평생 사회적 실천을 했다. 이처럼 전학석은 세 영적 스승들을 통해서 가난과 기도와 사회적 실천이 몸에 배였고, 김재준과 마찬가지로 ‘전 우주적 사랑의 공동체’를 꿈꾸었다. 그는 1963년부터 숨을 거두는 1987년 까지, 천호동 교회를 섬기며, 고행에 가까운 청빈생활을 하면서 민주인권 투쟁에 몸을 불살랐다.


  안병무는 이현필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누고 무등산 프란시스의 영성과 삶의 가치를 깨닫는다. 그 후 안병무는 여성숙의 ‘한산촌’을 모태로 ‘디아코니아 자매회’를 설립한다. 김경재는 백영흠 목사의 감화를 받고, 그의 소개로 한국신학대학에 와서 김재준 목사에게 신학수업을 받게 되었다. 조직신학자인 그는 영성가 이면서 신자유주의 맘몬의 구조에 저항하는 실천가이다. 전학석과 안병무는 저 북쪽의 프란시스 영맥으로서 남쪽의 프란시스와 만났으며, 김재석과 김경재는 남쪽의 프란시스 영맥으로서 북쪽의 프란시스를 만난 것이다.


  이렇게 정리 할 수 있다. 함경도와 북간도를 배경으로 하는 기장의 주역들의 정신도 주체적이고 자주적요, 프란시스의 영성이었다. 역시 무등산의 영맥도 한국 특유의 자생적 운동으로 프란시스의 영성이었다. 이 두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프란시스가 우리 안에서 합류한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확언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는 처음부터 영성적인 동기에서 출발한 교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또한 우리 교단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사회적 해방 실천)와 기도(수도생활)는 분리될 수도 없고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둘의 통전을 나타내는 말이 바로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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