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만난 복음과 주체적 신학
우리 한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역사는 언제부터일까? 우리 교단은 어느 곳, 어느 시점에 그 역사의 뿌리가 닿아 있을까?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출발정신은 그 ‘제38회 총회의 호헌사’에 잘 나타나 있다.
1) 온갖 형태의 바리새주의의 배격하고 복음의 자유 확보,
2) 전 세계 장로교 테두리 안에서 건전한 교리를 수립하고 신앙양심의 자유 확보,
3) 노예적인 의존 사상을 배격하고 자유자주 정신의 함양,
4) 전 세계 성도들과 협력병진하려는 세계교회정신에 철저’가 그것이다.
이 호헌사의 정신은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신앙’이라 할 수 있다.
한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출발을 이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눈으로 보면, 아펜셀러나 언더우드 같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활동을 시작한 때가 아니라, 일단의 우리나라 젊은 상인들이 만주에서 활동하던 스코틀랜드 선교사인 존 로스(John Ross)와 존 맥킨타이어(John MacIntyre)를 찾아가 스스로 세례를 받은 때나(1876), 자생으로 소래 교회가 성립된 때(1884)라고 할 수 있다.
이 만주의 두 스코틀랜드 선교사들은 한국선교를 두 가지 방식으로 추진했다. 하나는 한국에 입국해서 선교활동을 하기 보다는 국외에 나온 한국인들을 접촉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국 민중의 언어로 성서를 번역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곧 ‘속인주의’(屬人主義) 선교방식을 선택했다. 이들은 무역 상인들인 이응찬, 백홍준, 김진기 그리고 서상륜을 만났다. 이 상인들은 처음에는 경제적 이득과 외래문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선교사들의 어학 선생이 되었지만, 드디어 한글 성서 번역에 참여하게 되었다. 성서를 번역하면서 저들은 자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번역한 성서를 지니고 고국 전도에 나서며, 자기들의 고향인 의주와 평안도 일대에서 권서(勸書) 전도자로 활동한다. 서상륜은 한국 최초로 자생적으로 교회가 선 황해도 솔내를 거쳐 서울에 정착하여 전도활동을 했다. 언더우드가 와서 세운 최초의 조직 교회인 새문안 교회가 설립 되었을 때는 이미 서상륜 등에 의해서 복음이 뿌려지고 그리스도인들이 있은 뒤였다. 이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프로테스탄트의 출현이 우리 교단 역사의 출발이다.
우리 교단은 한국에 선교하러 들어온 네 장로교파(미국 남장로교, 미국 북장로교, 호주 장로교, 캐나다 장로교) 중에서 캐나다 장로교(후에 캐나다 선교부가 되었음)와 긴밀한 관계를 처음부터 맺게 되었다. 네 장로교단 중에 캐나다 장로교의 선교구역은 함경도와 북간도였다. 그리고 이들은 이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며 순수한 열정과 사랑으로 신앙을 전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해방 후 군정상황에서 북쪽과 남쪽에서 따로따로 교회를 재건하게 되었다. 남쪽 장로교는 새문안 교회에서 남부총회를 정식으로 조직하고(1946년 4월), 승동교회에서 ‘남부총회’(1946년 6월)를 열었다. 이 총회의 네 개의 결의 중에 세 번째는 “조선신학교를 남부총회의 신학교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 캐나다 선교부가 가장 적극적이었고, 김재준 목사가 파면되고, 이것 때문에 1953년 ‘제38회 총회의 호헌사’에 그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정신을 선언하며 ‘대한기독교장로회’로 이름을 바꾸고 새 출발할 때, 캐나다 선교부가 이에 가담했다. 한국에 온 초기 캐나다 선교사들은 캐나다의 ‘노바 스코샤’라고 하는 농촌 지역 출신으로, 그들의 선조들은 대부분 스코틀랜드인들이다. 이들은 영미의 선교사들과는 달리 평등 지향적이고 정의감이 높은 진보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러므로 우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줄기는 ‘기장-캐나다 연합교회-캐나다 장로교-스코틀랜드 장로교(존 녹스)-칼빈과 제네바의 종교개혁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교단의 출발 주역들이 함경도와 북간도 출신이기에 자연 이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프로테스탄트를 만났고, 따라서 그런 성격으로 기장이 새 역사를 출발할 수 있었다. 이것은 실로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바탕 위에서 ‘한국-개혁교회-에큐메니칼’ 신학이 형성된다. 곧 우리 신학은 주체적인 우리의 역사와 문화 위에서(한국), 스위스 종교개혁의 유산에 잇대어(개혁교회), 전 세계교회와 어울리며 대화하는(에큐메니컬) 신학이다. 바로 이런 정체성 위에서 다양한 신학 운동들과 실천들을 수렴하면서 ‘기장성’을 형성하게 된다. 기장성이나 ‘한신성’은 딱히 정의 내리거나 우리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의 기질(에토스)로서, 자주적이고 주체적이며 예언자적 열정과 말씀에 토대한 해방의 기운이요, 이것을 공감하여 연대하며 공유하는 모든 것을 뜻한다.