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렉시오 디비나’ 운동이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렉시오 디비나’는 ‘거룩한 독서’ 또는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 (엔조 비앙키), ‘말씀묵상기도’(이경용) 등으로 불리고 있다. ‘거룩한 독서’ 라는 말은 라틴어 ‘Lectio Divina’를 직역한 것으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는 성경 말씀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기도라는 의미로, ‘렉시오 디비나’가 지닌 기도와 관상의 측면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런 번역들을 만나면서, ‘렉시오 디비나’가 ‘성경말씀’과 ‘기도’가 중요한 두 축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야말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요한 두 기둥임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교는 말씀의 종교라고 부를 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신앙생활이다. 또한 기도 생활이야말로 신앙생활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어떠한 기도생활을 하느냐가 어떤 신앙으로 자라나고 살아가는지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기둥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성경을 많이 읽고, 공부하면서, 성경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식이 복음적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면서, 말과 삶이 극명하게 분리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 본다. 렉시오 디비나는 무엇보다도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열정과 헌신을 그 기본정신으로 담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내어 드리는 삶의 태도와 관점이 바로 렉시오 디비나의 근본 태도이다. 그래서 렉시오 디비나에서는 ‘내가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나를 읽게 하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성경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경하고, 그 진리의 빛에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태도가 성경에 대한 무조건적, 문자주의적 숭배를 의미하진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시대의 조건을 담은 인간의 언어로 쓰인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말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욱 주의깊게 본문을 연구해야 한다. 그래서 현대의 렉시오 디비나는 성서학의 다양한 비평의 성과들을 충분히 존중하고 수용한다. 특별히 현대 학문의 고등비평을 수용하는 학문의 자유와 신앙 양심의 자유를 소중히 간직하며 출발한 기장내에서 여전히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에 근거한 주장들이 여전히 나오는 상황들은 참으로 안타까운 형국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삶을 헌신하고자 하고자 한다면, 더욱 신중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언어를 구별하고, 그 연관성을 깊고 폭넓게 연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 성경에 대한 ‘메마른 지성주의’의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성서를 현대 학문의 비평적 입장에만 바라보는 것은 인간의 언어 안에 담겨있는 절대적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의 온전한 접근과 일치를 가로막는 장애가 될 수 있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인 성경은 성령의 움직임에 활짝 열려있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신뢰하는 신앙의 태도를 지닌 사람에게만 그 신비와 풍성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학문의 엄격성과 객관성을 수용하면서도, 냉철한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겸손하고 온유한 영성의 태도로 성경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렉시오 디비나는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이다. 말씀을 경청하고 음미하다 보면 자신의 여러 가지 연약한 모습을 성찰하게 된다. 그리고 영혼 깊은 곳을 울리는 말씀과 연결되면, 심령 깊은 곳에서 무언가 간절한 열망이 건드려지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절로 나오게 된다. 한국 개신교회는 세계 어떤 교회보다 뜨거운 기도로 유명하다. 부르짖는 통성기도가 영어로(Tong Seong Prayer) 사용될 정도이다. 성서의 기도전통가운데 분명 부르짖는 기도가 자리잡고 있다. 그렇지만 또 다른 기도의 전통도 면면히 흐르고 있다. 그것은 침묵 가운데 주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기도다. 모세와 엘리야는 고요한 가운데 주님의 새로운 역사하심을 보고 들었다. 예수님도 이른 새벽에 한적한 곳에서 고요히 기도하시면서 하나님과 조율의 시간으로 하루를 시작하셨다. 한국교회는 이제 통성기도를 넘어 침묵기도, 경청의 기도, 사귐의 기도로 나아가야 한다. 통성기도는 좌절된 욕구나 문제해결을 위한 청원기도가 주된 흐름이다. 그 곳에서는 자기성찰과 자기부정을 통한 성숙한 신앙으로 변화가 쉽지 않다. 또한 신앙생활의 근본목표인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하나님과 깊은 친교를 통한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리는 경지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이미 추락할 대로 추락해 버린 한국교회의 위신을 회복하고,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명실상부하게 다시 감당할 수 있으려면 침묵기도, 관상기도의 회복을 통해 보다 통전적이고 성숙한 영성의 회복과 인격의 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렉시오 디비나는 이런 점에서 말씀과 기도를 연결시켜서, 기도의 주관주의(주관적 욕망의 실현을 위한)를 성경말씀의 빛으로 정화시키며,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사랑의 일치로 이끄는 기도의 경험을 가능케 하는 길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말씀을 기도시간만이 아니라 일상생활로까지 가져가서, 말씀의 육화과정을 매일의 삶 속에서, 고단함과 노동속에서도 견지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